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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을 열다
송인갑 지음 / 청어 / 2012년 7월
평점 :
가끔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갈 때가 있다.
볼 수 있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나무가 잎을 틔우고, 초록으로 무성해져도 느낄 줄 몰랐고,
단풍이 지고 다시 떨어져도 그저 무심히 지나쳤으니 말이다.
"맞아. 어느새 이런 계절이 되었네."라고 그 끝자락에 잠시 시선을 담을 수나 있으면 다행인 일이다.
그럼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고개를 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달라진 '향' 때문이리라.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공기 중의 향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때론 따뜻함 속에서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차가움 속에도 얼음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무와 꽃, 땅의 향기가 어우러져 나의 마음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생각한다.
냄새 맡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 중 하나라고.
따라서 후각은 기억의 복원시점을 찾기 위한 중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에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복원시점을 정해야 한다. 물론
많은 과거의 일들을 추적하며, 그들의 삶을 정밀하게 이해해야만 그 시점
을 정할 수 있다. 이때 후각은 그 무엇보다도 이 시점을 찾아내는 데 탁월
한 능력을 발휘한다. (p.19)
그러고 보면 후각으로 기억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지고 신기한 일이다.
마치 빛바랜 사진처럼 잔잔한 향으로 그 시절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며
머릿속에는 오래된 영상이 지나가는 기분.
향 하나로 기분 좋아지고 나빠질 수 있다는 것만 봐도 후각은 우리와 뗄 수 없는 사이인 것 같다.
작가의 향기여행을 바라보며 책장 사이사이 손끝이 스칠 때마다 그 향을 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몇 번이고 톡톡 두드려 봤는지 모른다.
희미하지만 이런 향은 아닐까 상상으로나마 그 잔상을 쫓아간다.
잡힐 듯 말듯, 보일 듯 말듯 이렇게 향기를 향한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은 끝날 줄 몰랐다.
하얀 눈 사이로 시원하고 톡 쏘는 솔 향과 정향의 냄새가 어우러져
우리 곁으로 다가선다. 눈측백나무에서 나는 냄새다. 1,000미터 이상
인 고산지대의 음지에서만 자란다는 눈측백나무가 100그루 정도 군락
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향기는 계절의 중심을 분해시키며, 고고하
게 모습을 드러내어 한동안 우리를 감싸고 돌았다. (p.168, '아우라지의 한' 中에서)
4부의 <역사 속의 향>은 새삼 '향'에 대해 다시 보게 된 부분이 아닐까 한다.
향은 오랜 역사와 함께 나름의 시간을 품고 있었으며 나라마다 특별함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귀족들의 놀이 문화, 궁중의 여인 몫이었다는 점.
일반 서민들은 쉽게 구할 수도 없는 사치품에 가까웠다는 것을 볼 때 지금 시기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모든 냄새 가운데 맑은 것이 가장 좋다(諸臭中純澹爲最)'(p.268)는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계속 되뇌어도 참 좋은 것 같다.
마치 내 주변이 그러해지는 것 같아 수첩 한 귀퉁이에 써놓기도 했다.
한가득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어본다.
지금 내 주변에는 어떤 향이 감돌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향을 내고 있을까.
맑은 마음과 깨끗한 성품으로 냄새의 안과 밖이 조화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향기 그리고 사람.
오늘은 향에 관한 생각들을 한없이 끼적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