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의 <책 읽는 방법>을 읽던 중, <아주 사적인 독서>라는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알라딘 에서 로쟈 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의 신간이었다.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서 겨우 가끔 글을 끄적이고 있긴 하지만, 인터넷으로 장문을 읽는데 힘겨운 나는 사실 그의 글들을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있던 책의 테마와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과, 언젠가 로쟈가 쓴 책에 관한 글을 읽어보고 싶었던 막연한 생각이 이 책을 들게했다. 사실 히라노 게이치로의 글은 독서법에 관한 분석 수준이라 피곤하거나 할 경우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책은 꽤 유익하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에 따라 고전들을 쉽게 풀이한 이 책은 비교적 손쉽게 읽혔다. 물론 두 책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정말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고전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인 로쟈는, 소개하려는 책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책의 스토리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해당 책의 저자와 책의 연관성, 사회적인 위치까지 논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무척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애써 어려운 표현을 쓰지 않고선, 캐릭터를 내밀하게 분석하고 비교한다.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보는 내게, 캐릭터의 욕망을 통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지점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해당 고전 속 캐릭터의 욕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토리는, 집필 당시의 저자에 대한 분석은 물론, 출간, 혹은 고전의 반열에 서서히 오르게 되는 사회적 환경을 망라하며, 마지막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욕망에 대입된다. 한권의 고전을 둘러싼 이런 외적 이야기 들은 흥미와 몰입을 자아내고, 고전 안에서의 캐릭터, 스토리에 대한 분석은 쉽고, 현대인들과 접목되는 부분들은 다시금 세상과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틀을 깨는 해석은,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 읽어보고 싶게끔 만든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역할이었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그 역할을 해냈다고 본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여러 고전의 발견은 물론, 흥미가 생겼다. 앞으로 읽을 고전은, 의무가 아니라 욕망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고 늘 그럴수야 없겠지만) 그리고 아래와 같은 책들을 우선적으로 읽으려 마음먹었다. 여기에는 이 <아주 사적인 독서>를 통해서 거의 처음 접한 것들도 있고, 이전부터 읽으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것이 좀 더 의욕과 기대가 충만해진 것들도 있다.

 

 <아주 사적인 독서>에서는 <햄릿>과 <돈키호테>를 비교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행하느냐 머뭇거리느냐 의 차이였다. 햄릿은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를 위한 복수가 머뭇머뭇 거리는 데에 할 이야기들이 꽤 많았다. 아주 예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은 대부분, 그 유명세를 의아하게 할 정도였다. 꽤 긴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어떨까. 로쟈의 말을 빌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아이러니함을 통해 '복수 지연극' 을 테마를 중심으로 읽을 것에 대한 기대도 충만하다. 무엇보다, 늘 많은 것들을 미루는 나와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   

 

 

 

<돈키호테>에 대해서 사실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이번에 거의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알게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패닉의 '로시난테' 의 노래가 계속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기본적인 모험의 틀을 가지고선, 구시대적 유물이 되어버린 광기와 모험에 대해서 스스로 인지하면서도, 기꺼이 자신의 이상을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내던지는 그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내가 가려는 방향일 것 이라 생각되기에

 

 

외도는 사회적인 죄일까, 도덕적인 죄일까. 우리는 개인이 갖춰야할 도덕적 덕목을 어디까지 간섭해야 하는 것일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학습된 도덕적 기준을 벗어남으로 인해 한 인간을 사회적으로 압박하는 법적으로 제제하는 것에 대해서 물음을 던질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법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는 얼마만큼 정당한 것일까. 주홍글자는 우리가 제재하는 인간의 욕망과의 정당성을 생각케 해줄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변신>이란 작품을 아직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음은 사실 많이 부끄러운 지점이지만, 그래서 더 공개적으로 독서를 천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음에도, 대략의 줄거리를 알고있다는 얄팍한 만족감에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매력적인 일러스트가 함께하는 변신은 좀 더 쉽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에밀리 브론테에 대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궁금증으로 <폭풍의 언덕>또한 예전부터 읽고싶었던 고전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런 막연한 사랑이야기로 상상만 하던 이야기는 이제 인간의 '욕구' 너머의 '욕망' 과 그에 따른 '도덕' 그리고 구원 혹은 결론을 어떻게 그려내느냐는 <안나 카레니나> 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통해 서로 비교해 본다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을 듯 싶다. 물론 <주홍글자>도 여기에 비교 텍스트로 또 적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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