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가 잠들기 전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
S. J. 왓슨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평점 :
크리스틴은 기억 상실증 환자다.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잠에서 깨어난 후부터 다시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다.
그러나 여기에 지속성이라든가 연속성은 없다.
잠들면 모든 것이 리셋reset되어 생각했던 것, 겪었던 일들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 심지어 자신도 한순간 모르는 사람, 생소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눈을 뜨면 늘 낯선 오늘만이 있을 뿐.
크리스틴은 그렇게 ‘매일’을 되풀이한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사실이 희미해지며 잊어버리게 되는 망각의 세월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현재의 자신은 어떤 시절을 겪었든 과거의 집적(集積)된 실재(實在)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틴에게는 상기시킬만한 과거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의 자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거울에 비친 얼굴조차 자신의 얼굴이 아닌 것 같아 당황스러움과 어색함부터 앞섰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어 다른 시간대에 뚝 떨어진 기분이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누군가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도 그건 난감하고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낯선 방에서 낯선 남자와 눈을 뜨는 것, 처음 본다고 여기는데 그가 자신을 남편 ‘벤’이라 말하니 머릿속은 당혹감과 혼란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결혼생활은 22년, 크리스틴은 올해 마흔일곱, 그녀가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은 스물아홉 살 때의 일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예전에 살던 집에 불이나 많은 사진은 없지만, 일부 사진들이 있는 스크랩북을 건네는 벤.
그는 오늘이 주말이고 결혼기념일이니 외출하자는 말을 덧붙이며 출근을 했다.
가방에서 휴대전화 전화벨이 울린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 바로 신경 심리과 전문의 닥터 내시의 전화였다.
Part 2는 크리스틴의 일기장 내용을 통해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벤에게 닥터 내시를 만나 상담을 받는다든가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비밀로 했다.
날마다 일기를 읽으며 자신의 과거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사항들은 글로 남기기를 반복했는데 아픈 자신을 돌보는 남편에게 사랑을 느끼고 털어놓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뢰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 속에서 퍼즐들이 하나씩 맞추어졌던 것이다.
벤은 크리스틴에게 거짓말을 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다고 했던 것, 그녀가 소설을 쓴 적이 없으며 친구 클레어가 이민을 가서 연락되지 않는다던 그 모든 것들이 거짓말이었다.
이 거짓말들을 알았다고 해서 내용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기의 내용이 ‘오늘’에 가까워질수록 이젠 알고 있다 생각하는 내용도 반전의 반전이 더해져 분위기를 뒤엎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추리소설, 공포소설과는 또 다른 경악과 소름 끼침을 선사한다.
크리스틴의 흩어진 기억들이 하나로 합쳐질수록 글의 흐름은 더욱 빨라지고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처음의 ‘오늘’이 느긋했다면 일기를 다 읽은 후 ‘오늘’은 불안하고 긴박하기만 하다.
잔잔한 것 같지만 강렬한 스토리로 묘한 충격을 줬던 소설.
영화화 예정이라고 하는데 스크린에서는 거짓과 진실 속에서 어떻게 심리를 표현해낼지 무척 기대되는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