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금학도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4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역시 이외수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거짓말처럼 책의 글자들은 단어와 문장이 이끄는 대로 색감과 느낌을 가진다.
그렇다. 《벽오금학도》는 책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신비로움의 시작이었다.


맑고 에너지 가득한 햇빛이 느껴졌다.
마치 금방이라도 손끝에 닿을 것만 같은 청명한 탑골공원의 가을,
그리고 그림이 든 비단통을 지닌 백발동안의 대학생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강은백.
농월당 선생이라 불리는 할아버지께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던 손자가
물에 빠져 죽을 운명이라며 그를 살리기 위해 지어준 이름이다.
강은백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것은 단순히 이름과 겹치는 우연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정말 물에 빠졌었고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지만
실은 오학동이란 마을에 다녀온 후 머리가 세어버린 것이다.
오학동은 황금학이 살고 있으며 오동나무가 많고 신선 같은 노인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사흘을 지내고 왔지만 원래 마을에 돌아왔을 땐 석 달이 지난 상태였다.
그는 다시 오학동으로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받아온 그림 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다시 오학동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하여 강은백은 오랫동안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며 찾아다닌다.


여러모로 감각적인 소설이다.
전쟁 이후의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 보릿고개, 미군의 원조, 초콜릿, 미국 학용품 등등.
직접 그 시절을 겪지 않았지만 충분히 소설을 통해 힘들고 배고팠던 상황이었음을 짐작해본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들 역시 《벽오금학도》에 집중하게 해준 중요한 요소였다. 그를 키운 할머니, 너무 순박한 바보였기에 놀림의 대상의 되었던 삼룡, 모든 것이 일류여야만 하는 아버지, 신경정신과 전문의 장일현 박사, 인사동 오죽산방 주인 서씨와 문태현, 무선낭, 고산묵원, 고묵의 제자 백득우, 노스님 침한, 노파 등등.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인물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하나둘 모이는 부분들은 이제 실마리가 풀리나 싶어 긴장감이 더해만 갔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눈길을 끌던 부분은 강은백이 그렇게나 다시 가고 싶어 하던 오학동에 대한 부분이다.
편재(遍在)라는 것이 되는 마을.
특히 모든 사물이 될 수 있는 은유의 마을이기에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모든 것이 귀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 끝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방울소리와 빛으로 묘사된 장면은 글이 주는 환상적인 상상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외수님의 《벽오금학도》.
금빛 가득한 글들이 춤추듯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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