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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코스투라 1 - 그림자 여인 시라 ㅣ 샘터 외국소설선 9
마리아 두에냐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샘터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바스케스 형사가 찾아왔을 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라의 삶은 어찌 보면 가혹하고 기구하다.
남은 건 빚더미뿐, 마드리드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 남자를 사랑한 대가치고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라미로의 배신은 지독한 결과만을 남겼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돈과 패물을 가지고 떠난 것도 모자라 호텔의 어마어마한 숙박비를 빚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녀 몰래 명의를 도용해 타자기를 대량 사들이고는 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까지 숨겼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그녀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배 속에 있던 라미로의 아이를 잃었고, 이복형제에게 패물 절도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자신의 의지와 상과 없이 그 모든 것들이 일어났으니 아마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절망. 이 단어도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기엔 한참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척 안타깝다.
사랑에 눈이 멀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그녀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겠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다음이니 말이다.
불공평하고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라미로가 달아난 이상 모든 책임은 시라가 떠맡아야 했다.
바로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바늘을 손에 쥐는
순간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다란 희열이 가슴에 벅차올랐다. …(중략)… 실로
오랜만에 바늘을 잡았는데도 생소하기는커녕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한동안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긴 했지만, 바느질을 하는 동안만큼은 지금 내가 처한 비참한 처지도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다. (p.143)
아프리카의 테투안. 아무것도 없는 낯선 곳에서 그녀는 드디어 희망을 발견한다.
여인숙 주인 칸델라리아가 재단사였던 시라의 실력을 보더니 고급 의상실을 차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비밀조직원과 권총 매매를 하는 등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돈 많은 귀부인들을 상대로 제법 잘 나가는 의상실 <셰 시라Chez Sirah>를 운영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완벽하게 바꾸기로 마음먹는다.
헤어, 화장, 손톱 정리 등 외모뿐만 아니라 분위기와 태도까지도.
재치 있고 당당한 모습, 매혹적인 자태, 우아한 걸음걸이, 품위 있고 고상한 말투,
화려하고 매력적인가 하면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인 미지의 여인으로.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의 시라는 없다.
지금은 우아한 디자이너로 새로 태어난 시라만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시라라는 캐릭터에 빠진 자신을 발견해본다.
주인공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것, 그리고 아름답게 바뀌는 것은 큰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특히 현실 속에서 강인한 의지를 키워가는 내적인 아름다움은 외적인 것만큼이나 멋지고 말이다.
그녀는 뭐든 빨리 배웠고 그만큼 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종종 위기가 있었지만, 뭐든 의상실에 필요한 것을 구해다 주는 칸델라리아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펠릭스가 있어 든든하다.
그녀의 친구가 된 영국여자 로잘린다 폭스, 어머니를 마드리드에서 테투안으로 모셔오게끔 해줄 기자 마커스 로건.
이제 그녀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2권에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