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한국의 탄생
조우석 지음 / 살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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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 작지만 무척 탄탄해보이는 체구, 꺼무잡잡한 피부, 결코 만만치않은 고집스런 표정.. 이것이 '박정희'의 겉모습이라면, 시를 쓰며 풍류를 즐기고 술을 연거푸 한꺼번에 마셔도 흐트림없을 정도로 주량이 강하며 학창시절때 5년간은 성적이 꼴찌까지 가면서 내리막길을 달렸던 모습이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박정희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어릴적 나는 '절대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외친 나폴레옹을 좋아하며 그에 관한 책을 즐겨보곤 했었다. 그런데 박정희 또한 나폴레옹을 무척 좋아했으며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기도 했다. 이 점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일단 공통점을 찾아냈으니 뭔가 공감할 만한 인간적인 모습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정확하게 박정희의 시대를 알지 못한다.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80년세대라 부모님이나 주변의 말들을 통합해서 과거의 인물들에 대해 평가하곤 했다. 그런데 평범한 부모님세대라면 모두들 박정희의 행적을 높게 평가했다. 그 시절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결코 지금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마도 지금의 인도나 필리핀의 판자촌 동네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소리높여 말하곤 했다.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지식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박정희를 소재로 한 책들이 참 많다. 어떤 책들은 박정희라는 사람의 인격을 다소 깍아내릴만한 소재로 가령, 여자문제를 거론해서 엮어가는 삼류 열애소설들이 있기도 하다. 그의 여자들.. 이런 식으로 근거 없는 많은 여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박정희 한국의 탄생]에서 영부인 '육영수'여사가 등장하는 페이지에 보면 박정희와 그의 부인이 싸움을 하다 재떨이를 던졌다는 한간의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런 폭력적인 모습의 박정희의 이미지로 엮어가는 책도 있다. 이런 소문이 나돌때 육영수 영부인은 더욱더 흐트러진 모습 없이 자신의 사무를 보았다고 한다. 나는 역대 한국 영부인 중에서 가장 영부인다운 사람을 고르라면 당연 우아하고 품위있는 '육영수'여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박정희가 외부에서 나라의 경제의 기둥을 만들고 부흥시키고 있을 때 내부에서 갖가지 나라안의 민간일을 도왔다고 한다. 서양에 퍼스트레이디로 힐러리와 재클린만 하더라도 이슈화 되어 많은 자기계발서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치와 풍족스런 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겉으로 자신의 모습을 자주 드러낸 재클린과는 달리 육영수 여사는 항상 박정희의 뒤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영부인으로써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다.

그 시절 아무래도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자유가 제한되다 보니 사생활보호만큼은 철저하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서양과는 달리 여러기록이 남지는 않았으리라. 소설가 김진명씨는 그의 책에서 박정희를 언급하곤 했었다. 그의 책에는 박정희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도 사실 이런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에 박정희가 친일파였으며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해 혈서까지 보냈다는 내용이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었다. 이 보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비난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시절 한국은 한국의 것이 아니었다.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얼마간은 식민지상황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는 식민지가 된 후에 태어났다.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철저한 몇몇 한국인의 배신이 있었고 진정 한국을 팔아넘긴 매국노가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는 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식민지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그 나라 사람들 모두를 몰살하지 않는 이상 식민지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은 따로 있고 뒤의 후손들은 식민지라는 빌어먹을 자산을 물려받게 된다. 그 후손들 중 가족이 있기 때문에 숨통이라도 트려면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터지게 싸울 각오를 가지고 위대한 안중근같은 사람처럼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인가, 아니면 맘속으로는 무척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소극적으로 이 생활을 받아들이며 살것인가.. 라는 선택이 생긴다. 지금도 한국인들 모두가 정의를 위해 피터지게 싸우고 있지는 않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지만 용기가 안나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박정희의 경우는 뒤에 대통령이 됐을 때 확실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확실했던 것 같다. 무능한 나라를 경제와 보안을 통해 부국강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때를 기다렸던 박정희를 보고 비난할수만은 없는 일이다.

역사를 보면 모든 사실들에서 옳고 그름은 찾아볼 수 없다. 흐름이 존재할 뿐이다. 어떤 일정적인 계기와 사건의 흐름... 그렇게 시작되서 지금까지 모든 역사들이 만들어진 것 같다. 뛰어난 대통령은 거의가 암살당한다는 말을 누군가가 한 적이 있다. 한국에는 박정희이후로는 암살당했던 대통령은 없다. 박정희가 지금 세대에 태어났다면 요즘 세태에 따라 또 다르게 정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개인적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한국 사회의 모습의 변화 말고는 없었던 듯 보인다. 측근들의 배신과 부인의 죽음, 헐뜯는 누군가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주변.. 그도 서양의 자유와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치하고픈 마음이 왜 전혀 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시절엔 그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비난과 싸움, 결국 죽음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갔다. 먹고 사는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을 판에 자유보단 배가 곪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배가 곪아본 적 있는 사람들은 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내 생각엔 박정희의 정책이 옳고 그르다라는 문제로 판단할 순 없고 그 시대땐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레 밝혀본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로마의 초창기 정부형태를 보고 가장 이상적인 정부 형태로 군주정치 독재정치를 꼽았다. 단 독재자가 그만한 인재가 되는 한에서 말이다. 로마의 초창기 정부형태는 무척 소박하여 독재정치를 통해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냈으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생겨났고 그래서 그 변화로 인해 멸망을 자초했다.

주관적인 시선도 다분히 있는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볼만한 점은 많은 것 같다. 기억되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한다.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이루어낸 업적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도 아직 있다고 하는데 비교대상이 되지도 않을만한 박정희에게 감정적으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볼만한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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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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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랄한 풍자, 완곡한 듯 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덤벼드는 문장. 몹시 매운 음식을 먹어 혀끝에 전해지는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속에서 속시림을 몰고와 긁어대는 느낌이 바로 이 책이다.

 

 저주 받은 운명앞에서 당신의 선택은? 계속 싸울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우리의 오스카는 몇번 굴복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모든것을 던진다. 살았을 적 그의 삶이 그리 밝은 편이 못되었다면 그는 마지막으로 가장 밝은 삶을 살았다. 인생.. 그것을 인생이라고 한다.

 

 때론 단맛도 있고 때론 쓴맛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단맛이 많고 어떤 사람에게는 쓴 맛이 많은 제각각의 인생들..

 

 오스카 가족의 인생들은 그야말로 몸을 던지는 잠깐동안의 단맛나는 사랑과 굴욕적이고 모욕적이며 비참한 대부분의 쓴맛나는 인생을 살아온 인물들이다.

 

 그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노. 물론 그들은 저주의 이름인 푸코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하고 자기 의지가 아닌 순전히 누군가로 인해 죽음과 대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스카엄마를 보면 자기 의지가 똑 부러지는 딸과 오타쿠적인 기질이 있지만 맑디맑은 오스카를 운명론앞에서 보란듯이 키워냈다.

 

 파란만장한 일들을 모두 푸코 때문이라고 주장을 하는 이들 앞에서 그들은 힘겨운 삶을 이겨냈다. 나는 오스카의 엄마 '밸리'에 대해서 특히 연민을 많이 느꼈는데 그녀가 자식들을 사랑한만큼만 살갑게 그들을 대했더라면 그녀도 덜 힘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어서 겪지 않으면 모를 일들. 오스카의 누나 '롤라'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이해가 간다. 오타쿠기질이 있는 오스카까지도 연민의 시선이 마구 가는 안타까운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실제로는.. 오스카를 옆에서 만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면? 솔직히 오스카는 부담스런 인물이긴 하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오스카이기도 하다.

 

 소설은 묘하게 정치와 맞물리게 스토리가 돌아가는데 이 나라의 정치에 대한 문외한이었던 나는 [반지의 제왕]을 처음 보았을 때 호빗이 무엇이며, 엘프가 무엇인지 몰라 한동안 헤매다가 조금씩 이해가 됐던 것처럼 읽어나갈수록 전체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신세계에 도착한 로빈슨크루소의 느낌이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닐까.

 

 

 각주와 원주를 포함한 설명은 저자의 문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아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

 

 오스카의 삶속에는 책이 항상 있었다. 소설속에는 오스카가 즐겨 읽었던 책의 이야기, 소재, 언어, 문장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처럼 이런 내용들을 알지 못한다면 이야기를 매끄럽게 읽어나가는 데 불편함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SF적인 이야기에 작가의 구성장치를 심어두었으니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며 오스카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흥미롭게 읽으면 이런 책들에 관해서 흥미도 생긴다.

 

 조금 복잡한 구성을 가진 것에 부담스럽다면, 이 소설은 오스카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의 '짧고 놀라운 삶' 속에는 푸코를 극복한 몸을 던진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웃는자가 진정 승자라 하지 않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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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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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는 중간중간 신열을 앓았다고 했던가? 작가가 앓았던 그 열을 나도 앓았다면. 그래서 한번에 읽어내릴수도 없어 몇번이고 쉬었다가 읽었다가를 반복했다면.. 그 자리에서 쭉 다 읽어내려갈수가 없었다. 도중에 눈물이 앞을 가려 앞이 안보이기도 했지만 것보다 내 맘속에서 일어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그 뭉쳐진 느낌 때문이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또한 나는 바로 느낀 점을 적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내 불안정했다. 이 책과 함께 몇일간을 불안정한 정신상태로 지내야했다. 꿈속에서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압박스런 상황과 공포적인 느낌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도가니'라는 책이 내 손에 들려지는 순간부터 내 마음상태 또한 '혼란속의 도가니'였고, '독안에 갇혀버린 뭉쳐진 무언가'였다. 어쩐지 도가니와 독안이라는 말은 소리단어의 유사성과 더불어 느낌 또한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사건은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 그 끔찍하고 어두운 재속에 갇혀버린 듯한 희망없는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어떤 것에 매달리고 견디며 살아 왔던 걸까. 어떤 권력과 돈 앞에서는 어떤 끔찍한 사건도 아무런 죄가 아닌게 되버리는 현실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인간의 형태로 커져버리게 될까.

 인간이 괴물을 만든다라는 말이 새삼 내 머리속에서 떠오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양심을 팔아버리고 돈과 권력으로 죄가 죄가 아닌게 되는 면죄부를 사는 그들도 괴물이고, 그들을 받아들이거나 방관하는 그들도 또한 괴물이며, 그 속에서 아무런 입장도 가지지 않고 무관심한 그들 또한 괴물이다. 그 속에서 괴물이 아닌 채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결국 괴물에게 잡히고 모략질 당하고 마구 할퀴며 망신창이가 되어서야 괴물들에게 굴복하느냐. 괴물을 해치우기 위해 전념을 다해 싸울것이냐. 이 두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는다. 확률 또한 위험하기 그지 없는 불행한 싸움이지만 굴복하면 결국 자신 또한 괴물로 변해버리지 않겠는가.

 책속의 배경은 무진이다. 회색도시, 안개도시 무진. 그곳은 유령같은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살아내는 삶들의 모둠체다. 안개는‘은폐'를 뜻하며 청각장애인들은 그 은폐속에서 고립되어 노골적인 악과 마주하게 된다. 그 악속에서도 덮어지는 진실과 방관하는 자들에 의해 점점 더 두꺼워지는 거짓으로 인해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점점 더 병들어간다. 이 곳에 나름대로 삶의 쓴맛도 보고 차디찬 인간관계도 겪어볼만큼 겪었다고 생각한 '강인호'가 피곤한 몸을 이끈채 던져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여태까지 그가 겪었던 인생은 상식적으론 이해가 가는 한에서다. 평범한 가장이 사업을 했다가 망하기도 하고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는 무게정도의 가쁜 경험이다. 마치 아프리카나 빈민국의 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희망에 대한 체념과 백색가면의 무표정한 얼굴의 아이들과의 첫대면에서 그는 학교에서 풍겨나오는 심상치않은 기운을 느끼게 된다. 이 날을 시작으로 그의 삶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의 덫에 걸리고 만다.

 
 빠져나오기엔 사건이 너무나도 잔인하고 악랄하고 도움이 될만한 사람조차 없는 악조건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택할 용기에는 그리 범위가 넓지 않다. 방관이라는 유혹자가 와서 유혹한다면 그 손을 잡지 않을 사람이 실제로 많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강인호는 많은 평범한 사람의 대변인의 역할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강인호'라는 인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전에도 진실이 파헤쳐질 시간은 많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건 바로 그들이 자신의 삶의 무게만큼만 살아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일을 알게 되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분노를 안겨줌과 동시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한다. 악은 감시의 시스템이 없을 때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 불의에 대항하여 싸울 수 없는 청각장애자들의 진실을 들어주려고 하는 정의의 사도가 없다면 이 악은 활개를 쳐 결국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광란의 도가니가 되버리는 것이다.

 이 정의의 사도로써 서유진이 칼을 뽑아든다. 한국에서 성폭력에 대해 대항하는 세력은 항상 여자의 용기있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남성들보다는 여성이 피해자일 비율이 높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남성보다 약한 여성이 아무래도 약한 자의 대변인으로써 보여주는 열정과 용기는 남성들이 가진 내면의 체력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눈에서 초롱초롱한 빛을 빼앗아 노기 어린 핏기를 어리게 만든 원흉들은 어느정도의 모욕감과 수치심은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법적으로 받은 형량은 터무니없다. 이로써 대한민국에서 죄는 돈과 권력으로도 살 수 있는 후진국의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재판중에도 거리낌없이 행해지던 변호사집단과 힘있는 작자들의 상대적으로 약한 청각장애인들에게 가해지는 언어폭력과 모욕감은 인간군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지체장애라 수치심이 없을 것이라 말하던 책속 변호사의 말은 칼날 같이 내 몸에 꼳혔고 그 말들은 모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해댔을 것이다. 그 말은 고로 장애를 가진 사람은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는 말이 되는 것인데, 진정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들은 책을 읽은 누구든지 알겠듯이 가해자인 그들이다. 양을 쓴 늑대로는 충족스럽지 않다. '탈을 쓴 지옥에서 몇천년 묵은 빌어먹을 악계'가 그들이다. 지금 그들은 무얼하고 지낼까. 한국의 있다고 하는 힘들이 보호해준 악계들은 어디서 무얼하며 그대로유지된 돈과 권력으로 누구를 또 농간하며 식욕하고 있을까..

  광란의 도가니. 나는 내 속에서 꿈틀대는 이 분노가 무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 내가 세상의 모든 불행한 일을 보면 인간으로써 마음속을 끓이는 분노와 또 다른 한 켠에서는 죄책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왜 잘 사는 사람들은 착하지 못하고 바르지 못할까. 아니. 왜 착하고 잘 사는 두가지 조건이 충족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이 책은 마지막까지 광란의 도가니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으며 또 어디에서는 어느 한부위가 약하게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자는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잔인하게 놀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서 귀와 마음을 열어두지 않는 이상 한국은 그만큼 살아나갈 희망이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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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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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메랄드빛 자연의 무한함을 가진 바다. 그 광할함을 닮은 하늘. 마음이 조급할 땐 결코 보이지 않는 두루뭉실한 구름. 낯선 생김새의 외국인이지만 본국의 사람들보다 더 친근한 그들의 얼굴. 타히티는 아니더라도 내가 필리핀의 바다에 갔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필리핀의 바다는 사진을 보더라도 타히티와는 색깔이 다른 나라다. 그러나 그곳에서 즐기는 자연은 공통된 감탄과 자유를 가져다 준다. [무지개]는 여행서가 아니지만은 여행의 판타지를 가진 아름다운 색깔도 가지고 있다.

  

 왠지 여행이라함은 모험과 자유의 이미지와 함께 들뜬 꿈의 환상과 마음 설레는 사랑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각자의 환상을 가슴에 품고 낯선 곳에서의 만남은 서로를 더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는 어떤 마법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로맨스영화와 책을 너무 많이 본 탓도 어느 정도 있으리라.

 

  어쨌든, 나는 [무지개]라는 책을 펴들면서 내가 생각했던 환상적인 꿈에 젖어서 집중했다. 짙은 색깔 꿀처럼 끈끈하고 달콤한 감정을 느끼면서. 처음에 한번 그림을 쑤욱~! 훑고 지나갔을 때의 예상과는 다르게 끝까지 읽어보면 이 이야기는 자유로운 남녀의 이야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남자에겐 가정이 있고, 여자는 그 남자의 부하직원인 셈이다. 문제는 둘 사이엔 남자의 아내가 존재하고 큰 울타리에는 가정이 둘러쳐져 있다. 게다가 아내의 배에는 남편이 아닌 다른 이의 아이가 잉태되어 있다.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부부. 나의 판단으로는 왜 둘이 이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과 조금은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상태를 유지하며 부부가 각자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한다니.. 게다가 결론을 봐도 결국 그 사랑은 가정의 울타리를 유지하면서 진행될 것 같다. 불륜. 예전엔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은 무책임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소중히 하지 않는 사람들의 전용코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 나이가 한살 한살 먹을수록 이해 범위가 늘어나면서 느꼈던 건 부정적인 느낌이 다분히 드는 불륜의 관계를 맺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감정과 관계속에서 결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지금까지 쌓아왔던 기질과는 다르게 빠질 수 있는게 어긋난 사랑이 아닌가하고 생각되었다.

  

 생각보다 인간의 감정은 약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것이다. 모성애, 동정감,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상대방의 마음에 쉽게 동요하기도 하는가. 그러니 이 어긋난 사랑은 꼭 나쁜 사람에게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를 보면 안나의 모습에서 책임감이 없었다거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소홀히 여기는 그런 여인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그녀에게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적인 삶에서 빛을 가져다 주었던 건 결과적으로는 불행함을 가져다 주었었지만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사랑이 전부가 되버린 안나는 사랑의 힘이 변질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녀는 스스로 자책했었고 스스로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불운을 예감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쓰기 전까지는 종교에 무척 심취했었지만 '안나 까레니나'를 쓰면서는 종교에 대한 회의를 느꼈었다고 한다. 결국 작가는 종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안나의 사랑에 대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지개]는 결코 어둡게 그려내고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무지개색을 연상하듯이 알록달록한 필체를 뽐내며 잔잔한 물결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자극적인 부분조차도 필체로써 무마시켜 충격적이지 않고 상황적인 설명보다는 여자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예측을 통해 감상적으로 엮어낸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문제점에 치중되지 않고 읽게 된 것이 아닐까.


 레스토랑이름 무지개, 타히티의 무지개, 과거로의 회상으로써의 무지개, 무지개가 가진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은 사랑과도 많이 닮아있다. [무지개]를 보면서 정말 탐나는 물건이 하나 생겼다. 멋진 그림속의 검은 피부를 가진 여인들이 한 블랙진주. 내 피부는 어중간한 피부톤이라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그림속의 여인들을 보면서 상상에 젖곤 했다. 타히티의 살인적인 아름다운 바다에서 검은 진주를 하고 해변을 걷다가 바닷속에 풍덩 몸을 담궈 노오란 상어를 구경하고 바다거북에게 먹이를 주며 시간이 멈추어 버린듯 고요한 세계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려보는...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기쁨이 두 배가 될지도.

 

 한권의 책에서 발견하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 [무지개]에서 불륜의 형태를 눈여겨 보았다면, 나는 [무지개]에서 타히티의 아름다움과 무지개의 알록달록함, 고요한 자연의 환타지에 흠뻑 빠졌다. 아마도 내 시선이 이 쪽으로 치우친 이유에는 독특하고 대비되는 색깔을 통해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 그림들과 평소에 여행에 대한 로망스가 있던 내게 바다 사진들이 한 몫을 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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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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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너무 무서워서 친구나 사랑하는 이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너무 꼬여서 아무리 애써도 도려낼 수 없는 그런 비밀. 어떤 이들은 무시하는 쪽을 택해서 그것을 깊이 묻은 채로 무덤까지 가져간다. 워낙 감쪽같이 숨기기에 때로는 자기 자신도 그런 비밀이 있다는 것을 잊는다. - (본문중)

 
  헨리 데이와 바꿔치지 않았다면 테스를 알지 못했을 테고, 자식도 갖지 못했을리라. 이 세상으로 돌아올 방법을 찾지도 못했을 테고, 어떤 면으로 파에리들은 내게 제 2의 기회를 준 셈이었다. (본문중. )


 어린시절엔 억압되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20대가 지나고 나면 자유는 얻었으되 책임이라는 짐을 어깨에 짊어져야한다. 결국 모든 나이에는 스스로 감당하는 나이만큼의 삶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하면서 내면의 자아를 만나게되고 그 속에서 방황하며 과거와 미래의 만남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라는 점에서 정신치유적이며 선과 악의 판타지가 아니라 그 중간쯤의 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매우 놀라운 소설이다.  

 읽는내내 몸에 부대껴 지는 진실처럼 생생했고 판타지소설의 요소중 한가지만 가지고 교묘하게 사실과 혼합시켜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스토리라는 것을 느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는 구성 전체가 마법과 판타지의 요소라 읽다보면 다른 세상을 구경해보는 신비함과 참신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스톨른 차일드]는 성장스토리의 단지 장소만 다르지 충분히 있을만한 일들같은 익숙함과 진지함을 그려냈다. 

 즉, 이 책은 판타지와 성장소설의 중간인 새로운 장르다. 헨리데이는 '바꿔친 아이'다. 그는 파에리에게 납치되어 바꿔친 아이의 권리가 찾아오기까지 100년동안이나 기다린다. 파에리들은 몸이 자라지 않으며 신비한 능력들 몇가지를 가지고 있다. 얼굴생김새를 바꿀수도 있고 뼈를 늘이거나 좁은 곳을 통과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는 매우 큰 통증이 따른다. 그들은 세세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며, 야생 동물들의 예민한 감각까지 가지고 있다. 어찌보면 '피터팬'처럼 평생 자라지 않으면 완전 좋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에리들은 일반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그러다 성장하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되며, 자신의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동경한다. 그래서 파에리 멤버인 스펙은 엄마가 되는 기분이 어떨까. 하고 묻곤한다. 파에리들은 평생 자라지 못하는, 그래서 사랑도, 자유도, 자신의 의미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든 '바꿔친 아이'가 되어야만 했고 이 관습은 몇백년이 지나도 많은 파에리들이 소수만 남은 가운데서도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아이젤이 오스카를 납치해 '바꿔친 아이'가 되려고 했지만 결국 아이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파에리로 살것이냐, 바꿔친 아이로 살 것이냐. 아이로 영원히 살 것이냐, 어른으로 자랄 것이냐. 야생에서 살 것이냐, 문명으로 돌아갈 것이냐. 버려진 아이로 살 것이냐, 가정이 있는 곳에서 살 것이냐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아이젤의 머리속을 혼란스럽게 했고 결국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젤의 죽음은 '바꿔친 아이' '헨리데이'에게는 당황과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파에리들에게는 오히려 여태까지의 관습이었던 '바꿔친 아이'가 되려던 마음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애니데이'와 바꿔친 아이 '헨리데이'의 만남이 있는 과정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알게 되기까지 많은 내면의 경험을 하게 된다. 30년이 지나는 기간동안 하루도 불안함을 버리지 못했던 바꿔친 아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자살. 자신의 진짜 이름이 '구스타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진짜 자신의 과거를 알기 위해 짚어가면서 가족의 불행사까지 알게된다. 바꿔친 아이가 자신의 자리에 들어와 구스타프 행세를 했을 때부터 그의 친형은 구스타프가 바꿔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서서히 진행되고 만 불행의 그림자.

 그 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혈족인 브라이언과의 만남. 죄책감에 시달리며 불안하던 바꿔친 아이 '헨리데이'의 불행한 모습을 보게 된 '애니데이'는 이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에도 너무 늦었지만 그동안 맺혔던 감정도 한 순간에 풀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과 화해속에선 찐한 감동과 해후의 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헨리데이'라는 걸 알게 된 '애니데이'와 자신의 과거의 이름이 '구스타프'였다는 것을 알게된 '헨리데이'.

 다소 이야기가 장황하고 복잡할 수 있었지만, 용케도 헷갈려 오류를 범하는 실수 없이 완성도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 '키스 도냐휴'. 이번 작품으로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연출될지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키스 도나휴의 첫 멋진 '장편소설'의 만족스러움을 그의 차기작품에 다시 기대를 걸어본다.   


 < 인상깊은 구절 - "네 문제가 뭔지 알아? 훈련을 안 하는 거야. 훌륭한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한 곡도 쓰지 않잖아. 헨리, 진정한 예술은 '되고 싶다'라는 헛소리가 아니라 훈련이야. 그냥 음악을 연주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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