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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68년 출간되었다는 앨리스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
이 책은 제목이자 하나의 단편이기도 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포함, 모두 15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사실은 출간된 지 꽤 된 소설집이라 조금 놀랐었다.
지금 읽어도 아주 자연스럽고 공감되는 단편들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글이란 것은 책이 출간된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물론 이것은 그녀만의 필력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우리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듯 글을 써내려간 앨리스 먼로.
책을 펼치면 캐나다 온타리오 지방의 한적한 동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하지만 우리 주변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작품 속의 인물들.
그래서일까. 어쩐지 공감이 되기도 하고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앨리스 먼로는 사람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잘 담아내는 작가였다.
그 인물의 연속된 시간 중 그냥 어떤 상황 한 컷을 그대로 글로 옮겨둔 느낌이랄까.
글의 마지막에 명쾌한 결말이라든가 인물의 심정을 단정 짓는 문장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롯하게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마음속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미묘하고 복잡하게 회오리치며 그렇게 단편의 여운을 즐기도록 말이다.
나는 시동을 걸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지는 잠을 자려고 뒷좌석에
누웠다. 그때 우리를 쫓아오며 소리치는 여자의 목소리, 지독히 노골적인
독설 같은, 버림받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워줘서 고마워!"
소리친 건 애들레이드가 아니었다. 로이스였다. (p.160)
단편 <태워줘서 고마워> 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때 로이스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왠지 마음이 시린 외침이었다. 그냥 그렇게 가지 말고 무슨 말이든 해봐! 라고 하는 것 같은 외침.
자동차 데이트를 하며 술기운이었든 아니든 그들은 헛간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보러 온다, 기억한다, 사랑한다는 말 같은 건 없다.
그저 집에 데려다 주고 차에 시동을 걸고 가버리는 남자만 있을 뿐이다.
여전히 바뀌는 건 없으니, 본문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만 같다.
그것이 바로 트리스테(쓸쓸함)이다. 트리스테 에스트.(쓸쓸해지는 것이다.) 158p
아버지는 체념한 듯 심지어 유쾌하게까지 들리는 목소리로 나를 용서하되
영원히 내치겠다는 듯한, 그 말을 했다.
"계집애일 뿐이니까."
나는 그 말에 반발하지 못했다.
마음속에서조차.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르니까. (p.234)
단편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의 마지막은 참 먹먹했다.
제목부터가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도 아니고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다.
계집애라는 단어는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
꾸지람, 실망의 뜻,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계집애’라는 단어.
아무리 그녀가 잘못한 일이 있다지만 한순간 그렇게 내뱉는 말은 너무나 아프기만 하다.
단편 속에서 여성의 내면을 잘 표현했던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출간했던 때가 그녀의 나이, 서른일곱이었다고 한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고난이 있었을까.
그녀의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다른 작품들은 뭐가 있는지 둘러봐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