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연 을유세계문학전집 9
조셉 콘라드 지음, 이석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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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속을 파헤쳐보면 어둠만이 존재할까? 만일 한계에 치달은 상황에 몰린 인간에게 선과 악의 선택권밖에 없다면, 모든 인간이 악을 택할까? 어둠속에서 존재하는 그 실체를 제대로 판단하기가 과연 가능할까. [어둠의 심연]의 작가 콘래드는 인간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모든 인간은 태초에 가진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집단 무의식의 모든 과거의 기억과 연대의식에서 비롯된 인물들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야기의 구성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주머니의 소개로 수월하게 교역상에 취직하게 된 말로는 강의 상류의 내륙교역서에 가서 수집된 상아를 운반해오고 유럽에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던 '커츠'를 찾아오기 위해 아프리카의 '어느 강'으로 가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유럽식 교육의 수혜자이자 지식인이었던 '커츠'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태고의 끝에서 들리는 야생의 소리에 동화되는 자기 자신 스스로도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흑인들과의 마찰과 원주민과의 대립, 커츠의 변화, 내면의식의 동화 등은 말로에게 내면에 잠긴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실제로 작가 콘래드는 콩고강을 운행하는 운항선의 선장직을 맡기도 했으므로 [어둠의 심연]은 많은 부분이 실제에 거의 가까운 상징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어둠의 심연]도 경험의 기록입니다만, 그 경험은 독자들의 정신과 가슴에 절실히 와 닿게 하려는, 내가 믿기로는 나무랄 데 없이 정당한 목표를 위해, 실제로 있었던 사실들로부터는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콘래드의 작가노트중)

 

 

 '제가 지금 성취하려는 작업은 글의 힘에 의거해서, 당신들이 들을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라고 밝혔듯이 콘래드는 이 책을 통해서 문장의 형태와 울림을 통해 독자들이 느끼는 만큼 볼 수 있게 했다.

 

 

 떠나기 전에 의사와의 만남에서 의사는 말로에게 머리 치수를 재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과학을 위하여, 저는 해외로 나가는 분들에게 두개골을 측정할 수 있게 허락을 구하지요.' 말로가 이에 '그들이 돌아올때도요?' 라고 물으니 그는 말한다.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변화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아시겠지만...'

 
 해설부분에선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말끔히 정리될만큼 말끔하게 설명하고 있다. '커츠'는 '문화적 변절'이 가장 잘 드러난 인물로 그를 통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의식으로 끝나는 한밤의 무도"는 도덕적 사고로 무장한 지성인조차 내면의 악이 발호할 때는 속수묵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그의 내부는 텅 비어 있을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한순간 들었는데, 왜냐하면 그곳에는 외부의 견제가 없으니까 말일세,. 한때 온갖 열대의 질병이 교역소의 모든 '직원'들을 쓰러뜨렸을 때, 그가 이처럼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네. '이곳으로 나오는 사내놈들은 속이 비어 있어야 한다.' 마치 이 말이 그가 지키고 있는 어둠의 심연으로 통하는 문이라도 되는 양, 그는 예의 그 미소로써 얼른 이 발언을 봉인해 버렸다고 하네.'(본문중)

 

 

 아프리카에서는 무엇이나 가능하므로 사업에 방해되는 자는 목을 매달아 버릴 것을 주장하는 본부장의 숙부도 야만적인 본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해설자는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린다.

 


 개인이 악을 제압하고 적어도 제압한 듯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어떤 저항력이 그의 내부에 있어서가 아니라고.  말로는 원칙이나 도덕이란 한번 세게 흔들면 세게 날아가 버리고 말 "누더기"나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왕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그는 문명세계의 개인은 바다에 떠 있는 "노후한 배"와 같고 이 배가 당장 악의 세계로 침몰하지 않는 이유는 쌍닻인 "경찰관"과 "푸주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켜보는 경찰이 없는 절대 고독의 순간에, 정적의 순간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속삭여 줄 친절한 이웃의 경고 목소리가 없는 절대 정적의 순간에,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는 발길이 태고의 어떤 지역으로 사람을 인도할 것인지 자네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라네.(106-107p)"


 콘래드를 옹호하는 진영과 비판하는 진영의 주장들도 흥미로웠다. 옹호하는 진영은 콘래드가 식민주의를 고발하고 제국주의의 이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신랄하게 풍자하였다고 주장하였고 비판하는 진영에서는 콘래드의 글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에 대해 비판했다. 그들은 콘래드가 흑인의 식인종문화에 대해 조롱함으로써 흑인들을 비하하였다고 말했다. 이에 해설자는 흑인의 식인문화는 아랍 노예상들과 레오폴드 국왕 간에 있었던 전쟁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몇몇 콩고 부족들에 있어 식인은 전쟁과 관련된 전통 의식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신체가 온전해야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아랍인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심리전인 셈이었다."(255p)

 

 

 콘래드는 영국을 유럽의 여타 제국들의 식민주의와는 질적으로 차별하였다. 이는 그가 [어둠의 심연]에서 지도상의 지역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사업다운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지역(영국)과 대조적으로 다른 제국들의 식민지는 빈정거리는 투로 폄하되거나 무시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식민지는 "빌어먹게 크게 색칠이 된" 지역으로 비난받으며, 이탈리아와 포르투칼의 식민지는 "약간의 초록색 지역"이나 "여기저기 문질러 칠한 듯한" 지역 정도로 무시되며, 독일의 식민지는 진지한 의도를 결여한 채 맥주나 즐기는 곳으로 폄하되고 있다.'


 
 이를 통합해보면 콘래드는 식민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내용을 책에 담았다기 보단 인간 내면의 악에 대한 무능함의 본능을 담았다는 주장이 더 가까울 듯하다. 

 

 영국에 대한 콘래드의 입장은 자신의 조국(폴란드)에게 버림받고 오스트리아의 시민권 취득에도 실패했지만 영국에서 자신을 받아주었기 때문에 그 나라에 대한 호감이 남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평생. 두 평생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지만 영국의, 아니 대영 제국의 응석받이 양자였다는 사실을 마침내 여기서, 다른 지면보다 못할 것이 없는 여기에서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인류에게 자연스러울 정도의 허영과 겸손의 본능을 따를 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 경이적인 행운과 같은 요행이라는 점을, 속을 헤아릴 길 없는 신들의 제단에 감사와 희생을 바쳐야만 할 그런 행운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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