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김영하 북클럽 선정 도서라서 알게 되었다는 이 책을 아내가 구입 요청하였다. 주문한 일자보다 한참 늦추어지면서 책은 지난 주에 배송되었지만 아내는 지난 주말까지 읽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아내가 화이자 백신 2차 접종한 직후에 고열에 시달리지는 않았으나 평소와 달리 눈에 집중된 통증과 피로감 때문에 간신히 일상 생활을 이어 갔다. 그러니 책을 나몰라라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을 건넸다. 매일 아침마다 눈을 떠자마자 문안 인사를 나누기는 하지만, 문안 대신하는 말로, 책을 읽었다는 말이 이리도 반가운지.
“정말?”
첫인상이 어떤지 물어보려는데 아내 말이 이어졌다.
“번역이 잘 돼서 술술 읽혀요!”
“그래요? 요즘 번역 잘 된 책들이 많기는 한데 이 책도… 내용이 어렵지는 않아요?”
“지리 공부할 때 배웠는데 자세히 몰랐던 인류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쏙쏙 들어오는 느낌도 좋았고, 인류의 역사가 300만 년은 된다고 듣기는 했지만 그걸 어떻게 아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알게 되었고, 네인데르탈인이 몸집이 크고 뇌 용량이 더 커서 적자생존에 유리하였을 텐데도 멸종했다는 것이 좀 이상해요.”
어제까지 무기력했던 모습과 딴판으로 생기있는 목소리다. 아내는 대학교에서 지리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일전에 <지리의 힘> 책을 읽고나서 소감을 얘기할 때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최재천 아저씨가 추천한 책인데 특별히 고맙다고 했어. 아저씨가 적자생존을 의심하였는데 자기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외로웠다고 하더라.”
우리 가족은 첫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체험한 생태학교 활동에서 최재천 박사를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악수를 나누고 덕담을 받았다. 점잖고 인상 좋은 분인데다 이웃 아저씨처럼 첫째를 격려하는 말을 해주는 바람에 이후로 아이들이 (특히 둘째가 먼저) 아저씨라고 불렀고, 텔레비전에서 그 분의 얼굴이라도 보게 되면 아내도 “아저씨 나왔네” 하며 반기는 사이가 되었다. 그 분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텐테도 말이다.
2014년에 나온 최재천의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를 아내는 제목을 대지 않고 언급했다. 아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였다. (제목은 검색해 보면 되지. 이런 것이 다정함일까…)
아내의 말을 듣는 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책을 펼쳐 보았다. 아내는 책을 읽고나면 중고 책으로 팔겠다면서 책값을 계산한 터라 책을 읽기도 전부터 책을 더럽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식구들한테도 주의를 요구했는데, 책을 집어 드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다짐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았다. (순전히 나의 느낌… ^^;) 나는 표지부터 책장을 설겅설겅 넘기다가 ‘적자생존’ 소제목 아래에서 눈으로 밑줄을 그었다.
“대중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적자생존’ 개념은 최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한 연구는 가장 덩치 크고 가장 힘세고 가장 비열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비축된 에너지를 고갈시켜 면역체계를 약화하고 결국 우리는 더 적은 수의 후손을 남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격성이 높을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데, 싸워서 다치거나 잘못되면 죽을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적자‘는 우두머리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더럽고 잔인하고 짧은’ 인생이 될 수도 있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다정함이 자연에 그렇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진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고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0)
진화인류학자들이 지은 <다정함이 살아남는다> 말고도 인간의 생존 기술을 다룬 신간이 있다. 자밀 자키가 지은 <공감은 지능이다>.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주장한다. “공감은 인간의 생존 기술이다” (다정함, 공감은 같은 의미 다른 표현?)
출근만 아니어도 아내와 대화가 조금 더 이어졌을 텐데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아내가 책을 다 읽고나서 자랑 삼아 또 얘기해주길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