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그런 책들이 있다. 은연중 머릿속을 맴도는 제목의 책들. 잠깐 스치듯 봤을 뿐인데도 그 잔상 때문에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그런 책들 말이다.
  대개의 책은 등장인물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내세우거나 아예 주인공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등장시키고는 하는데 이 책은 오히려 『아무도 아닌』이라고 한다. 방심하고 있다가 뭔가 허를 찔린 기분이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더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작가는 “아무도 아닌,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는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내 경우 제목을 읽을 때면 ‘아무도 아닌,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일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읽히고는 했다. 왠지 그러한 느낌을 자꾸만 받았던 것이다. 어찌 보면 ‘아무도 아닌’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일 수도 있다. 나 아닌 주변 사람들의 얘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때때로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은 아무도 아닌 게 아니라 그 속에 우리도 있는 건 아닌지, 어쩐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上行」, 「양의 미래」, 「상류엔 맹금류」, 「명실」, 「누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웃는 남자」, 「복경」.
  작가는 각각의 단편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세상 이야기를 보여준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의 인물, 허구의 사건을 담아낸 것이겠지만, 그 모습은 현실과 가깝게 닿아있음을 발견해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 속에서 나름의 사연과 고민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곧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시골에 고추를 따러 갔는데 올라갈 때는 고추며 감, 고구마, 호박을 한가득 챙겨주시는 모습이라든가 다음에 올 거냐고 묻는 할머니의 모습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았던 「上行」.
사라진 소녀의 마지막 목격자이자 서점에서 일하는 ‘나’, 그리고 가난에 대해 오히려 담담한 어조라 더욱 서글프게 느껴졌던 「양의 미래」.
  처음에 이사 왔을 때는 조용했는데 어느새 거리에 핸드폰 매장이 들어서며 끊임없이 울려대는 음악 소리라든가 늦은 시간 고기를 굽고 시끄럽게 하는 윗집 때문에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는 「누가」와 같은 이야기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이렇게 참을 수 없는 일이 많아졌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어떻게 참고 있는 걸까. 그보다 나는 여태까지 어떻게 참아왔지?
뭔가 요령 같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p.133,「누가」)

 

 

  그만큼 작가의 문체는 소설과, 현실과, 독자의 간격을 부드럽게 메우며 잘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떠한 이야기는 인물의 심리나 상황을 서술한 부분만으로도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특히 「복경」의 경우 웃음이 나오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되려 울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묘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주인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웃어야만 하는 판매 서비스업의 일을 하고 있다. 웃고 싶지 않아도 늘 웃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중간중간 당신은 어떻게 웃는 사람이냐며 몇 번이고 질문을 던진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기계적으로 웃다 보면 진짜 웃음이란 건 어떤 건지, 어떤 상황에서 웃음을 경험하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매일 웃는 인간이라서 만성적으로 웃고 있지만 인간은 본래 이렇게까지 웃지 않아도 괜찮은 생물입니다. 왜냐하면 괜찮지 않으니까. 이 정도로 많이 웃는 인간인 내가 별로 괜찮지 않으니까. 당신은 괜찮은가요? 웃고 있나요? 어떻게 웃습니까? 말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이 어떻게 웃는지를 자세히 좀. 궁금합니다. 당신은 웃음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내가 몹시 궁금합니다. (p.195, 「복경」)

 

 

  사용한 물건을 안 그런 척 환불을 요구하는 진상 고객 앞에서도 얼굴을 찡그릴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 웃는 것을 멈출 수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인해 소파 사건도 오해를 불러오게 되는데... 말해 무엇 하겠는가. 아마 주인공의 속마음은  노래 가사처럼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것이다.
  아, 이쯤 되니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웃을 수가 없더라. 덩달아 웃음이 지어지는 게 아닌, 뭔가 아슬아슬한 긴장감마저 느껴졌다고나 할까. 차라리 정색을 하면 좋으련만 주인공은 마음과 달리 그게 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입꼬리를 가득 위로 당긴 주인공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 순간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웃는 것뿐, 웃음은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왜 너는 웃지 않냐. 장난하냐 내가 지금 웃는데.
이렇게 웃는데.
웃는다.
내가 지금 웃는다.(p.210~211, 「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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