니얼 퍼거슨이 지은 <증오의 세기>의 번역서가 10년 전에 발간된 것을 가마아득히 모르고 있었는데 뒤늦게 책을 찾아 읽는 이유는 저자가 서양의 몰락을 주장하였다는 것을 최근에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러일 전쟁이 서구 제국의 쇠망에 영향을 끼쳤다고. 유별난 역사학자의 돌출 발언으로 치부한다면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니얼 퍼거슨을 무시하는 처사인데다 균형감을 갖기 위해서라도 읽어야 한다. 도서관에서 간신히 책을 대출 받아서 읽으면서 서문에서부터 밑줄을 긋고 싶은 내용을 필사하는데 (빌린 책은 깨끗하게 읽어야 하니까) 페이지마다 밑줄을 그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책읽기보다 필사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방법을 바꾸어야지 아니면 책 한 권을 필사하다 죽을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



20세기의 극단적인 폭력성, 특히 1940년대 초 같은 특정한 시기와 중유럽, 동유럽, 만주, 한국 등 특정한 장소에서 폭력 사건들이 다수 발생한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인종과 민족 갈등, 경제적 변동성, 그리고 제국의 쇠퇴이다. 인종 갈등이란, 특정 인종 집단 간의 사회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말하는데, 이는 상당히 진전되던 인종 동화 과정이 와해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20세기에 인종상의 차이에 관한 이론에서 유전 법칙이 널리 보급되고(이 법칙이 정치 영역에서 그 힘을 잃고 있긴 했지만), 인종이 뒤섞인 이주 지역의 ‘분쟁지’가 정치적으로 분열되면서 요동쳤다. 경제적 변동성이란 경제 성장률, 가격, 금리, 고용변화의 빈도와 진폭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회적 압력과 긴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국의 쇠퇴란 20세기 초에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 제국들이 해체되면서 그들이 새로 등장한 터키, 러시아, 일본, 독일 등의 제국에게 받은 위협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필자가 ‘서양 세계의 몰락’을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할 때 염두에 둔 점이기도 하다.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급부상하면서 실질적인 제국으로 인정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45년 전의 유럽 제국들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다. (36)

4000~10000년 전에 농업 활동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정착 생활을 택했다. 더욱 안정된 식량 공급으로 부족의 규모가 커졌으며 공동체에서 농부, 전사, 사제, 지배자 등의 분업이 나타났다. 하지만 문명화된 정착지는 원시 부족의 습격에 늘 취약했고, 이들이 식량과 결혼 적령기의 여성을 그냥 내버려 둘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이 정착생활의 즐거움을 선택했을지라도 그 집단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문명들은 상대 문명과의 우호적인 교역을 통해 점차 국제적인 분업을 탄생시켰으나 선사 시대 인간을 자극한 동기, 즉 식량과 번식을 위한 자원을 빼앗으려는 욕구 때문에 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역사가들이 지속적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세련된 인간 조직만을 연구할 수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연구하는 조직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가장 개화된 인간이 품고 있는 본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본능은 1900년 이후 반복해서 폭발할 운명이었고, 그토록 잔혹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중요한 원인이었다. (42)

모든 사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1920년대 중동부 유럽의 경우 동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여러 민족이 정착한 지역에서 이민족 간의 결혼율은 전례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1920년대 말에 독일계 유대인의 결혼 상대자 가운데 세 명 중 한 명이 기독교도였다. 일부 대도시의 경우엔 그 비율이 절반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일부 지역, 루마니아, 러시아(표 1-1 참조)의 경우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러한 추세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물론 이 현상은 성공적인 동화와 통합을 가리키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1940년대에 최악의 민족 갈등이 발생한 곳은 바로 이 지역이었다. 당시 동화, 특히 이민족 간의 결혼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는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놀랍지는 않다. 어쨌든 우리 시대에 그러한 사례를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투치족 남자와 후티족 여자의 결혼이 상당히 흔한 일이 되었음에도 1990년대에 두 부족 간에는 잔인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인종 갈등은 보스니아에서도 폭발했는데, 이 지역 역시 이전 수십 년 동안 이민족 간의 결혼율이 높았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인종 간에 나타나는 행동은 평화적인 결합이나 피비린내 나는 대량 학살처럼 극단적인 한 가지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지독한 민족 간의 폭력 사태에는 성폭력이 수반되기도 하는데, 1992년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보스니아의 이슬람 여성들을 상대로 집단 강간을 저질렀다. 이들 군인들은 여성들에게 어린 체트닉(četnik, 세르비아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를 말함 ― 옮긴이)을 강제로 임신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는 이슬람 사람들을 협박하여 고향을 떠나게 하기 위한 폭력 행위 가운데 하나인가? 아니면 앞에서 설명한 야만적인 충동, 즉 남자를 살해하고 여자를 임신시켜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는 충동의 결과인가? 여성을 강간하는 행동이 사람을 총으로 쏘는 행위와 같은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간주한다면, 이는 극히 단순한 생각이다. 종종 소수민족을 상대로 한 성폭력은 제거를 위한 인종 차별주의 만큼이나 가학적이면서도 에로틱한 환상의 자극을 받아 왔다. 우리가 먼저 파악해야 할 핵심은 인종 갈등의 원인으로 너무나 자주 꼽히는 증오가 간단한 감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반감과 호감이 뒤섞인 변덕스러운 양면성이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이 감정은 미국 내 백인과 아프리카계 흑인의관계를 오래도록 규정해 왔다. 필자는 1904년부터 1953년까지를 ‘증오의 시기’라고 부름으로써, 인간의 감정 가운데 가장 위험한 감정의 복잡성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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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9-20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포스트잇 붙이는거로 절대 해결될 수없는 밑줄긋기의 유혹!ㅠ 100퍼 공감합니다!ㅎ 즐독하시구요!

오거서 2021-09-20 22:54   좋아요 2 | URL
책을 읽는 동안 포스트잇이 도움되기는 하지만 빌린 책을 반납할 때 도로 떼어내는 일이 고역이더라구요. 그래서 필사하는 방법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데 벽돌책은 난감하죠. ^^;

북다이제스터 2021-09-21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일전쟁 뿐 아니라 러일전쟁은 학교 때 배운 것처럼 그리 ‘간단한’ 의미의 전쟁이 아님을 저도 최근에 알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