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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안정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평점 :
여행. 낯선 곳에서의 풍경.
눈에 담고 마음에 담으라지만 그 여운은 서서히 흩어지기 마련이고 막연하게 ‘좋았다’라고만 정리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단순히 좋았다는 말은 너무 식상하다. 대부분의 여행이 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당연히 좋았으니 좋았다 말하고 때론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대충 갈무리하고자 할 때 마찬가지로 그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는 점.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단어는 묘하게도 성의 없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겪는 사람의 생각, 기억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세상을 바라보더라도 그 모습은,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따라 수많은 단면과 느낌으로 나뉘게 될 테니까.
안다. 그 도시는 그냥 자체만으로도 근사할 것이다. 그럼에도 더욱 매력 있게 끌리는 이유.
그것은 누군가의 사색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색이 남긴 인식의 조각은 우리의 마음에 동그란 파문 하나를 그려낸다. 저 멀리 퍼져나가며 큰 원이 되는 부드러운 너울거림.
이런 기분 좋은 너울거림은 글쓴이의 사색에 빠져들수록 한동안 마음속에 지속된다.
글쓴이의 글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사유하는 힘과 표현력이 언어를 잘 감싸 안아 문장들을 단정하게 빚어낸 느낌이다.
그래서 담백하고 맛있다. 유연하고 편안하다.
그리고 그 나라, 그 도시, 그 상황에 맞게 다양한 책들의 구절을 녹여냈는데 그 점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다.
때로는 노래의 가사나 시의 구절이 등장하기도 했다. 덕분에 글은 더욱 다채로운 발자국을 남긴다.
이것은 적재적소(適材適所,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쓴다)가 아니라 ‘문文’을 대신 넣어 적문적소(適文適所)라 해도 좋으리라.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지는지, 글 읽는 즐거움이 한층 더해진 기분이다.
가끔은 그 장소에서 그곳의 공기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파란 하늘, 산들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눈부신 멕시코의 탁스코.
걷거나 달리거나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기거나, 느긋함과 포근함이 있는 캐나다 밴쿠버 스탠리 파크.
세상의 모든 파란 빛깔을 가져다 풀어놓은 곳,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 등.
물론 이 책이 여유로움, 신비로움, 아름다움만 담아낸 건 아니다.
히말라야 산속에서 길을 안내하고 트레커의 짐을 대신 지는 안나푸르나 사람들,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볼리비아 고산도시 포토시에서 만났던 광부들처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삶 또한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도시들 역시 여러 가지가 함께 존재함을 느껴 본다.
매혹적이고 열정적이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면서도 쓸쓸하고도 슬픈, 고단하면서도 힘든 낯빛 또한 지니고 있다는 점.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있기에 사색의 폭과 깊이는 더 확장될 수 있으리라.
그러니 다행이다. 이 책이 따뜻한 것, 환한 것, 밝은 것만 담아낸 것이 아니라 마주한 것들을 두루 담아낸 책이라서.
그런 글쓴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잠시나마 나 역시도 사색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