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해도 넉넉하다 - 천년의 지혜와 만나는 안대회의 세상 이야기
안대회 지음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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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씨가 썼던 [부족해도 넉넉하다]는 친구에게 보낸 짧은 글이다. 황 아무개가 늙어서도 계속 집을 짓는 등 호사스럽고 욕심 사납게 산다는 소문을 듣고 충고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넉넉해도 부족한 사람과 부족해도 넉넉한 사람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곧 이 글은 옛사람이 쓴 다른 글 모음집과 함께 대표제목으로 선택된다.
 

 저자 안대희씨는 고전산문을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자신의 평설을 붙여 독자로 하여금 더욱더 친근하게 옛사람의 글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옛 선비들의 모습들이 현대인의 삶과 특별히 다르지 않으며 그들을 통해 시대상의 풍습과 비판정신까지 엿볼 수 있다.

 

 [동해의 풍파 속에서]의 임숙영의 글에는 객이 풍파만이 가짜가 진짜보다 위세가 센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 모든 것이 가짜가 진짜보다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글쓴이는 그의 주장이 틀리다고 거부한다. 일반인은 속지만 군자는 속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자신을 잘 드러내는 능력에서 가짜가 진짜보다 뛰어나다는 점 때문이다. 세상에 진짜가 없지 않지만 자신을 포장하여 드러내는 능력의 부족 때문에 가짜에게 밀린다. 그렇게 보면, 이 글은 자신의 능력을 잘 포장하는 사람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동해 바다에 와서 거센 파도를 보고 마음을 달랜 위안의 작품이 아닐까.(88p참고) 이 부분을 보면 인간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또 그 사유가 현대에 와서도 별반 달라진 게 없음을 보면서 인간의 본질중엔 잘못을 반복하는 습성이 남아있는 것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언제나 역사가 과거가 교훈을 시사하더라도 일부 깨어진 사람말고는 언제나 그 나쁜 습관과 행동들을 답습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가하면, 독특한 글들도 눈에 많이 띈다. 홍대용의 [궁리하지 말고 측량하라]는 글은 과학과 지식의 생각을 짧게 드러내고 있는데 시대상을 뛰어넘은 진보적인 주장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학자가 있었다는 것을 재실감나게 해주는 글이다. 

 

 재밌는 글들도 있다. [베개야 미안하다]의 이광덕과 [사기술잔]의 김득신의 글에는 베개와 술잔을 통해 재미난 일화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두 배로 사는 법]의 이광은 많이 먹는 것이 배에 똥을 채울 뿐이라며 적게 먹고 잠을 줄이는 것이 인생을 맑고 밝게 열심히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 글을 읽다보니 정찬주씨의 저서인 '뜰앞의 잣나무'에서 스님이 언급했던 '똥막대기'가 문뜩 떠올랐다. ^^ 식욕과 탐욕을 버리는 것이 수행과도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권상신의 [자고 깨는 것에도 도가 있다]는 잠에 대한 참신한 생각을 엿볼 수 있고 서형수의 [조선에는 선비가 없다]에서는 예리한 비판의식과 가혹할만치 혹독한 지적이 들어있다.

 

 "자기 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한 사람을 선비라 하고, 문화적 역량이 큰 사람을 선비라 하고, 도로써 민심을 얻은 자를 선비라 하고, 고금을 잘 구별하는 사람을 선비라 하고, 천지인 삼재에 두루 통달한 사람을 선비라 합니다. .. 이 다섯 가지를 기준으로 우리 나라 사람을 두루 헤아려볼 때, 성취한 수준이 만에 하나라도 저 기준의 근사치에 접근한 선비가 있을까요?.. 게다가 먼저 배운 것을 주장으로 삼아 다른 많은 사람을 궁벽한 시골뜨기라고 배척해버립니다. 부분한 학설이 너무 많다 보니 달리 주장하는 자를 개인적 원수로 여기고, 남의 결정을 지나치게 모질게 비판하며 너무 심하게 속박합니다." (128p참고)

 

 그의 글을 읽고 현대에 적용해보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그의 글은 모든 지식인들에게 일침을 날린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이 반성하고 개선해야 함을 역설[力說]한 것이 아닐까.

 

 유언호의 [아들에게]는 글쓴이가 아들에게 부친 편지이다. "내가 지어야 할 농사를 내가 지어서 보살피고, 내가 가진 책을 내가 읽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인생을 마치려 한다."는 그의 글을 보면 한평생 살아온 허무한 인생에서 비록 유배지에서 깨달은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주어진 자유를 누리겠다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는  탐욕과 양육강식이 행해진다는 세상에 휘둘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

 

 권필의 [당신이나 잘하시오]에선 언뜻 봐선 충고의 편지를 받고 그에 대한 변명의 글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다른 늬앙스를 풍기는 '너나 잘하라'라고 날리는 일침. 크크크. 웃음이 난다.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피력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치켜 세우는 듯하면서 놀리듯 비판하고, 나를 낮추는 듯 하면서 전혀 잘못이 없는 형태로 만들어버리는 권필의 문장은 통쾌할 뿐만 아니라 썩 재밌는 글이다.

 

 또 하나 웃음 나는 글을 추가하자면, [속태 악태 추태]를 쓴 김창흡, 권섭의 글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18세기의 에티켓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짧은 문구들로 되어 있는 이 글 들을 보면서 나 또한 소수지만 몇개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뜨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모임에 서둘러 나가지 않는다.' 거나 '말도 꺼내기 전에 웃기부터 한다.'는 조항, 또는 '같은 말을 거듭한다', '밥이 뜨겁다고 입김을 불어 훅훅 불어 식힌다.', '손을 맞잡고서 반갑다고 인사한다.'같은 악태에 속하는 나의 사소한 행동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18세기의 조선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상으로 에티켓문화는 많이 바뀌었지만 몇몇은 지금 현대에도 속태, 악태, 추태에 속하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추태는 읽으면서 많이 웃었던 부분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속태, 악태, 추태 중 어디에서 얼마나 많은 예절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가늠하길 바란다.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많은 '태태태'들을 신경써야 했을 것인지 생각하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 

 뜻대로 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보다 시름겨운 것은 없다. - 단란했던 옛날 중 -신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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