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기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백유화단의 유일한 여자 화공 홍천기(洪天起). 홍녀 또는 반디라고 불리는 그녀는 인왕산 호랑이를 보러 범골까지 갈 정도로 그림에 대한 남다른 욕심, 고집, 열정을 가진 주인공이다. 홍녀의 모친 김덕심은 딸한테 하늘에서 남자 하나만 내려달라며 매일같이 칠성님께 기도를 드렸고, 그 정성이 통했는지 진짜로 하늘에서 남자 하나가 홍녀에게로 뚝 떨어지게 된다. 정확히는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것이지만 말이다. 홍녀는 수려한 외모, 좋은 향기가 나는 그 남자를 하늘에서 떨어졌기에 선남(仙男)이라고 생각하지만 잠시 보았던 붉은색 눈동자 때문에 도깨비일지도 모른다고도 의심한다. 그러나 그는 선남도 도깨비도 아니었다. 서운관 시일로 지내고 있는 자로 이름은 하람, 그는 어렸을 적 사고로 맹인이 되었고 붉은색 눈동자가 되었다. 그런데 하람의 눈이 홍천기와의 부딪힘으로 흑갈색 눈동자가 되고, 마(魔)의 존재가 하람의 몸을 움직인다. 그 사이 일을 기억 못하는 하람, 이야기는 그의 눈에 얽힌 비밀과 실마리들로 점차 흥미진진하게 흘러나가는데...

 


  소설을 읽고 있으면 주인공 홍천기의 씩씩함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녀는 솔직하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하며 뭐든 잘 표현하는 성격을 가졌다. 무엇보다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았는데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그 모습이 기특하게 여겨질 정도다. 조선시대의 사회는 신분구별이 있었고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사대부와 비교했을 때 화공의 그림을 무조건 낮게 보았으며, 그것도 여자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를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차게 생활한다. 그래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그녀가 애타게 찾는 존재 하람과 얼른 만나고, 하람 역시 홍천기가 누구인지를 빨리 알기를 말이다.

 

 

“홍천기……요?”
이토록 듣기 좋은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나 아름답게 불릴 수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네. 하람……입니까?”
“그렇소.”
“그렇구나. 하람……, 하람이었구나.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다행이군. 사람 이름이어서.”(p.373)

 


  홍천기 1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드디어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고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니까.
  안평대군의 우수절 화회. 홍천기의 그림은 두 점 다 최고 가격에 팔리게 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이와 구입한 이가 만나게 되는데 홍천기는 자신의 그림을 산 사람이 자신이 그때 구했던 남자였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장면이 가장 떨렸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고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던가. 이름도 사는 곳도 몰라 돌고 돌아 어렵게 하람을 만났기에 홍천기의 안도감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하람은 홍천기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무덤덤하다 못해 차갑기만 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람은 당시 쓰러진 후 의식이 없었기에 그녀를 본 적이 없다. 홍천기는 하람을 계속 생각하고 찾아다녔지만 하람 입장에서는 처음 만난 셈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기쁘면서도 약간은 슬픈, 두 온도차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하람은 신세를 갚았으니 홍천기에게 앞으로 볼일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그녀가 아니다.

 

 

“비키시오.”
“아뇨! 저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뭐, 신세를 갚아서 볼 일이 없다고요? 완전 어처구니없네. 귀공이 갚아 주겠다던 그 신세, 그거 너무 과한 건 아십니까? 신세 계산은 귀공만 하는 게 아니라 제 계산도 반영되어야 한다고요, 알겠습니까? 전 과하다는 계산이 되었고, 그러므로 반드시 거스름돈을 돌려드려야겠습니다. 게다가 들을 말 다 들었다고요? 귀공만 들을 말 다 들었으면 볼 일이 끝난 겁니까? 저도 귀공께 들을 말 엄청 많습니다. 누구 맘대로 앞으로 볼 일이 없답니까? 아직도 볼 일이 까마득하게 남았구먼!” (p.400)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화법! 숨도 쉬지 않고 쏘아붙이는 홍천기의 기세에 하람이 밀릴 정도다. 그 뒤로 홍천기는 하람 앞에 자주 나타난다. 하람은 그녀를 밀어내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란 게 칼로 무 자르듯 단번에 잘리는 것이던가. 그 역시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홍천기를 점점 마음에 두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잣거리에서 만난 노파가 하람에게 그의 눈과 마(魔)에 대한 말을 언급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노파가 보인다는 점, 그것도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여 하람은 놀라고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홍천기를 몇 번 도와준 적이 있기도 한 그 노파,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하람의 붉은 눈동자와 마(魔)의 상관관계는? 이야기는 궁금증을 남겨놓은 채 2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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