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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연습 ㅣ 창비시선 413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박성우 시인의 『웃는 연습』.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시로 담아낸 작가의 문장들은 살며시 다가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때로는 「카드 키드」, 「쇼핑백 출근」, 「마흔」, 「넥타이」를 통해 삶의 애환, 고단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어조는 결코 과하지 않다. 그저 담담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감으로써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따름이다.
「짜장면과 케이크」는 여운이 오래 남는 기분 좋은 시였다. 작가는 마을버스 정류장 모퉁이에 있는 좁은 구둣방에 갔을 때 귀퉁이에 놓인 짜장면 빈 그릇 세 개를 발견한다. 구둣방 할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위쪽 빵집 젊은 사장과 아래쪽 만두가게 아저씨가 와서 짜장면 송년회를 해주고 갔다고 했다” 작가는 “구둣방 왼편에 놓인 서랍장 위에는 케이크 한 조각이 얌전히 올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검정 구두약 통 두 개와
한 뼘 반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하얀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
누가 놓고 간 거냐고 묻지 않아도
누가 놓고 간 것인지 알 수 있는
아내의 구두를 구둣방에 맡긴 나는
빵집으로 가서 빵 몇 개를 골라 나왔다
아내의 구두를 찾아갈 때는
만두가게에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세밑이 따뜻해져왔다 (p.19, 「짜장면과 케이크」중에서)
짜장면과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 그 자체로도 진심이 느껴져 기분 좋은 울림을 전해 받았다. 그래서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나중에는 만두가게에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송별회라고 꼭 거창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는 점. 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일인 것이다.
좀 늦긴 했으나 콩을 심었다는 얘기, 콩 순을 따 먹은 고라니, 텃밭 옆 느티나무로 이사 온 꾀꼬리의 참견, 가을에는 도로를 차지하는 고추 등등.
시에는 시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리고 그의 시에는 초등학생 딸과의 대화, 어머니와 장모님에 대한 이야기, 시골 풍경, 마을 어르신들이 두루 등장하는데,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같이 푸근하고 훈훈함을 전해온다.
밤과 대추를 나눠주던 가춘할매(「행복한 옥신각신」),
집을 비운 사이 마당 풀을 깎아 정리를 해주었던 금수양반(「금수양반」),
글 쓰는데 뭐라고 먹어 가며 일하라고 과일 보자기를 두고 가신 부녀회장님과 총무님(「어떤 방문」),
누구는 콩을 심고 가고 누구는 풀을 매고 간 동네 어머니들(「고마운 무단침입」),
스무 살 차이도 더 나지만 항상 ‘동상’이라고 챙겨주는 바우양반과 마을회관에서 시인에게 남들보다 더 큰 대접으로 시래깃국을 챙겨주는 어르신들(「어떤 대접」).
어쩐지 마음이 서서히 채워지며 온기가 몸속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 자기 일 마냥 신경 써주고 챙겨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시를 읽는 내내 정답고 정겨웠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