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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한국의 탄생
조우석 지음 / 살림 / 2009년 10월
평점 :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 작지만 무척 탄탄해보이는 체구, 꺼무잡잡한 피부, 결코 만만치않은 고집스런 표정.. 이것이 '박정희'의 겉모습이라면, 시를 쓰며 풍류를 즐기고 술을 연거푸 한꺼번에 마셔도 흐트림없을 정도로 주량이 강하며 학창시절때 5년간은 성적이 꼴찌까지 가면서 내리막길을 달렸던 모습이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박정희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어릴적 나는 '절대 불가능이란 없다'라고 외친 나폴레옹을 좋아하며 그에 관한 책을 즐겨보곤 했었다. 그런데 박정희 또한 나폴레옹을 무척 좋아했으며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기도 했다. 이 점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일단 공통점을 찾아냈으니 뭔가 공감할 만한 인간적인 모습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정확하게 박정희의 시대를 알지 못한다.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80년세대라 부모님이나 주변의 말들을 통합해서 과거의 인물들에 대해 평가하곤 했다. 그런데 평범한 부모님세대라면 모두들 박정희의 행적을 높게 평가했다. 그 시절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결코 지금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마도 지금의 인도나 필리핀의 판자촌 동네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소리높여 말하곤 했다.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지식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박정희를 소재로 한 책들이 참 많다. 어떤 책들은 박정희라는 사람의 인격을 다소 깍아내릴만한 소재로 가령, 여자문제를 거론해서 엮어가는 삼류 열애소설들이 있기도 하다. 그의 여자들.. 이런 식으로 근거 없는 많은 여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박정희 한국의 탄생]에서 영부인 '육영수'여사가 등장하는 페이지에 보면 박정희와 그의 부인이 싸움을 하다 재떨이를 던졌다는 한간의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런 폭력적인 모습의 박정희의 이미지로 엮어가는 책도 있다. 이런 소문이 나돌때 육영수 영부인은 더욱더 흐트러진 모습 없이 자신의 사무를 보았다고 한다. 나는 역대 한국 영부인 중에서 가장 영부인다운 사람을 고르라면 당연 우아하고 품위있는 '육영수'여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박정희가 외부에서 나라의 경제의 기둥을 만들고 부흥시키고 있을 때 내부에서 갖가지 나라안의 민간일을 도왔다고 한다. 서양에 퍼스트레이디로 힐러리와 재클린만 하더라도 이슈화 되어 많은 자기계발서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치와 풍족스런 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겉으로 자신의 모습을 자주 드러낸 재클린과는 달리 육영수 여사는 항상 박정희의 뒤에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영부인으로써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다.
그 시절 아무래도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자유가 제한되다 보니 사생활보호만큼은 철저하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서양과는 달리 여러기록이 남지는 않았으리라. 소설가 김진명씨는 그의 책에서 박정희를 언급하곤 했었다. 그의 책에는 박정희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도 사실 이런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얼마전에 박정희가 친일파였으며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해 혈서까지 보냈다는 내용이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었다. 이 보도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비난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시절 한국은 한국의 것이 아니었다. 식민지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얼마간은 식민지상황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는 식민지가 된 후에 태어났다.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철저한 몇몇 한국인의 배신이 있었고 진정 한국을 팔아넘긴 매국노가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는 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식민지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그 나라 사람들 모두를 몰살하지 않는 이상 식민지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은 따로 있고 뒤의 후손들은 식민지라는 빌어먹을 자산을 물려받게 된다. 그 후손들 중 가족이 있기 때문에 숨통이라도 트려면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터지게 싸울 각오를 가지고 위대한 안중근같은 사람처럼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인가, 아니면 맘속으로는 무척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소극적으로 이 생활을 받아들이며 살것인가.. 라는 선택이 생긴다. 지금도 한국인들 모두가 정의를 위해 피터지게 싸우고 있지는 않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지만 용기가 안나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박정희의 경우는 뒤에 대통령이 됐을 때 확실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확실했던 것 같다. 무능한 나라를 경제와 보안을 통해 부국강병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때를 기다렸던 박정희를 보고 비난할수만은 없는 일이다.
역사를 보면 모든 사실들에서 옳고 그름은 찾아볼 수 없다. 흐름이 존재할 뿐이다. 어떤 일정적인 계기와 사건의 흐름... 그렇게 시작되서 지금까지 모든 역사들이 만들어진 것 같다. 뛰어난 대통령은 거의가 암살당한다는 말을 누군가가 한 적이 있다. 한국에는 박정희이후로는 암살당했던 대통령은 없다. 박정희가 지금 세대에 태어났다면 요즘 세태에 따라 또 다르게 정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개인적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한국 사회의 모습의 변화 말고는 없었던 듯 보인다. 측근들의 배신과 부인의 죽음, 헐뜯는 누군가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주변.. 그도 서양의 자유와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치하고픈 마음이 왜 전혀 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시절엔 그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비난과 싸움, 결국 죽음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갔다. 먹고 사는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을 판에 자유보단 배가 곪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배가 곪아본 적 있는 사람들은 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내 생각엔 박정희의 정책이 옳고 그르다라는 문제로 판단할 순 없고 그 시대땐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레 밝혀본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로마의 초창기 정부형태를 보고 가장 이상적인 정부 형태로 군주정치 독재정치를 꼽았다. 단 독재자가 그만한 인재가 되는 한에서 말이다. 로마의 초창기 정부형태는 무척 소박하여 독재정치를 통해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냈으나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생겨났고 그래서 그 변화로 인해 멸망을 자초했다.
주관적인 시선도 다분히 있는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볼만한 점은 많은 것 같다. 기억되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한다.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이루어낸 업적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히틀러를 찬양하는 사람도 아직 있다고 하는데 비교대상이 되지도 않을만한 박정희에게 감정적으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볼만한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