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게모노 2
야마다 요시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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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놈(효게모노)이 더 웃기게 돌아왔다! 명물욕의 화신 사스케의 개그는 더욱 진보하고, 전국시대 일본의 혼란은 본격적으로 묵직해지기 시작하는데..!!



무인에 관한 명예와 명물(돈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지금 같은 의미가 아닌, 정말로 못구하는)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이성은 무인의 길을  걷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늘 명물욕에 대한 본능이 이기고야마는 이 후루타 사스케의 이야기가 2권 째로 접어들었다. 1권에서는 혼란스런 전국시대에서의 오다 노부나가의 호탕한 모습들과 그에 따른 사스케의 출세욕과 명물욕의 고민, 그리고 수면아래에서 꾸물거리며 올라오는 반란의 조짐들이 이야기를 구성했다면, 이제 2권은 자신의 명물욕과 또 그것을 '보는눈'을 활용한 사스케의 행보 와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반란의 거사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드디어 역사 드라마의 재미도, 웃기는 놈(효게모노)인 사스케의 명물욕과 나란히 진행되는 것!


2권의 초입에서 사스케는 1권과 마찬가지로, 전투와 정벌로 인한 공로 보다는, 회유와 설득의 역할을 중심으로 활약을 시작한다. 하지만 1권에서 나름 가능성있게? 활약했던 것 보다는, 꽤나 내동댕이 쳐지는게... (사스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또 하나의 재미가 된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세력을 회유하러 성에 들어가서 각 층의 적군을 하나하나 마주치는 과정은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성을 올라가며 레벨업을 하는 것을 연상케 하는데, 사스케가 이 과정을 활용하는 것과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재밌지만 무릎을 칠 정도로 의미심장했다. 명물을 볼줄 아는 눈을 갖고, 또 그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물욕을 다룰 줄 아는 사스케의 전략과 성욕에 관한 통과의례(?)는 막다른 골목에 가서도 외적인 것에 탐닉하는 인간 본성을 충분히 유머러스하게 비꼬아준다. 자신의 명물욕을 비롯한 인간의 근원적 본성을 철저히 이용할 줄 아는 사스케의 모습은 역시 그가 거품만 가득차 있는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이후,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하시바와 소에키의 반란은 점차 구체화를 띄어가며, 하나하나 착실히 진행되가는듯 보이지만, 그것은 독자가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순간을 보기좋게 앞당기며 3권에서의 전개를 완전 기대하게끔 만든다. '이정도 진행에서 2권이 끝나겠지' 하는 생각이 확 뒤엎어지는 것! 3권이 너무 기대되는게... 마치 오래전에 끊었던 드라마의 다음화를 마음졸이며 기다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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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 2012-06-1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게모노 잼있어요! ㅎ

기다리는 자 2012-06-14 20:55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왜 그렇게 좋아라하는지 알겠더라구요.ㅎㅎ
 

마치, 그 어떤 방송국의 카피처럼, 만나면 좋은 친구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게감과 몰입감에 압도당해서 길게 함께하지 못하는 것,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시(詩) 라는 것이  그렇다. 한번에 서너편을 읽기가 버겁다. 어떨땐 한편을 읽어도 그 하루의 상념을 다 소진하는 때가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하루에 한가지에 온전히 빠져있을 수 있음에도, 그 감정들을 쪼개어 억지로 더 밀어넣는다는 것은 결국, 감각의 밀도를 들어낼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 페이지에서 느낌 감정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온전하게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다음 페이지에서 내가 받아들일 감정들은 그 다음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꾸준하게 조금씩 시를 읽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터인데, 그런 일에 여전히 서툰 내겐 읽다만 시집들이 어느정도 되는 것 같다. 시 한편 읽지 못했을 정도로 바빴을 때가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그래서일까, 잠시 만났다 오래 헤어진 그 언어들과 나는 아직도 너무 낯선게 사실이다. 인문분야와는 다른 이유로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시피한 내가 요즘 종종 시를 만나면서 당황스럽거나, 부적응했던 때는, 아주 깊게 개별화되고 산문화된 시들이었다. 내 삶이 시의 감성과는 너무 먼, 건조한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짧고 간략한, 그리고 항상 인류보편적인 이야기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마치 일상에서 흉내내보기도 할 만큼의 친근함을 갖고 있는 모습들 이었는데, 어쩐지 요즈음 내가 만난 시들은 개별적으로 구체화되고, 산문화 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미리 얘기하자면, 나는 이런 시들이 더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고전적 프레임 안에서의 시들만을 기억하는 내게 현대의 변화무쌍한 형식의 시는 아직은 좀 적응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그것들에게서도 어떤 감정의 전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번 류시화의 세번째 시집에 실린 것들은 전부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내게, 류시화의 시는 뭐랄까. 내가 기억하는 이전의 시의 형태를 살짝 비껴감에도, 내가 적응하지 못한 현대 시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았다.(이것은 높고 낮음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결코 보편적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깐, 모든 시들이 당연히 우리 사람의 마음과 삶의 희노애락의 순간과 빛나는 생명을 이야기 하겠지만, 그것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나와 더 유연하게 이뤄졌다고나 할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당연히 시의 수준을 왈가왈부 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내가 그 시에 뛰어들어, 틀리던 맞던 그 시가 가진 향을 음미하고, 거기서 내가 가진 향을 들여다보는 것이 수월했음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 무척이나 개별적인 느낌인 것이다.

 

 

 

 

 

여기에 실린 시 한편 한편을 해체하다보면 좀 더 세밀하고 자세한 '분석' 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류시화가 사랑하는 꽃이나 어떤 순간들, 관심의 방향은 나름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 맨 뒤의 이홍섭 시인의 글에서 충분하리만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어차피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그냥 뭉뚱그레한 느낌이라도 지금 여기다 적은 내 감정이 차라리 스스로에게 더 솔직할 것이다. 시에 대한 서평은 마치 시처럼 써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다 겨우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게는 지금 이 순간 조차도 쉽지 않은게 사실이니깐.

 

내가 생각하는 시는 우리를, 그 언어가 그려내는 시공으로 인도한다. 마치 액션영화를 보고 몰입하던 아이처럼. 시에 몰입하는 순간 모든 것을 시적으로 바라보며 말이다. 알아보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생명력있게 다가온다. 저 멀리서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불현듯 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못보던 것들을, 보고있음에도 초점 맞추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잊으려고 애썼던 사람의 등을 돌리게 한다. 고맙지만 얄미우니 아프면서도 잠시나마 따뜻해진다.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순간은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닐까. 우리가 고이 접어놓고 등돌렸던 감정, 순간, 사람들을 우리가 다시 언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략한 표현을 통해, 혹은 가장 다층적이고 흐리멍텅한 묘사를 통해서. 정말로 이 류시화의 시집에 실린 시들이 거의 대부분 그랬다. 나는 이 짧은 글자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감정과 사람과 순간을 떠올렸다.

 

한때는 술김에, 한 친구에게 '사람은(남자는) 두번 시를 쓰는데, 정확히는 사랑을 할때와, 사랑이 끝났을 때' 라는 헛소리를 한 적이 있다. 지그 생각해보면, 어차피 똥폼 잡는거 '여전히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모든 순간' 을 추가할껄 그랬다. 그것은 마치 더이상 숨길래야 숨길 수 없어서 결국 튀어나오고야마는 말 같은 것. 그 어떤 시 선집의 제목과 같이 누구나 시를 품고 살아가고, 시를 부화시킬수 있음에도, 우리는 마치, 이제는 잃어버려서 유전적으로 도퇴되어서 사라져버린 수많은 성질처럼 잊고 살아간다. 그것들은 우리가, 내가 되지 않고 여전히 계속 우리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했던 일들임에도 어느샌가 많은 욕망들에 휩쓸려서 창(窓)을 잃어 버린다. 시인들은, 그렇게 자기 스스로 잠궈놓고선 이제는 온갖 인위에 쌓여 나갈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가련한 영혼들을 밖으로 인도하는 자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우리가 높게 쌓아놓은 온갖 물질적, 근시안적 탐욕의 탑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일을 하며 말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순간 속 모든 꽃과 나무와 물과 흙과 태양과 하늘과, 누군가와, 그리고 그 순간이 남긴 상처, 그 상처가 뿌리가 되어 피어난 꽃, 그것을 아우루는 빛의 마법들일지도 모르겠다.

 

시는 대체 언제 어디에서 꽃피는 걸까. 시는 언제라도 마음 속에서 꽃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것 아닐까. 다만 살아가는 순간순간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공기의 온도, 작은 배려, 비범한 슬픔과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그것들이 마음이라는 대지 속에서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가 때가 되는 순간에 검은 잉크를 따라, 혹은 씁쓸함을 튕기는 혀 끝을 따라 이 고독한 세상으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이야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는 역시 이런 것 같다. 사람에게서 태어나서, 사람을 이야기 하고, 헹여 사람이 부재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

 

 

 

 

 

 

류시화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아마 중학교 때 일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알게 되었다기 보다, 내 인지안에 그 이름을 겨우 올려놓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지금은 무엇에 대한 감상문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도 그리 많이 읽지 않던 중학생이 쓴 감상문이 최우수라고 해봤자 무얼 대단했겠는가) 그저 한창 놀기좋아하던 때의 아이들 속에서 약간 더 성실한 글을 뽑아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라는 책을 만났을땐, 마치 어제 일 일이기도 한 것마냥 류시화의 이 시집이 떠올랐고,  그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많은것들이 흐리고 낡고 불분명하지만, 왠지 그때의 모습이 그려질 것만 같기도 하다. 한번도 다시 찾아뵙진 못했지만 그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다. 내게는 그 99년도, 아직 이십대 후반도 되지 않았을 꽃다운 선생님의 그 얼굴 그대로.. 문득 사진을 찍고서 날짜를 다시 살펴보니 5월의 어느날이다. 스승의 날을 삼일 앞둔. 나는 그날, 그 선생님께 무엇을 남겼을까.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내게 분명 그 순간을 남겨주셨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 생에 처음으로 시집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말이다. 철없고 투박한 남자중학생에게 선생님이 시를 선물한 이유는 어쩌면, 내가 많은 물음들과 관심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살아가길 바라셔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왜 시를 읽는지, 왜 그렇게 아플때 어줍잖은 시라도 홀로 써내려가야 했었는지. 시를 읽고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문득 그때의 선생님은 누구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밤이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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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3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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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집에 놀러가는 것은 생각보다 꽤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늘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을 지낸 친구의 집에 처음 놀러가는 날은 이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었다. 그 친구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며 나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을 상상하고 또 신기해했다. 그것은 분명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이 방문했던 친구와 친하게 지내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으니깐 말이다.(당연한 얘긴가;) 결국 개인의 공간을 내어주는 일은,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들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에 서로의 방문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3권의 이야기다.

 

얹혀사는 집에서의 친척들의 부담스러운 대화로 인해 카오루는 집을 나선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드럼스틱을 보게되고 크리스마스날이 센타로의 생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생일선물로 드럼스틱을 고르던 카오루는 거기서 같은 목적으로 드럼스틱을 고르던 리츠코와 만나게 되고, 함께 드럼스틱을 나눠사고 길을 걷던 중 카오루는 충동적으로 리츠코에게 키스해버린다. (카오루는 생긴거와 다르게 무척이나..;;)

 

하지만 리츠코는 얼핏 눈물까지 보여버리며 사라지고, 그와중에 만난 센타로는 카오루가 나왔던 근본적인 이유까지 상기시키게끔 만들어 버린다. (정확히는, 그것을 카오루가 멋대로 상기해버린 것이지만) 어쨌든, 지금껏 센타로가 모든것을, 적어도 돌아갈 집과 가족이 있는 따뜻한 가정환경에서 남부럽지않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한 카오루는 센타로에게 함부로 말해버리고, 이윽고 센타로는 카오루와 함께 자신의 집을 가게 된다. 사실상 2권까지, 카오루의 과거 이야기는 종종 간략히라도 언급되었지만 센타로의 이야기는 생략되었었는데, 드디어 센타로의 과거가 제대로 밝혀지는 것이다.

 

서로가 공유하는, 다르지만 또 비슷한 유년의 결핍을 공유함으로써 그 둘의 신뢰는 더욱 깊어지지만, 카오루는 여전히 리츠코의 냉담한 반응을 확인할 뿐이다. 재즈연습은 역시나 불협화음. 그러던 중, 카오루는 우연히 센타로의 동생과 함께하던 종이컵 전화상담(!)에 자신도 모르게 리츠코가 들어오고, 그로인해 카오루는 크리스마스의 일에 대해서 용서를 얻지만 확실한 대답(거절) 또한 듣게된다.

 

다리가 풀릴만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카오루는 도저히 연습에 나오지 못하고, 센타로는 그런 카오루의 집에 침입하게 된다. 그리고 일정보다 빨리 집에왔다가는 아버지에게 이혼한 엄마의 연락처를 받은 카오루는 엄마를 만나러 (어쩌다보니 센타로도 함께) 떠나게 되는데, 엄마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고, 잠시 신세를 지려했던 준이치 또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데...

 

 

매 권 마다 카오루의 돌발행동!에 깜짝깜짝 놀란다. 뭐랄까. 이거 곱상하게 도련님처럼 생겼어도 실속은 다 챙기는..(?) 현명하고 남자다운 남자랄까; 특히나 이번의 눈내리는 크리스마스날 카오루의 행동은, 그가 실은 정말로 대단한 캐릭터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특히 이번화에서는, 아마 60년대의 시대적 배경이기에 좀 더 현실감 와닿는, 종이컵 통신에 관한 부분이 돋보였다. 리츠코의 미안함과, 카오루의 망연자실함이 얇은 실을 통해서 전달되는 풍경은 어찌나 아찔한지. 슬픈 장면이지만, 역설적으로 또 너무나 예뻐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그 전후로 카오루와 센타로가 서로의 집을 예기치않게 방문하며 서로에 대해서 한발 더 이해하는 부분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공간을 열어준다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준다.

 

엄마를 찾으러 간 카오루와 센타로는 과연 (카오루의)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라진 준이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번에도 여러가지 의뭉점을 남긴채로 이야기는 끝이난다. 4권에서는 많은 이들이 새로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다.

 

말미에 수록된 약간은 으스스한, 그렇지만 푸근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짧은 사랑 단편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나저나 애니메이션은 어떨지 궁금증 대 폭발 인데, 혹시라도 마음에 안들까봐 섣불리 보지도못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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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2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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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같이 모든 이들이 계급에 구분없이 평등하게 남녀노소 여럿이 지낼 수 있는 곳은 확실히, 여러가지 복잡한 관계들이 얽히기 쉽다. 굳이 사귀거나 하지 않더라도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데, 또 누가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본다던가 하는, 그리고 그게 이중삼중으로 꼬이거나 하는 얘기들 말이다. 그것은 학교 같은 반강제적 단체생활에서 특히 더 가능해서,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고 바보같기도 또 안타깝기도 하다. 그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카오루와 센타로, 그리고 센타로의 소꿉친구인 리츠코가 드디어 그런 얽히고 섥힌 관계의 중심에 들어오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언덕길의 아폴론>2권의 이야기다.

 

카오루, 리츠코와 함께 했던 나들이에서 자신이 도와준 여인에게 넋을 빼앗겨 버린 센타로는 그 이후로도 여전히 넋이 나가있는 듯 하다. 더군다나 등교길에 그 여인 '유리카' 를 만나, 같은 학교 학생인 것을 알게되며 센타로는 더욱 이상기후에 돌입하게 된다. 리츠코를 본격적으로 짝사랑하게 된 카오루는 유리카와 센타로를 이어주기 위해 더블데이트를 제안하지만, 유리카와 센타로의 다정한 모습으로 인해서 혼자서 숨죽여 상처받은 리츠코를 바라보게 될 뿐이다. 자신의 섣부른 행동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상처입혀버린 카오루는 유리카의 얘기를 서슴없이 꺼내는 센타로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게되며 둘은 잠시 냉전에 돌입한다.

 

결국, 일전에 준이치에게 들었던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을 연습해 리츠코에게 선보인 카오루는, 내친김에 (참 생각보다 대담하게도, 그리고 멋지게도) 고백까지 하게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아 보인다. 코다마 유키 작가는, 유리카에게 데이트 신청한 장본인으로 몰아세워진 카오루를 보며 리츠코가 언뜻 묘한 시선을 던지듯 보여지지만, 결국 그녀는 센타로를 좋아하고 있었으니깐.

 

하지만 리츠코의 절대적인 노력으로 센타로와 카오루는 다시 화음을 맞추며 얼어붙은 감정을 녹인다. 그리고 준이치는 주일미군이 드나드는 술집에서의 재즈공연을 제안한다. 드디어 카오루, 센타로, 준이치, 그리고 리츠코의 아빠인 츠토무까지, 그들의 실력을 펼칠 기회가 온 것이다. 카오루는 리츠코에게, 센타로는 유리카에게 보내는 재즈의 선율을! 하지만 어째 둘의 사랑 모두 다 순탄하지가 않을 것 같은 전개가 펼쳐진다.

 

 

유리카 라는 여인에게 반해버린 센타로의 귀엽고도 진지한 모습, 그런 센타로를 지금껏 바라만 봐왔을 리츠코의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그런 리츠코를 좋아하는 카오루의 마음이 섬세하게 그려진 2권은, 리츠코의 마음이나 센타로의 마음 역시 빼놓을 순 없지만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에 상처를 입힘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카오루의 마음이 아주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복잡한 관계를 (완벽하진 않더라도) 털어내고 재즈공연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들 또한 멋지다. 손님의 행패로 자칫 위기가 될 수 있던 그들의 공연을, 서로가 하나의 호흡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은 잠깐이지만 하나의 밴드가 탄생하는 우여곡절을 보는 것과 같았다. 특히 각자가 할 수 있는 악기를 통해서 하나의 재즈를 완성해가는 모습도 일품인데, 그런것들을 대범한 컷구성과 연출력으로 잘 표현하고는 있어서, 음악과 그 현장의 분위기를 상상하는게 어렵진 않지만 아무래도 만화책으로는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느낄 수 없음이 아쉽기는 아쉽다. 언급된 음악을 듣고는 있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아쉬움은 애니메이션에선 분명 채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내심 계속 하고 있다)

 

어쨌든, 재즈를 본격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에(?) 사용하게 되고, 첫 공연까지 무사히 마친 이들의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재즈와 연결되고, 그속에서 또 어떤 마음의 우여곡절을 겪을지.

 

아, 말미에 실린 단편 <인터체인지> 정말 정말 좋다. 책의 가치를 두배정도는 올려줄 수 있는 작품이다. 뒤에 단편들도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쏙 맘에드는지 모르겠다. (특히 <인터체인지>는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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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1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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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라고 보통 통칭되는 장르의 만화를 보는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하고 그 후에 만화책을 접했던 '후루츠 바스켓' 이후로는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괜히 걱정스런 마음이 먼저 들었다. 너무 유치하진 않을까, 재미없는건 아닌가 하는 괜한 우려들. 하지만 그것들도 한장한장 넘겨보면서 쓸데없는 기후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소설-만화-애니메이션-영화의 변주가 매우 빈번한 일본이지만,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방영된다는 것은 분명 괜한 이유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감성을 지닌 청춘, 그리고 재즈의 이야기였다.

 

 

60년대의 일본, 항운관련업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에 전학이 빈번한 미소년 카오루(안경 벗으면 완전 미소년이 되지만, 안경써도 충분히..짐작간다)는 언덕길 위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몇번의 전학을 겪었지만, 그중 5학년 때 교실에서 토를 한 이후로 카오루의 심리적 균형은 깨어진 듯 하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전학후에, 학급위원인 리츠코의 안내를 받던 도중 급우들의 요란한 시선에 메스꺼움을 느낀다. 그의 안식처는 바로 옥상. 하지만 옥상에는 센타로라는 같은반의 문제아가 잠을 청하고 있는 중. 그 순간 깨어버린 센타로와 얼떨결에 첫 대면을 하게된 카오루.

 

센타로는 카오루를 천사라고 부르고,(그 순간 뿐이지만), '순간 빛 속에 묻혀버린 것만 같았다.'라고 독백하는 카오루를 보고 있노라니, 이 둘의 첫 만남이 너무나 낭만적이어서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 만화가 '야오이'물이다! 란 것을 확신해 버렸다. 그리고 당혹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야오이 물은 처음인데 이걸 어쩌나..하면서 말이다. 헌데 어쨌든 계속 읽어보니 그렇지가 않다.

 

놀란 마음으로 메스꺼움을 진정시켜버린 카오루는 당황하며 내려왔지만, 자신이 자신답게, 그리고 크게 심호흡 할 수 있는 옥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열쇠는 센타로에게 있기에, 카오루는 다시 옥상을 향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열쇠를 훔쳐놓은 상급자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센타로가 있었다. 그리고 카오루는 열쇠가 필요함을 센타로에게 어필하고, 센타로는 상급생 세명과 맞붙어 겨우 열쇠를 다시 돌려받는다. 카오루는 자신때문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열쇠를 받아내려 했는줄 알았지만, 센타로는 돈을 요구한다.(물론 장난으로)

 

어쩌다보니 앞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놨다. 하지만 이후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이 첫부분은 생각해보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시작이다. 마치 야오이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카오루와 센타로의 만남이 얼마나 필연적인지 설명하듯 말이다. 카오루가 그동안 혼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그 옥상이라는 상징적 장소의 열쇠를 센타로가 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워진 카오루가 다시 옥상을 올랐을 때 그를 우산없이 비 맞게 하는 센타로는, 카오루가 그동안 갖고 있던 심리적 불균형, 그 두려움의 각도를 조금 바꿔놓아주기 시작하는 인물인 셈이다. 타의였지만, 두려움의 우산을 던지고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며 카오루는 이제 그 두려움의 껍질을 한꺼풀 벗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가 갠 뒤에 비스듬히 비추는 햇빛을 온통 독차지한 채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언덕길을 가볍게 내달려 간다. 녀석에게는 그 언덕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는 걸까? 그건 내가 본 적 없는 풍경일까?

 

청춘이든 아니든,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종종 닮고싶은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가까운 사람일수도 먼 사람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와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 또한 흔하지만은 않은 일. 자신에 대해서 아직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그리고 더 많은 것이 불안한 청춘,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닮아가고 싶어하고, 자신을 초라하게 비추고마는 순간들이 산재해있다. 어쩌면 아버지 아래서 자라고, 지금은 친척들의 눈치를 받으며 살고있는 카오루에게있어 센타로는 그런 동경의 대상이다. 동갑내기임에도, 빛을 보여주는 존재. 그래서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존재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 다행이도, 카오루는 친절한 리츠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클래식 레코드를 파는 곳을 물어보다가 리츠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코드 가게에 초대받게 된다. 온갖 그 나이의 남자다운 엉뚱한 상상을 하던 카오루지만, 그 레코드가게의 지하에서 센타로와 만나 피아노와 드럼으로 화음을 맞추게 된다. 드디어 파릇한 청춘의 '재즈'와의 만남이다. 거기에 옆집사는 연상의 준이치 까지 등장, 리츠코에게 잘보이고 싶은 카오루를 비롯한 그들은 어느새 같은 노래로 같은 리듬을 타고 있다. 그리고 이윽고 리츠코에게 나름의 데이트를 신청한 카오루는, 과연?

 

 

신해철을 좋아해서 예전에 신해철이 발매한 재즈앨범을 구매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그동안의 그의 음악스타일에 익숙해진 사람이 '재즈' 스타일 이라니, 거기다가 몇년 전 일이니,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리듬에 따분함 뿐이었다. 그래도 든 안전한 생각이, '나는 아직 재즈를 이해하기엔 어린가보다' 란 것 뿐. 리뷰를 쓰면서 책에 언급된 재즈곡을 몇곡 들었다. 글쎄, 솔직히 그렇게 큰 감흥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전에 들었던 감정보다는 분명 몇 걸음 더 나아가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큰 굴곡은 없지만, 잔잔하게 계속 들을 수 있는 음악. 계속계속 반복해서 듣고있어도 질리지 않다. 청춘과 재즈는 앞으로 또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처음엔 예기치 않은 장르인줄 알고 화들짝 놀라, 긴장하며 봤었지만,

한권을 다 읽은 시점에선 마음이 왠지 따뜻해지며 두근거린다.

그것은 비단, 그들이 이성간의 애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청춘이 만나는 사랑의 설레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결핍을 또래에게서 발견하려고 하는,

그래서 그런 결핍을 서로가 메워줄 수 있는, 우정이라는 큰 버팀목을,

누군가의, 지나간 어느때의 그 순간들을 참 예쁘게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끝에 실린 단편또한 그 하나의 작품의 가치를 톡톡히 하니, 장편의 긴 호흡과 단편의 여운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어 참 좋다.

 

센타로에게도 변화가 예상되는 2권에서 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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