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오빠 부자 동생
로버트 기요사키 외 지음, 이주혜 옮김 / 명진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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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오빠 부자동생]은 실제로 친남매의 공동저로 영혼과 마음과 육체와 감정이 균형잡힌 형태로 자기계발을 해나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속에서 그들이 방황해온 유년시절의 이야기들을 마치 일기를 읽는 것처럼 진솔히 담아냈다. 부자오빠와 부자동생은 사실 완전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이들 인생의 갈림길에는 그들의 본성안에 내재되어 있는 소명이 달랐기 때문에 일찌감치 다른 형식으로 자신의 길을 밟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삶의 중요한 표지를 발견하는 순간에는 항상 같은 표지를 보았고 또 같은 사람에게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예전에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펴냈을 때의 로버트의 계발서와는 이 책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 나는 책이다. 어쩌면 그가 이 책을 쓸 당시 심장수술을 했을 때였기 때문에 자기인생을 돌아다보며 진정한 물음과 답을 스스로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 속엔 그의 영혼의 메아리가 포함되어있다. 또 그의 인생전반전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담하고 솔직하게 쓰여져 있다. 희망은 지독한 절망속에서 온다. (90p)고 스스로 말했듯이 노숙자 생활까지 해보았던 로버트는 풀러박사를 만남으로써 영적가족을 얻게된다.

풀러 박사는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189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밀턴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밀턴 아카데미를 거쳐 하버드대학에 입학했지만 문제를 일으켜 두 번이나 쫓겨난 끝에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이후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차 세계대전 중 미 해군에 입대했다. 전역한 뒤에는 사업에 뛰어들었는 데 얼마 못가 파산을 맞고, 어린딸마저 병으로 잃는다. 절망 끝에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풀러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이후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 업적을 남겼고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랙마운틴 칼리지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미국 건축가협회로부터 금메달을 받았지만 사실 건축에 관련된 학위가 없다. 하버드대학은 그를 가장 탁월한 졸업생으로 인정했지만 사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그동안 스물다섯 권을 책을 쓰고 2000권이 넘는 특허를 냈다. (본문정리)

풀러박사는 미래학자, 철학자, 발명가, 건축가, 수학자, 과학자 등으로 활동하는 실로 놀라운 인물 같았다. 풀러박사의 인생이야기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는 실패와 절망은 성공과 행복과 함께 존재하며 특별해서가 아니라 평범했기 때문에 알을 깨고 나올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에 로버트는 재능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신이시여, 내 재능이 대체 어디 있습니까?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외치기 전에 무엇이든 세상을 위해 한 번쯤 사용하고 베풀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내 재능이 대체 어디에 있는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의 헌신이나 봉사를 해보는 것이다. ..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타인에게 베풀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가지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재능을 인정해도 그 재능을 세상에 되돌려주기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재능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재능을 타고 났어도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이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82p본문참고)

놀라운 것은 완전 다른 길을 가고 있었던 이 시기에 로버트의 동생 에미 또한 풀러박사에게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두 남매는 성격도 완전히 달랐고 추구했던 삶의 방식과 소명도 완전히 달랐음에도 같은 사람을 존경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위대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존경심을 얻고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에미는 풀러박사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뒤 불교의 학문에 눈을 뜨게 된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영적인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번뇌와 고통의 과정에서 그녀는 그녀의 영적인 가족인 달라이라마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철학적인 면이 있었다. 물론 살았던 곳이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배경이었기 때문에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녀는 전쟁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늘 골똘히 생각했고 프로이트와 융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성인이 되어서 제법 오랫동안 방황하지만 자신의 소명을 찾고 종교에 심취한다. 유일신을 내뱉는 많은 종교단체들에 대해선 그녀는 부정적인 시각을 밝힌다.

남성은 여성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아래로 내려가 보지 않고서는 위를 알 수가 없고 바깥이 없으면 안을 알 수 없고 흰색이 없으면 흑색을 알지 못하며 느리지 않으면 빠름을 알 수 없고 부정이 없으면 긍정을, 그름이 없으면 올바름을, 지옥이 없으면, 천국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187p)

그럼에도 종교에선 유일신을 고집하며 서로 진리와 뜻에 가까이 가기 보단 아웅다웅 싸우기 바쁘다. 나는 에미의 시각과 같다. 딱히 종교론자는 아니지만 불교에선 종파가 많지만 서로 배척하지 않는 다는 사상이 마음에 들었다.

선행이란 앞서 일어난 운동이 전해주는 반응 혹은 메아리, 격려 등을 말한다. 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긍정적인 반응, 이를테면 돈이 들어온다거나 기적이 일어난다거나 귀인이나 마법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만약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면 나는 직관(무의식적인 마음과 의식적인 마음 사이의 다리)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정하거나 과정을 변화시켰다. 선행은 지구가 왜 태양 주위를 도는지, 달이 왜 지구 둘레를 도는지, 별들이 왜 우주공간에서 움직이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194P)

로버트와 에미가 소명을 찾아가는 길을 읽어나가다 보면 선행이라는 말을 굳게 믿게 된다. 이 말은 결국 모든 관계가 서로 얽혀져 있고 결과는 내가 불러온 원인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혼의 발달단계가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소명을 가면서 선행을 잊지 않으며 번뇌에 휩싸이지 않는 단계일 꺼라는 생각이 든다. 부를 얻게 되는 방식을 논하는 타의 자기계발서에 비해 영혼치료서같은 느낌이 드는 이 책은 읽고 나면 차분하고 푸근한 마음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너스로 로버트와 에미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몇가지 사진들과 달라이라마와 오프라윈프리 사진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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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연 을유세계문학전집 9
조셉 콘라드 지음, 이석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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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속을 파헤쳐보면 어둠만이 존재할까? 만일 한계에 치달은 상황에 몰린 인간에게 선과 악의 선택권밖에 없다면, 모든 인간이 악을 택할까? 어둠속에서 존재하는 그 실체를 제대로 판단하기가 과연 가능할까. [어둠의 심연]의 작가 콘래드는 인간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모든 인간은 태초에 가진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집단 무의식의 모든 과거의 기억과 연대의식에서 비롯된 인물들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야기의 구성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주머니의 소개로 수월하게 교역상에 취직하게 된 말로는 강의 상류의 내륙교역서에 가서 수집된 상아를 운반해오고 유럽에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던 '커츠'를 찾아오기 위해 아프리카의 '어느 강'으로 가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유럽식 교육의 수혜자이자 지식인이었던 '커츠'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태고의 끝에서 들리는 야생의 소리에 동화되는 자기 자신 스스로도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흑인들과의 마찰과 원주민과의 대립, 커츠의 변화, 내면의식의 동화 등은 말로에게 내면에 잠긴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작가 콘래드는 콩고강을 운행하는 운항선의 선장직을 맡기도 했으므로 [어둠의 심연]은 많은 부분이 실제에 거의 가까운 상징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어둠의 심연]도 경험의 기록입니다만, 그 경험은 독자들의 정신과 가슴에 절실히 와 닿게 하려는, 내가 믿기로는 나무랄 데 없이 정당한 목표를 위해, 실제로 있었던 사실들로부터는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콘래드의 작가노트중)

 

 

 '제가 지금 성취하려는 작업은 글의 힘에 의거해서, 당신들이 들을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라고 밝혔듯이 콘래드는 이 책을 통해서 문장의 형태와 울림을 통해 독자들이 느끼는 만큼 볼 수 있게 했다.

 

 

 떠나기 전에 의사와의 만남에서 의사는 말로에게 머리 치수를 재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과학을 위하여, 저는 해외로 나가는 분들에게 두개골을 측정할 수 있게 허락을 구하지요.' 말로가 이에 '그들이 돌아올때도요?' 라고 물으니 그는 말한다.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변화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아시겠지만...'

 
 해설부분에선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말끔히 정리될만큼 말끔하게 설명하고 있다. '커츠'는 '문화적 변절'이 가장 잘 드러난 인물로 그를 통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의식으로 끝나는 한밤의 무도"는 도덕적 사고로 무장한 지성인조차 내면의 악이 발호할 때는 속수묵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그의 내부는 텅 비어 있을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한순간 들었는데, 왜냐하면 그곳에는 외부의 견제가 없으니까 말일세,. 한때 온갖 열대의 질병이 교역소의 모든 '직원'들을 쓰러뜨렸을 때, 그가 이처럼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네. '이곳으로 나오는 사내놈들은 속이 비어 있어야 한다.' 마치 이 말이 그가 지키고 있는 어둠의 심연으로 통하는 문이라도 되는 양, 그는 예의 그 미소로써 얼른 이 발언을 봉인해 버렸다고 하네.'(본문중)

 

 

 아프리카에서는 무엇이나 가능하므로 사업에 방해되는 자는 목을 매달아 버릴 것을 주장하는 본부장의 숙부도 야만적인 본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해설자는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

 


 개인이 악을 제압하고 적어도 제압한 듯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어떤 저항력이 그의 내부에 있어서가 아니라고.  말로는 원칙이나 도덕이란 한번 세게 흔들면 세게 날아가 버리고 말 "누더기"나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왕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그는 문명세계의 개인은 바다에 떠 있는 "노후한 배"와 같고 이 배가 당장 악의 세계로 침몰하지 않는 이유는 쌍닻인 "경찰관"과 "푸주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켜보는 경찰이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에, 정적의 순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속삭여 줄 친절한 이웃의 경고 목소리가 없는 절대 정적의 순간에,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는 발길이 태고의 어떤 지역으로 사람을 인도할 것인지 자네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라네.(106-107p)"


 콘래드를 옹호하는 진영과 비판하는 진영의 주장들도 흥미로웠다. 옹호하는 진영은 콘래드가 식민주의를 고발하고 제국주의의 이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신랄하게 풍자하였다고 주장하였고 비판하는 진영에서는 콘래드의 글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에 대해 비판했다. 그들은 콘래드가 흑인의 식인종문화에 대해 조롱함으로써 흑인들을 비하하였다고 말했다. 이에 해설자는 흑인의 식인문화는 아랍 노예상들과 레오폴드 국왕 간에 있었던 전쟁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몇몇 콩고 부족들에 있어 식인은 전쟁과 관련된 전통 의식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신체가 온전해야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아랍인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심리전인 셈이었다."(255p)

 

 

 콘래드는 영국을 유럽의 여타 제국들의 식민주의와는 질적으로 차별하였다. 이는 그가 [어둠의 심연]에서 지도상의 지역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사업다운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지역(영국)과 대조적으로 다른 제국들의 식민지는 빈정거리는 투로 폄하되거나 무시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식민지는 "빌어먹게 크게 색칠이 된" 지역으로 비난받으며, 이탈리아와 포르투칼의 식민지는 "약간의 초록색 지역"이나 "여기저기 문질러 칠한 듯한" 지역 정도로 무시되며, 독일의 식민지는 진지한 의도를 결여한 채 맥주나 즐기는 곳으로 폄하되고 있다.'


 
 이를 통합해보면 콘래드는 식민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내용을 책에 담았다기 보단 인간 내면의 악에 대한 무능함의 본능을 담았다는 주장이 더 가까울 듯하다. 

 

 영국에 대한 콘래드의 입장은 자신의 조국(폴란드)에게 버림받고 오스트리아의 시민권 취득에도 실패했지만 영국에서 자신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 나라에 대한 호감이 남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평생. 두 평생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지만 영국의, 아니 대영 제국의 응석받이 양자였다는 사실을 마침내 여기서, 다른 지면보다 못할 것이 없는 여기에서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인류에게 자연스러울 정도의 허영과 겸손의 본능을 따를 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 경이적인 행운과 같은 요행이라는 점을, 속을 헤아릴 길 없는 신들의 제단에 감사와 희생을 바쳐야만 할 그런 행운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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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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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호의 세상은 서로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었다. 같은 사람이 어떤 때는 강자였다가, 다른 때에는 한없는 약자가 된다. 이렇게 얽히고설켜 있으니 서로 도와야 마땅하다는 것이 구호 세상의 법칙이었다. 멋있었다.(본문중) 
  

 58년생. 엄마와 나이가 비슷하고 생일은 나보다 4일 빨라 같은 별자리를 가져 왠지 더 친근한 한비야씨. 내가 꿈꿨던 세계여행을 먼저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이룬 그녀를 나는 더 친근하게 ’선배’라고 부르고 싶다. 평소에 세계에 눈을 돌리던 나에게 그녀는 나의 우상이 되었고 내가 언젠가 가고 싶어했던 길을 먼저 가서 흔적을 남겨놓은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여자라서, 두려워서, 걱정이 되서, 이런 마음이 가득찼던 내 머리속을 깨끗이 비워내고 그녀가 겪었던 사랑과 희망과 용기가 내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지금 나는 이제 열정을 뿜어낼 수 있는 힘이 불끈 생겨나고 있다.  

 자신이 약자였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약자에게 더욱더 감정이입이 되어 함께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그 이유로 인해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과 함께 싸울 수 있었던 여인. 왜 힘든 긴급구호를 하냐는 물음에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녀.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데있는 거니까 초짜라고 주눅들지 않는 그녀. 목숨이 끊어지기 바로 그 순간까지, 가망성이 0퍼센트가 되는 그 순간까지는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긴급구호 요원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그녀.

 이 책을 보면서 같은 한국인이라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고 자긍심을 느끼게 해 준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몇달전 나는 세계의 극빈층에 대한 자선과 기부에 대한 어느 여성 사업가가 엮은 [파란 스웨터]를 매우 관심있게 읽었다. 저자는 미국의 중산층에서 태어났는데 국제은행가로 일하다가 돌연 아프리카로 가서 파란만장한 경험을 쌓으며 빈민들을 구제하는 사업에 몸을 던진다. 그녀는 처음에 서구인의 시선대로 그 나라의 사람을 대했지만 점점 그 문화와 관습, 복잡하게 얽힌 체제속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자선기금에만 의지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지속적인 수입을 창출해서 사업으로 만들고 그것이 모델이 되어 퍼져 나가 더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잡는 법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녀가 하려는 일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블루베이커리’였다.

 그러나 전쟁통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녀가 믿었던 사람들이 심하게 얽혀버린 이해관계에 인간의 욕심과 탐욕같은 것까지 꼬여들어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태를 보고 좌절한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준비한다. ’진리를 향해 나아갈 때 저지를 수 있는 실수는 딱 두가지다. 끝까지 계속 가지 않거나 첫 발도 떼지 않는 것 - 붓다 - 의 말을 마음에 되새기면서.

 한비야씨나 이 미국인 여성 사업가나 사실 본질은 같은 마음에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천천히 촛불을 켜 희망을 부르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왜 멀리 있는 나라를 도와야 하냐고, 희망이 없으니 도울 필요가 없다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우리 나라는 해외 원조를 받았다. 총액이 무려 25조 원이었고 1960년대에는 한 해 원조 액수가 우리 나라 보사부 예산의 두 배를 능가하기도 했다. 실제로 외국 기자를 이런 기자를 썼다고 한다. ’35년간 일본 식민지에, 남북간 이념 대립에, 이제는 전쟁까지 하고 있는 한국이 제 발로 서기를 바라느니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바라겠다.’고.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 몰랐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한국은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국제 원조의 최대 수혜국이었던 한국이 해외 원조엔 인색한 편인 듯 하다.  대기업이나 고액 기부자는 줄었지만 개미군단의 후원자들은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하는 걸 보면 한국엔 잘 사는 중산층이 많이 늘었다지만 그 중에는 풍족해도 남과 나누어 갖지 못하는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보며 씁쓸함과 동시에 개미군단의 아름다운 마음에 희망을 느낀다.

 "현장에서 떠나기 얼마 전에 받은 이메일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들이 목숨 바쳐 일한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는 사람 전체 중 얼마를 돌볼 수 있느냐, 잘 해봐야 10만분의 1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이에 바닷가에 사는 한 어부가 아침마다 해변으로 밀려온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 살려준 이야기가 떠오른 그녀. "그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몇 마리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동네 사람들의 물음에 어부는 대답한다. "그 불가사리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 거죠."(본문)

 독도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무관심한 세계인들의 반응에 한국은 너무 야속하고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내가 도와줘봤자 그 나라는 자체 내의 가난이라는 악습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던 많은 경제서들을 보면서 어느정도 그 의견에 동감했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내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됐다.

 언제나 작은 것이 우리를 괴롭히고 상처를 내는 것처럼 사람들이 보내는 따뜻한 눈빛, 수줍은 미소, 살짝 스치는 작은 손동작 하나에도 고마움이 느껴져 구호 요원들을 위로하고 감동시킨다는 것처럼 그녀의 직업은 비록 몸과 마음이 힘들지라도 가장 보람도가 높은 직업이다.

 
 공짜 식량이나 두 손 놓고 앉아 날 돌봐달라는 동정심이 아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한 줌의 씨앗을 바라던 아프리카인들,  "앗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평화를)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인사를 주고 받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평화를 빌어보지만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이라크, 초코릿, 예쁜 색깔의 계란, 아이스크림 모양의 지뢰로 아이들을 유혹하여 다치거나 죽게 만드는 사람들. 심지어 책이나 곰 인형 안에 지뢰를 묻어놓기도 하는..,

 사자의 산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단어를 가진  ’시에라리온’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언급된 나라이기도 하다. ). 그러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생산하여 소년병을 키우는 곳. 지난한 과정 없이, 준비나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무엇인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지 모른다는 헛된 꿈이 아이들의 발목을 붙잡아 다이아몬드를 찾지도 못하면서 3년동안 시간을 허비하는 소년들. 전쟁 중 자신의 가족들이 다른 소년병에게 희생되고 자신도 또한 다른 아이들의 가족을 희생시키고 성폭행도 방화도 수없이 했으며 민간인 팔다리도 셀 수 없이 잘랐다던 열다섯쯤 보이는 소년들. 자신을 먹여주는 세력을 위해 싸우겠다는 그들.

 그들을 보면서 힘이 생겼다가도 힘이 빠지기도 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 또한 가슴이 아프고 힘겨운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풍족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한 모습이나 불의한 모습을 보더라도 방관하거나 외면, 무관심의 반응이 많다. 그들은 그냥 보기에 싫은 것은 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들의 차가운 외면에 세상의 버림받은 약자들은 7초마다 ’생명’은 고귀하고 경이롭다는 말뿐인 문장을 외치는 귀한 사람들의 말에는 전혀 아랑꼿없이 목숨을 잃고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의 어느 나라는 무장을 하고 테러와 전쟁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찟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국제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면 쉽지 않은 절차와 복잡한 프로세스가 따른다. 그래서 마음 같아선 모두를 돕고 싶지만 물자가 충분치 않아서 마음 아프지만 돌아서야 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결코 발전도 없었을 것이고 평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영원히 떠나간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인사 후 대천명. 사람이 할 바를 다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의 도움을 청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는 한비야씨를 보면 정말 강인한 정신과 아름다운 마음에 감탄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앞서가는 사람 없이 길 없는 길을 가야 하는 게 제일 힘든 그녀. 이 길 끝은 과연 정상인가, 내가 가진 식량과 장비는 충분한가. 앞으로 닥칠 크레바스와 암벽은 어떻게 넘어가나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버겁고 무섭기도 하다는 그녀. 남보다 강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해지려고 용기를 가지기 때문에 강해진다는 것을 알게 해준 그녀.  "스키를 처음 배운 날이라면서 ’난 한번도 안 넘어졌어’하는 사람은 ’난 아무것도 못 배웠어.’하는 거죠. 누구든지 넘어지면서 배워요." 이 말은 그녀가 한 말이다.

  흔들리고 두려울 때 그녀를 보며 힘을 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녀가 우상이고 그녀의 용기를 배우고 그녀가 표시해놓은 표식을 따라 길을 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언제나 안전하고 평안했으면 하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 변하지 않는 열정을 끝까지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갔던 길의 뒷모습에서 힘을 내는 뒤에 남은 사람들을 위하여. 또 그녀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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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도 넉넉하다 - 천년의 지혜와 만나는 안대회의 세상 이야기
안대회 지음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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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씨가 썼던 [부족해도 넉넉하다]는 친구에게 보낸 짧은 글이다. 황 아무개가 늙어서도 계속 집을 짓는 등 호사스럽고 욕심 사납게 산다는 소문을 듣고 충고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넉넉해도 부족한 사람과 부족해도 넉넉한 사람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곧 이 글은 옛사람이 쓴 다른 글 모음집과 함께 대표제목으로 선택된다.
 

 저자 안대희씨는 고전산문을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자신의 평설을 붙여 독자로 하여금 더욱더 친근하게 옛사람의 글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옛 선비들의 모습들이 현대인의 삶과 특별히 다르지 않으며 그들을 통해 시대상의 풍습과 비판정신까지 엿볼 수 있다.

 

 [동해의 풍파 속에서]의 임숙영의 글에는 객이 풍파만이 가짜가 진짜보다 위세가 센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 모든 것이 가짜가 진짜보다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글쓴이는 그의 주장이 틀리다고 거부한다. 일반인은 속지만 군자는 속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자신을 잘 드러내는 능력에서 가짜가 진짜보다 뛰어나다는 점 때문이다. 세상에 진짜가 없지 않지만 자신을 포장하여 드러내는 능력의 부족 때문에 가짜에게 밀린다. 그렇게 보면, 이 글은 자신의 능력을 잘 포장하는 사람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동해 바다에 와서 거센 파도를 보고 마음을 달랜 위안의 작품이 아닐까.(88p참고) 이 부분을 보면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또 그 사유가 현대에 와서도 별반 달라진 게 없음을 보면서 인간의 본질중엔 잘못을 반복하는 습성이 남아있는 것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언제나 역사가 과거가 교훈을 시사하더라도 일부 깨어진 사람말고는 언제나 그 나쁜 습관과 행동들을 답습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가하면, 독특한 글들도 눈에 많이 띈다. 홍대용의 [궁리하지 말고 측량하라]는 글은 과학과 지식의 생각을 짧게 드러내고 있는데 시대상을 뛰어넘은 진보적인 주장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재실감나게 해주는 글이다. 

 

 재밌는 글들도 있다. [베개야 미안하다]의 이광덕과 [사기술잔]의 김득신의 글에는 베개와 술잔을 통해 재미난 일화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두 배로 사는 법]의 이광은 많이 먹는 것이 배에 똥을 채울 뿐이라며 적게 먹고 잠을 줄이는 것이 인생을 맑고 밝게 열심히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다보니 정찬주씨의 저서인 '뜰앞의 잣나무'에서 스님이 언급했던 '똥막대기'가 문뜩 떠올랐다. ^^ 식욕과 탐욕을 버리는 것이 수행과도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권상신의 [자고 깨는 것에도 도가 있다]는 잠에 대한 참신한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서형수의 [조선에는 선비가 없다]에서는 예리한 비판의식과 가혹할만치 혹독한 지적이 들어있다.

 

 "자기 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한 사람을 선비라 하고, 문화적 역량이 큰 사람을 선비라 하고, 도로써 민심을 얻은 자를 선비라 하고, 고금을 잘 구별하는 사람을 선비라 하고, 천지인 삼재에 두루 통달한 사람을 선비라 합니다. .. 이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우리 나라 사람을 두루 헤아려볼 때, 성취한 수준이 만에 하나라도 저 기준의 근사치에 접근한 선비가 있을까요?.. 게다가 먼저 배운 것을 주장으로 삼아 다른 많은 사람을 궁벽한 시골뜨기라고 배척해버립니다. 부분한 학설이 너무 많다 보니 달리 주장하는 자를 개인적 원수로 여기고, 남의 결정을 지나치게 모질게 비판하며 너무 심하게 속박합니다." (128p참고)

 

 그의 글을 읽고 현대에 적용해보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그의 글은 모든 지식인들에게 일침을 날린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함을 역설[力說]한 것이 아닐까.

 

 유언호의 [아들에게]는 글쓴이가 아들에게 부친 편지이다. "내가 지어야 할 농사를 내가 지어서 보살피고, 내가 가진 책을 내가 읽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인생을 마치려 한다."는 그의 글을 보면 한평생 살아온 허무한 인생에서 비록 유배지에서 깨달은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주어진 자유를 누리겠다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는  탐욕과 양육강식이 행해진다는 세상에 휘둘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

 

 권필의 [당신이나 잘하시오]에선 언뜻 봐선 충고의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한 변명의 글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다른 늬앙스를 풍기는 '너나 잘하라'라고 날리는 일침. 크크크. 웃음이 난다.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피력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치켜 세우는 듯하면서 놀리듯 비판하고, 나를 낮추는 듯 하면서 전혀 잘못이 없는 형태로 만들어버리는 권필의 문장은 통쾌할 뿐만 아니라 썩 재밌는 글이다.

 

 또 하나 웃음 나는 글을 추가하자면, [속태 악태 추태]를 쓴 김창흡, 권섭의 글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18세기의 에티켓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짧은 문구들로 되어 있는 이 글 들을 보면서 나 또한 소수지만 몇개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뜨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모임에 서둘러 나가지 않는다.' 거나 '말도 꺼내기 전에 웃기부터 한다.'는 조항, 또는 '같은 말을 거듭한다', '밥이 뜨겁다고 입김을 불어 훅훅 불어 식힌다.', '손을 맞잡고서 반갑다고 인사한다.'같은 악태에 속하는 나의 사소한 행동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18세기의 조선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상으로 에티켓문화는 많이 바뀌었지만 몇몇은 지금 현대에도 속태, 악태, 추태에 속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추태는 읽으면서 많이 웃었던 부분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속태, 악태, 추태 중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예절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가늠하길 바란다.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많은 '태태태'들을 신경써야 했을 것인지 생각하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 

 뜻대로 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보다 시름겨운 것은 없다. - 단란했던 옛날 중 -신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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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밀레니엄 북스 77
장 자크 루소 지음, 방곤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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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1부에서 4부까지 정리되어 있으며 루소 자신은 3부에서 독자들에게 전해주려는 메시지가 가장 강했던 것 같다. 제1부에서는 고대사회와 강자의 권리, 노예제도, 사회계약, 시민사회에 대한 루소의 귀납법적 사고방식에 의한 정리가 나와있다.


 15p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각자 정해진 신분으로 태어나서 어떤 이는 왕이 되고 어떤 이는 노예가 된다고 하였는데, 루소 또한 이 사실을 긍정하면서 덧붙여 이때 억압된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조차 잃어버리고 결국 영구적인 노예가 되는 이것이 천성적 노예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런 다수를 통치하는 한명의 통치자는 우월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곧 그들의 습성에 의해 불평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편 루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긍정하면서도 그가 결과를 원인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18-19p에는 강한자의 권리이야기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데, 그 강한 자가 만일 폭력을 통해 복종을 받아내고자 하면 이에 대해 복종할 의무가 없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에 대한 예를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설득력이 생긴다.

 

 루소가 주장한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타고난 자신의 성질에서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라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는 이런 점에서 정부가 최선으로써 지녀야 할 의무, 국민이 가져야할 최선의 의무에 관해 논의했다.

 

  2부에서는 주권자와 입법자, 법률, 국민에 대해서 더 자세히 파고들어간다. 사회에서의 그들의 권리, 의무, 위치에 대해 정의되고 있으며 1부보다 세세하게 논의된다.

 

 이에 대해 조금 정리하자면, 국가가 개인들에게 부여되는 기본권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때 이 안전망을 위해서 국민 또한 나라를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67p참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 국가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불평등한 구조에 기본권을 유지 받지 못한다면 내게 나라가 무슨 소용일까. 그때는 애국심도 사라질 것이고 설사 누군가 매국노라고 욕한다면 사실 그는 욕을 할 권리가 없다.

 

 그래서 루소가 바라던 정부의 이상적인 모습처럼 나도 바라는 나의 정부의 상을 생각해봤다. 만일 주권자와 정부와 시민의 대표가 서로 감시하는 시스템. 힘과 의지의 조율하에 나라안의 구성원들의 결합이 된 모습은 어떨까하고.. 대신 이때 부패가 없기 위해서 대표가 될 사람을 뽑기 위해 국민들은 모두 양심적으로 정의로운 사람을 뽑아야 할 의무가 있다.

 

 3부에서는 정부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논의된다. 귀족세습제에 대해서 루소는 가장 나쁜 정치로 꼬집었다. 가장 좋은 정치로는 선거 귀족 정치를 꼽았는데 이는 최선의 정치로 본연의 귀족 정치를 의미한다. 귀족세습제를 꼬집었던 루소는 귀족 정치는 독특한 덕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부자들에게 있어서는 절제를, 가난한 자에게 있어서 만족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의 덕이다. 

 

 귀족 정치는 어느 정도 재산에 대해 불평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루소가 선거 귀족 장치를 최선의 정치로 꼽은 이유는 언제나 부자가 당선되는 것보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가난한 사람을 선출함으로써 국민에게 사람의 가치는 부 이상으로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루소는 최상의 정부의 형태로는 군주 정치를 꼽았는데 그에 대해선 137p를 보면 잘 나와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군주 정치는 이상적인 인간이 왕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왕이 많지 않기 때문에 루소의 이상적인 형태의 정부도 계속해서 탐색해 나가야 할 과정인 듯하다.

 

 제 4부에서는 투표, 호민관, 독재, 검열, 사회적 종교, 결론에 대해 논의되는데, 독재에 대해 나오는 부분을 군주 정치와 연결해서 생각해봐도 될 듯하다. 로마 공화국 초창기에는 독재 정치가 채택되었는데, 그것은 국가가 그 조직의 힘만으로는 자립할 수 없을 만큼 그 기초가 아직 미약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도의는 다른 시대라면 혹 필요로 했을 많은 악폐에 대한 대책 규정이 전혀 쓸모 없을 만큼 소박하였다. 따라서 독재자가 권력을 남용한다거나 임기 후에도 계속 집권하려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는 없었다.

 

 그래서 루소는 로마의 초창기 정부형태를 보고 가장 이상적인 정부 형태로 군주정치를 꼽았던 것 같은데, 이는 시대를 정체[停滯] 적으로 보았다면 좋은 정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시대는 바뀌고 사람도 또한 바뀌며 물질이 주를 이루는 현대 사회에서는 독재정치를 할만한 인재는 더욱더 찾아보기 힘들 것이며 지속적인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이 정치의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 싶다.

 
 요즘에는 정치와 사회에 대해서 이처럼 하나 하나 짚어 나간 서가 없다. 잘못 하다간 루소처럼 도피생활을 해야할 지 모르는데, 그같이 용기있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주장을 내세울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그의 업적이 후대에는 루소의 서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열정을 가져다줄 듯 모르나 지금 생에선 자신에게 골칫거리가 될런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한국이지만 사상적인 면으로 아직 보수주의가 반이상을 차지하는 것 또한 한국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현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정치에 대해서 국가와 국민들이 깨달아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끔 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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