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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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메랄드빛 자연의 무한함을 가진 바다. 그 광할함을 닮은 하늘. 마음이 조급할 땐 결코 보이지 않는 두루뭉실한 구름. 낯선 생김새의 외국인이지만 본국의 사람들보다 더 친근한 그들의 얼굴. 타히티는 아니더라도 내가 필리핀의 바다에 갔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필리핀의 바다는 사진을 보더라도 타히티와는 색깔이 다른 나라다. 그러나 그곳에서 즐기는 자연은 공통된 감탄과 자유를 가져다 준다. [무지개]는 여행서가 아니지만은 여행의 판타지를 가진 아름다운 색깔도 가지고 있다.

  

 왠지 여행이라함은 모험과 자유의 이미지와 함께 들뜬 꿈의 환상과 마음 설레는 사랑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각자의 환상을 가슴에 품고 낯선 곳에서의 만남은 서로를 더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는 어떤 마법이 존재하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로맨스영화와 책을 너무 많이 본 탓도 어느 정도 있으리라.

 

  어쨌든, 나는 [무지개]라는 책을 펴들면서 내가 생각했던 환상적인 꿈에 젖어서 집중했다. 짙은 색깔 꿀처럼 끈끈하고 달콤한 감정을 느끼면서. 처음에 한번 그림을 쑤욱~! 훑고 지나갔을 때의 예상과는 다르게 끝까지 읽어보면 이 이야기는 자유로운 남녀의 이야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남자에겐 가정이 있고, 여자는 그 남자의 부하직원인 셈이다. 문제는 둘 사이엔 남자의 아내가 존재하고 큰 울타리에는 가정이 둘러쳐져 있다. 게다가 아내의 배에는 남편이 아닌 다른 이의 아이가 잉태되어 있다.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부부. 나의 판단으로는 왜 둘이 이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과 조금은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상태를 유지하며 부부가 각자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한다니.. 게다가 결론을 봐도 결국 그 사랑은 가정의 울타리를 유지하면서 진행될 것 같다. 불륜. 예전엔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은 무책임하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소중히 하지 않는 사람들의 전용코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 나이가 한살 한살 먹을수록 이해 범위가 늘어나면서 느꼈던 건 부정적인 느낌이 다분히 드는 불륜의 관계를 맺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감정과 관계속에서 결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지금까지 쌓아왔던 기질과는 다르게 빠질 수 있는게 어긋난 사랑이 아닌가하고 생각되었다.

  

 생각보다 인간의 감정은 약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것이다. 모성애, 동정감,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상대방의 마음에 쉽게 동요하기도 하는가. 그러니 이 어긋난 사랑은 꼭 나쁜 사람에게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를 보면 안나의 모습에서 책임감이 없었다거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소홀히 여기는 그런 여인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그녀에게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적인 삶에서 빛을 가져다 주었던 건 결과적으로는 불행함을 가져다 주었었지만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사랑이 전부가 되버린 안나는 사랑의 힘이 변질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녀는 스스로 자책했었고 스스로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불운을 예감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쓰기 전까지는 종교에 무척 심취했었지만 '안나 까레니나'를 쓰면서는 종교에 대한 회의를 느꼈었다고 한다. 결국 작가는 종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안나의 사랑에 대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지개]는 결코 어둡게 그려내고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무지개색을 연상하듯이 알록달록한 필체를 뽐내며 잔잔한 물결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자극적인 부분조차도 필체로써 무마시켜 충격적이지 않고 상황적인 설명보다는 여자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예측을 통해 감상적으로 엮어낸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문제점에 치중되지 않고 읽게 된 것이 아닐까.


 레스토랑이름 무지개, 타히티의 무지개, 과거로의 회상으로써의 무지개, 무지개가 가진 다채로움과 아름다움은 사랑과도 많이 닮아있다. [무지개]를 보면서 정말 탐나는 물건이 하나 생겼다. 멋진 그림속의 검은 피부를 가진 여인들이 한 블랙진주. 내 피부는 어중간한 피부톤이라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그림속의 여인들을 보면서 상상에 젖곤 했다. 타히티의 살인적인 아름다운 바다에서 검은 진주를 하고 해변을 걷다가 바닷속에 풍덩 몸을 담궈 노오란 상어를 구경하고 바다거북에게 먹이를 주며 시간이 멈추어 버린듯 고요한 세계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려보는...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기쁨이 두 배가 될지도.

 

 한권의 책에서 발견하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 [무지개]에서 불륜의 형태를 눈여겨 보았다면, 나는 [무지개]에서 타히티의 아름다움과 무지개의 알록달록함, 고요한 자연의 환타지에 흠뻑 빠졌다. 아마도 내 시선이 이 쪽으로 치우친 이유에는 독특하고 대비되는 색깔을 통해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 그림들과 평소에 여행에 대한 로망스가 있던 내게 바다 사진들이 한 몫을 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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