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이나 연인을 간병하는 이야기.. 흔하지는 않더라도 현실에서 분명 끊임없이 존재하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온갖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있다. 어릴적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1리터의 눈물] 을 보면서도 많이 눈물을 그렁거렸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DVD 와 원작 책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아직까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새로울게 없어 보였는데, 실제 인물들을 영상으로 보고나니 또 생각이 달라졌다. 글로만 느끼는 이야기가 아니라, 눈 앞에 실제하는 사람을 보고나니 마음이 또 달라지나 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가까스로 의식을 찾았지만 온몸이 마비되어 전처럼 이전처럼 보통사람으로 살 수 없는 여자친구를 10년이 넘게 간병하는 저자에 대해 '여자친구를 간병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으로 견딜 수 있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마치 저자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것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처음 여자친구가 쓰러지던 날들에 대해 서술하고, 둘의 만남과 각자 -저자인 진휘 씨와 상대인 수경- 를 읽은 후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작가의 솔직한 고민들과 괴로움, 고백과 다짐들을 읽으며 나는 나의 오만한 예상이 이미 작가가 오래전에 했던 고민임을 알았다. 누군가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10년이 넘게 매일 밤 슬픔과 좌절 속에서 숱하게 했을 고민을 나는 단 10초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하고 부끄러웠다.
이 책은 분명 놀라운 기록이고 기적이다.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먹는것부터 배변까지 챙겨야 하는 연인을 10년이 넘게 보살피는 것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게 다가 아니라 거기서 시작한다.
이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이 그렇듯, 왜? 어떻게? 에 대해 작가 스스로도 답을 찾고 헤매고, 다짐을 하는 과정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가 어떤 이였는지 묘사한다.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애정이 뭍어나는 두 사람에 대한 묘사는 대단한 어떤 사람이 아니라, 무척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에 대한 묘사다.
그들이 그런 일을 겪고, 희망을 갖고 치료와 재활을 시작하다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또 거기서 어떤 사소한 몸짓들을, 희망들을 찾아 더듬더듬 나아가는 길. 거기서 저자가 느끼는 솔직한 생각과 고백들. 이 이야기의 특별함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어떤 어려움을 가까스로 극복해서 자신들의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더 좌절감을 갖기도 하고, 방황하고, 방법을 찾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고백들이 이들이 여태껏 겪었던, 겪고있는, 겪게 될 미래를 목도하고 겸허하게 바라보고, 미약한 응원을 갖게 해준다. 그러니 이 책은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를 넘어선 너무나 치열하고 절절한 고백이었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인 샤갈의 그림을 보며 앞으로 나는, 여기 진휘 작가와 수경씨가 현실과 꿈 그 어디에라도 이렇게 마음껏 유영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