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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먼로의 죽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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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손가락 까딱할 힘만 있어도 그 짓은 한다'는 부정적인 말이 통하는 궁색하고 무책임하며 호색한 '버니'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결코 뿌리 내리지 못하는 남자의 비참한 삶이란,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낸들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화장품 방문 판매원이 들리는 집마다 여자들에게 찝쩍거리며 끈적하게 군다. 결국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고 나면 얻게 되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또다른 욕망이다. 그런 그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하고 역시 어울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아내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의 아내는 그가 어떤 인간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버리고 헤어졌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그녀는 싱글맘일지라도 또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로 차마 다 하지 못할 진상 '버니'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친구에게 추잡한 짓을 한 것을 알아챈 뒤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애정과 배신감의 충격으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아다시피 우울증이란 무서운 감정이다.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당사자를 질식시키는 것이 이 우울증이다. 이것을 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엔 이건 감정이다. 벗어나기 힘겨운 어두운 감정이 보이지 않는 몸 전체를 까맣게 둘러싸고 있는 것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상인 '버니'는 그런 아내를 가끔씩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기까지 하면서 다른 여자들을 꼬셔 자신의 끊이지 않는 욕망을 채운다. 아내가 감정 때문에 신체적으로도 병들어가고 있을 때 그는 한창 신날때다. 아니 그도 그것이 신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생활이 아닌 것보다는 낫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분명 그도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도 느낀다.

 그러나 달리 무얼 할지 모르는 '버니'. 가장의 책임도 가정의 평화와 화목함도 전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그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는 세상의 어두운 부분과 끔찍하고 더럽고 치사스러운 것을 먼저 보게 된다. 엄마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아이를 떠맡은 '버니'의 짐짝처럼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옮겨다니며 그의 해괴망측한 '짓거리'들을 관찰하는 아이의 눈은 밝을수가 없다.

 버니의 죽음은 어쩌면 자신이 죽음의 길을 스스로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에겐 그의 죽음이 그다지 피해가 될 것도 없다. 무가치한 인간의 죽음. 하지만 그럼에도 따지고 보면 그는 자신이 똑같이 닮은 부친의 재현이다. 부친이 아들에게 행한 불행은 버니에게서 마감되었다. 버니와 아이는 어른과 아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없다. 오히려 아이가 더 어른스러운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른이라고 해서 완벽하진 않다. 길 잃은 인간 '버니'는 낯설지 않다. 사실 버니같은 인간들이 꽤 된다. 또는 아내와 아이를 버리거나. 그러나 진상이고 몹쓸 인간 '버니'조차도 부분적으로는 불쌍하고 또 불쌍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종종 있다. 삶,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지려고도 하지 않고 일상에서 벗어났으면서 욕망을 분출하는 인간. 진화상으로만 본다면 무가치한 존재이자 덜 진화된 것이라고까지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안도가 든다.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배를 곪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는 좁은 승용차라는 불안정하고 불위생적인 환경과 백과사전 하나를 읽으며 지식의 즐거움을 알지만 학교도 가지 못하는 버니의 아들에겐 아비와 같은 생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이라는 무한한 길이 열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이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풀릴 지 모르더라도 '버니'를 따라다니며 못 볼 꼴 다 보는 것보다는 아동보호소가 안정스럽지 않을까.  

 작가는 아마도 독자가 이런 감정이 저절로 들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 소설을 썼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종의 반어적 형태 말이다. 최악의 상태를 노출시킴으로써 옳은 길을 보여준다. 뭐 이런 것이 아니었지싶다. 어둠이 있기에 빛을 정의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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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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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젊은이란 어느 시대에도 어쩔 수 없는 모순 덩어리이지요.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으리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도 몹시 상처받기 쉬워, 어른이라면 견딜 수 있을 어렵잖은 일로 바스러져 버리기도 하죠. ... 마치 유리로 만든 흉기처럼."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문제는 유리로 된 망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겁니다." - 460p
 
  모든 곳에 CCTV가 달려 있고 비상구를 벗어나면 경비실에 있는 경비원의 눈을 피해갈 수 없는 빌딩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일명 '밀실 살인사건'. 사장실에 있던 사장이 죽자 그 옆방에 있던 전무가 의심을 받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작 그는 그 시간동안 잠에 빠져 있었으므로 무죄를 주장한다. 마침 비서는 그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말한다. 그러나 그 증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변호사 준코는 그의 결백을 풀기 위해 도둑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한 열쇠전문가 '에노모토'를 부른다.


 먼저 '에노모토'와 '준코'가 실마리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으로 전반부를 채운뒤, 후반부에는 다시 새로운 인물의 전후사정에 의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친이 빌린 돈 때문에 사채업자로부터 쫓기게 된 '아키라'. 그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모르는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를 가지고 자신의 사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든다. 새로운 신분으로 자신을 감추었지만, 사채업자를 상처 입혔던 터라 신변에 위험을 느껴 지역을 바꿔가며 도피생활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가짜 신분으로 살 수만은 없었던 아키라는 위험한 결심을 하게 된다.


 우선, [유리망치]는 구성만큼은 뛰어난 편이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이야기 속에서 각자 풀어가는 실타래를 붙잡고 글을 읽다보면 서로 맞아 떨어지며 맞물리는 작용들에서 작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결과적으로 유리창 자체를 드러낸다는 부분은 상상이 쉽지 않아 현실적으로 너무 피곤한 범죄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이 책의 매력은 아무래도 풀어나가는 방식과 구성세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김전일과 코난 같은 추리만화가 생각나게 하는 <유리망치>는 만화와는 또다른 소설만의 추리적 재미를 지니고 있다. 다소 중간중간 너무 설명을 길게 빼 지루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추리면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이다.


 1+1=2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1+1=창문 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 책을 더 재미나게 보지 않을까. 내 기준으로만 놓고 보자면 재미로는 완전 만족스럽진 않지만, 방식과 구성면에서는 싫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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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빈스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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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과기록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으며 이름 조차 정확하지 않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법을 지키며 사는 시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한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자기 자신을 ’투명인간’이라 칭하면서 만일 스스로 원한다면 완전 새로 태어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16세 이후로 투표권을 잃었다가 36세가 되어서야 새로운 이름과 신분으로 투표권을 지니게 된다. 한번도 투표조차 해보지 못한 범죄자. 그런 그에게 투표권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나라의 시민으로써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건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라는 소재로부터 시작된다.

 영화 시나리오를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가 다시 소설용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듯이 책을 읽다보면 영화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하다. 뉴욕의 뒷골목 배경의 마약, 매춘, 범죄자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 이 책을 보면 영화 ’아이 러뷰 유 뉴욕’에서 보여준 밝은 모습의 뉴욕과는 상반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부패한 도시의 모습과 가장 사랑과 활기가 넘치는 모습의 도시의 모습이 같은 도시라는 것이 어째보면 아이러니스럽듯이, <시티즌 빈스>에서 또한 주인공의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 존재감 없는 과거의 모습과 투표권을 가진 투명인간과 비슷하지만 존재감 있는 현재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 중간 중간 살인이 일어나고 형사가 등장하고 마피아까지 나와 이야기가 얽히고 섥히지만 그런 이야기들로 이 책을 구성했을지언정 알맹이는 빈스를 통해 범죄자의 존재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악과 선의 대립이 아닌 회색들의 대립을 엿볼수 있다. 그 속에서 정치가와 정부, 법에 대한 글쓴이의 비판적인 시각을 추가로 읽을 수 있다.


 스릴러나 추리보다는 한 인간을 통해 이어지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존재에 대한 사념적인 소설이 이 책을 소개하기에 더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만일 내가 두번째 삶을 살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편집오류 - 273p(이 페이지 두번 있습니다)부터 288p까지 한번 더 반복됩니다. 편집오류가 좀 큰 듯. 한장이 아니라 제법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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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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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서강세력이 19세기까지 식민지를 통해 땅을 넓혀 세력을 확보하는 영토전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제국주의신념과 산업사회를 거쳐 자본주의의 선두로 앞장서 가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그 시대에는 세력이 컸던 소련은 사회주의 진영으로 서구 열강끼리도 두파로 나뉘게 되었다. 19세기의 대표적 서양의 이념은 아마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 또한 서강세력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지를 놓고 연구를 한 끝에 자기네들이 아시아를 식민지화하는 대표나라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본의 식민지나라에 포함되게 된 한국은 일본이 미국의 권력에 밀리면서 다시 미국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중국에서 그 시절 대표적인 사상으로 모택동이라 불리우는 사람에 의해 '문화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면 대한민국에선 남한은 미국의 손에, 북한은 소련의 손안에서 딱히 사상 때문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사상이라는 명분을 세워 서로를 믿지 못했다.

 

 

 1950년대는 6.25가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김구' 선생에 의해 통일의 희망이 있었지만 결국 남과 북은 다른 나라의 이간질과 비슷한 개입으로 인해 형제끼리 오해하게 되고 같은 민족끼리 증오하게 되었다.

 

 

 요네하라 마리의 '마녀의 한다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김씨의 말 중 - "독일은 점령받을 원인을 제 스스로 만들었고, 따라서 분단된 원인에 일정 부분 책임을 지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 조국은 아닙니다."
 
 - 3천만 명 이상의 사망자에 4천만 명에 가까운 부상자를 낸 인류 사상 최악의 역사가 된 제 2차 세계대전을 계획한 것은 독일, 일본, 이탈리아였다. 연합군의 추격을 받고, 침략한 곳에서 철수하여 본국까지 쫓겨 들어가 항복한 독일이 전후 처리로 인해 점령당한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1910년에 한일합방된 이래 세계대전때마저도 일본의 확장주의 침략전쟁에 희생되었다. 게다가 연합군은 일본을 점령했을 뿐 아니라 한반도까지도 점령 아래 두었다. 일본군 잔당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이유로, 그 때문에 민족이 분단되어 버렸다. 한반도는 미,소군에게 점령당할 원인을 자초하지 않았다.(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이다) 따라서 분단 원인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 101,102p


 

 

 어쨌든 그렇게 갈라진 남과 북은 21세기 들어서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강남몽'은 한국의 변천사가 가장 많았던 '8090'시대 대한민국 시절을 시작으로 1950년대 이전 조선의 상황에서의 인물들을 살펴본다. 작가가 인물을 표현할때의 시선은 지극히 중립적이다. 친일파, 친미파등 기회주의자들은 상황에 맞게 유리한 고지를 따내어 시대의 권력파에서 편안하게 살아간다. 그런가하면 운동가는 언제 어느때고 죽을 수 있는 위태한 상황이며 남한에서는 빨갱이라 하여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죽는 일도 허사하다. 그런 그들에게 사상적 갈림이라 하기보다는 반대파를 골라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뉘앙스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를 내세워 공산주의를 배척하지만 그 시절 남한의 어느 곳에도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실현된 적이 없었고,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훑어낸 부분 어느 것도 '강남몽'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자체가 작가가 시대의 모순을 찝어낸 일부러 준비해놓은 도구가 아닐까.

 

 그럼으로 우리는 책속의 인물 자체를 보며 100% 비판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기회주의자를 비판하기 전에 먼저 시대상황에서 그들 나름의 고충과 살아남기 위한 수단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들을 통해 시대가 변하는 모습들을 드러내면서 그 시대 때문에 변변찮이 가난의 바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그 시대 때문에 권력과 돈을 잡은 자들을 보여주면서 삶의 바탕과 내부의 욕망들을 표현해낸 '강남몽'은 이 모든 것이 자리잡게 된 배경을 시사한다.

 


 마지막에 백화점이 무너져서 살아남은 단 한 사람은 '정아'였다. 그녀는 백화점 직원이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부모와 장애가 있는 동생을 두었지만, 가난한 것 빼고는 걱정이 없어 행복했던 가족. 정아는 동생에게 '휠체어'를 사주고 싶지만 그것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좀더 돈을 벌어 모아서 사주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건물이 무너져 그 밑에 깔려 있을 때 그녀는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박선녀'의 목소리와 만나게 된다. 그녀와 죽음이 가장 임박한 상황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역시나 가족 이야기다. 재력이 있는 선녀는 '정아'의 이야기를 듣고 구출되면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하지만, 막상 건물 밑에 깔린 그녀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뿐더러 자신부터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판이다.

 

 

 그런 박선녀에게 정아는 말한다. '사모님이 다 해주실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시지 마세요.' - 338p

 


 '강남몽'의 마지막 장면은 그 모든 권력과 돈을 가졌단들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건물들의 잔해 속에서 살아난 생명에서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작가는 '정아'라는 인물에게서 희망과 해피엔딩의 틀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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