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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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 속 ‘나’는 아파트 월세, 사무실 월세도 밀리고 찾는 손님도 없는 심리치료사, 이름은 야콥 야코비다.
전처 엘렌은 결혼생활 상담을 해달라며 한밤중에 들이닥치고,
뒤이어 그녀의 남편 아르민이 나타나 (직업은 프로복서)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결국 코뼈가 부러져 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어릿광대 복장을 한 40대 후반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아벨 바우만, 바로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는 남자다.   
그런데 상황이 꽤 흥미롭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본인을 신이라고 말하는 이 수상쩍은 남자가 직업을 때려치우기로 마음먹은 나(야콥)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게 아니겠는가.

 


신, 그러니까 믿든 안 믿든 잠시 종교, 신앙의 문제를 떠나 신이라고 하면 보통 이런 느낌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전지전능, 절대적인, 그 모습조차 선뜻 상상이 되지 않을뿐더러 말로 표현하기 힘든 존재,
엄숙하고 어려우며 신성한 힘(또는 그 반대의 힘)을 발현할 수 있는 존재.
그러나 이 소설에서의 신은 아주 딴판이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외모에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행동으로 친근하기만 하다.
마치, 작가 한스 라트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뭐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실수도 많고 나약하고 무기력한 신.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가는 것이 고민이라는 신.
진짜 의사도 아니면서 병원에서 의사 행세를 하고 가운은 빌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신.
그냥 환자들에게 용기를 준 것뿐인데 설마 그런 일로 감옥에 들어가겠냐고 말하지만
간호사가 데려온 경찰관에 의해 결국 유치장에 갇힌 신세가 되는 아벨 바우만.
남 행세를 하는 이유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남자, 알고 보면 참 허술하기 짝이 없다.
건축가, 검사, 폭파, 전문가, 은행 직원, 핵물리학자, 소방대원, 선장, 기증 등
타인을 사칭하는 혐의로 붙잡힌 적이 수십 번이나 된다.
그리고 빅뱅이 자신의 첫 개인적 불꽃놀이라고 말하지를 않나,
진실을 말하자면 세상을 창조한 기억조차 안 난다고 하니
어쩐지 살짝 허세와 귀여운 변명처럼 느껴져 인간미처럼 다가왔다.
그래도 본인이 신이라고 절대 권위적이지는 않다는 거.
심리치료사에게 도와달라고 상담을 요청한 신 본 적 있는가?
거기다 그냥 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치료비며 사례비도 꼬박꼬박 지불한다.
비록 casino에서 딴 돈이긴 해도 엄밀히 말하면 합법적인 돈이다.
 

 

「신이 노름꾼이라고요? 거참 흥미롭네요.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죠.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나도 알아요. 아인슈타인은 낄 데 안 낄 데 모르고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인간이죠.
신은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룰렛도 아주 좋아해요. 블랙잭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끔
포커도 쳐요. 생각해봐요. 도박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 같은 족속을 만든 생각을
했겠소?」(p.84~p.85)

 


여기에 아벨 바우만에 대한 것으로 유머러스한 부분 또한 놓치면 안 될 것 같다.
어쨌든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점점 흥미진진하게 흘러나간다.
바우만 아들과의 만남, 은행원으로 잘나가던 동생 요나스의 도망,
동생의 아이를 임신한 한나 카우프만의 등장,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지 않는 다른 세계에 갔다 오게 되는 나(야콥)…

 


생각했던 신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망이냐고? 아니, 전혀!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소설에 등장한 바우만처럼 신이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편안하게 빠져들 수 있었다. 
게다가 장편소설임에도 유쾌하고 빠른 전개 덕분에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신의 존재라든가 인생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야콥 야코비와 아벨 바우만의 동행 속에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야콥의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인상 깊었고 말이다.
끝으로 내달릴수록 점점 플러스적인 기운, 힘찬 기운으로 가득해지는 소설!!
재미있고 즐거운 소설이다. 그 여운이 참 좋다.  
 

 

나는 방금 깨달은 것이 있다. 아벨 바우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든 광대든 신이든
원칙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아벨이 내게 보여 준 것이 진짜 기적이든
눈속임 마술이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벨의 체험이 나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신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은 신에게 요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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