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 어떤 방송국의 카피처럼, 만나면 좋은 친구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게감과 몰입감에 압도당해서 길게 함께하지 못하는 것,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시(詩) 라는 것이  그렇다. 한번에 서너편을 읽기가 버겁다. 어떨땐 한편을 읽어도 그 하루의 상념을 다 소진하는 때가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하루에 한가지에 온전히 빠져있을 수 있음에도, 그 감정들을 쪼개어 억지로 더 밀어넣는다는 것은 결국, 감각의 밀도를 들어낼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 페이지에서 느낌 감정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온전하게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다음 페이지에서 내가 받아들일 감정들은 그 다음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꾸준하게 조금씩 시를 읽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터인데, 그런 일에 여전히 서툰 내겐 읽다만 시집들이 어느정도 되는 것 같다. 시 한편 읽지 못했을 정도로 바빴을 때가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그래서일까, 잠시 만났다 오래 헤어진 그 언어들과 나는 아직도 너무 낯선게 사실이다. 인문분야와는 다른 이유로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시피한 내가 요즘 종종 시를 만나면서 당황스럽거나, 부적응했던 때는, 아주 깊게 개별화되고 산문화된 시들이었다. 내 삶이 시의 감성과는 너무 먼, 건조한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짧고 간략한, 그리고 항상 인류보편적인 이야기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사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마치 일상에서 흉내내보기도 할 만큼의 친근함을 갖고 있는 모습들 이었는데, 어쩐지 요즈음 내가 만난 시들은 개별적으로 구체화되고, 산문화 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미리 얘기하자면, 나는 이런 시들이 더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고전적 프레임 안에서의 시들만을 기억하는 내게 현대의 변화무쌍한 형식의 시는 아직은 좀 적응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그것들에게서도 어떤 감정의 전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번 류시화의 세번째 시집에 실린 것들은 전부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내게, 류시화의 시는 뭐랄까. 내가 기억하는 이전의 시의 형태를 살짝 비껴감에도, 내가 적응하지 못한 현대 시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았다.(이것은 높고 낮음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결코 보편적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깐, 모든 시들이 당연히 우리 사람의 마음과 삶의 희노애락의 순간과 빛나는 생명을 이야기 하겠지만, 그것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나와 더 유연하게 이뤄졌다고나 할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당연히 시의 수준을 왈가왈부 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내가 그 시에 뛰어들어, 틀리던 맞던 그 시가 가진 향을 음미하고, 거기서 내가 가진 향을 들여다보는 것이 수월했음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 무척이나 개별적인 느낌인 것이다.

 

 

 

 

 

여기에 실린 시 한편 한편을 해체하다보면 좀 더 세밀하고 자세한 '분석' 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류시화가 사랑하는 꽃이나 어떤 순간들, 관심의 방향은 나름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 맨 뒤의 이홍섭 시인의 글에서 충분하리만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어차피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그냥 뭉뚱그레한 느낌이라도 지금 여기다 적은 내 감정이 차라리 스스로에게 더 솔직할 것이다. 시에 대한 서평은 마치 시처럼 써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다 겨우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게는 지금 이 순간 조차도 쉽지 않은게 사실이니깐.

 

내가 생각하는 시는 우리를, 그 언어가 그려내는 시공으로 인도한다. 마치 액션영화를 보고 몰입하던 아이처럼. 시에 몰입하는 순간 모든 것을 시적으로 바라보며 말이다. 알아보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생명력있게 다가온다. 저 멀리서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불현듯 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못보던 것들을, 보고있음에도 초점 맞추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잊으려고 애썼던 사람의 등을 돌리게 한다. 고맙지만 얄미우니 아프면서도 잠시나마 따뜻해진다.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순간은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닐까. 우리가 고이 접어놓고 등돌렸던 감정, 순간, 사람들을 우리가 다시 언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략한 표현을 통해, 혹은 가장 다층적이고 흐리멍텅한 묘사를 통해서. 정말로 이 류시화의 시집에 실린 시들이 거의 대부분 그랬다. 나는 이 짧은 글자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감정과 사람과 순간을 떠올렸다.

 

한때는 술김에, 한 친구에게 '사람은(남자는) 두번 시를 쓰는데, 정확히는 사랑을 할때와, 사랑이 끝났을 때' 라는 헛소리를 한 적이 있다. 지그 생각해보면, 어차피 똥폼 잡는거 '여전히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모든 순간' 을 추가할껄 그랬다. 그것은 마치 더이상 숨길래야 숨길 수 없어서 결국 튀어나오고야마는 말 같은 것. 그 어떤 시 선집의 제목과 같이 누구나 시를 품고 살아가고, 시를 부화시킬수 있음에도, 우리는 마치, 이제는 잃어버려서 유전적으로 도퇴되어서 사라져버린 수많은 성질처럼 잊고 살아간다. 그것들은 우리가, 내가 되지 않고 여전히 계속 우리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했던 일들임에도 어느샌가 많은 욕망들에 휩쓸려서 창(窓)을 잃어 버린다. 시인들은, 그렇게 자기 스스로 잠궈놓고선 이제는 온갖 인위에 쌓여 나갈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가련한 영혼들을 밖으로 인도하는 자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우리가 높게 쌓아놓은 온갖 물질적, 근시안적 탐욕의 탑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일을 하며 말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순간 속 모든 꽃과 나무와 물과 흙과 태양과 하늘과, 누군가와, 그리고 그 순간이 남긴 상처, 그 상처가 뿌리가 되어 피어난 꽃, 그것을 아우루는 빛의 마법들일지도 모르겠다.

 

시는 대체 언제 어디에서 꽃피는 걸까. 시는 언제라도 마음 속에서 꽃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것 아닐까. 다만 살아가는 순간순간 우리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공기의 온도, 작은 배려, 비범한 슬픔과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그것들이 마음이라는 대지 속에서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가 때가 되는 순간에 검은 잉크를 따라, 혹은 씁쓸함을 튕기는 혀 끝을 따라 이 고독한 세상으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이야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는 역시 이런 것 같다. 사람에게서 태어나서, 사람을 이야기 하고, 헹여 사람이 부재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

 

 

 

 

 

 

류시화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아마 중학교 때 일일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알게 되었다기 보다, 내 인지안에 그 이름을 겨우 올려놓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지금은 무엇에 대한 감상문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도 그리 많이 읽지 않던 중학생이 쓴 감상문이 최우수라고 해봤자 무얼 대단했겠는가) 그저 한창 놀기좋아하던 때의 아이들 속에서 약간 더 성실한 글을 뽑아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이라는 책을 만났을땐, 마치 어제 일 일이기도 한 것마냥 류시화의 이 시집이 떠올랐고,  그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많은것들이 흐리고 낡고 불분명하지만, 왠지 그때의 모습이 그려질 것만 같기도 하다. 한번도 다시 찾아뵙진 못했지만 그 얼굴은 아직도 선명하다. 내게는 그 99년도, 아직 이십대 후반도 되지 않았을 꽃다운 선생님의 그 얼굴 그대로.. 문득 사진을 찍고서 날짜를 다시 살펴보니 5월의 어느날이다. 스승의 날을 삼일 앞둔. 나는 그날, 그 선생님께 무엇을 남겼을까.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내게 분명 그 순간을 남겨주셨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 생에 처음으로 시집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말이다. 철없고 투박한 남자중학생에게 선생님이 시를 선물한 이유는 어쩌면, 내가 많은 물음들과 관심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살아가길 바라셔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왜 시를 읽는지, 왜 그렇게 아플때 어줍잖은 시라도 홀로 써내려가야 했었는지. 시를 읽고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삶에는 시로써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문득 그때의 선생님은 누구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밤이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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