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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빛의 각도에 따라 수십 가지 색이 반사되는 나비의 날개.
이 책은 온다 리쿠의 단편들을 엮어 다양한 색감을 느낄 수 있는 말 그대로 나비 같은 책이었다.
온다 리쿠의 소설은 끊임없이 오감을 자극한다.
그녀는 독특한 소재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있을 법한 일로 풀어내는 필력의 소유자다. 때로는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 사고도 온다 리쿠, 그녀를 통해서라면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심야버스를 타고 한정된 인원이 ‘W'라는 마을에 관광을 하러 간다. 많은 대화는 오가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아끼는 그 분위기가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가져와서는 안 되는 돌을 가져옴으로써 돌 손가락이 자라는 <관광여행>의 결말에서는 오싹함마저 느껴졌다. 분위기가 다른 또 다른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던 <다리>. 아케미의 남동생 에이지가 다리를 넘어 오면서 총에 맞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소리 치고, 도망가는 그 상황들이 꽤나 긴박감 있게 다가왔다. <틈>에선 잔잔한 공포감으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질 것만 같아 덩달아 틈 공포증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세상은 죽은 사람에게는 너그러워도 산 사람에게는 냉정한 법이다.’(40p)란 말이 너무나 씁쓸하게 느껴졌던 <스페인의 이끼>. ‘개에게 물리는’게 어떤 건지 직접 알려준 그녀의 담담한 행동이 강렬하기만 하다. 로또 7에 당첨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남자의 이야기 <당첨자>는 한편의 연극으로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편지를 받은 순간부터 주변을 의식하고 가족마저 의심하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감정표현연기가 왠지 기대될 것 같다. <당신의 선량한 제자로부터>에선 선뜻 진실한 선이 무엇이라고 감히 답할 수가 없었다. 미국드라마 덱스터를 보는 기분이다. 어떤 것이 정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법 앞에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아니라는 것, 권력과 돈을 가진 나쁜 어른이 많은 현실이기에 쓴웃음이 나온다.
이처럼 허공을 가르는 힘차고 무거운 날갯짓. 기묘함과 공포감, 긴장감을 고조시킨 이야기가 있는 반면 가볍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날갯짓처럼 환상적인 단편들도 틈틈이 섞여 있어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나비사와 봄, 그리고 여름>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 꽃을 키우고, 나비의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나비사는 그 목소리를 좀 더 잘 듣기 위해서는 혼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움트는 생명력의 계절 봄이건만 왠지 모르게 아픔이 쿡하고 스치는 기분이다. <뱀과 무지개>를 한 줄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기억조각 맞추기. 상상하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저녁밥은 일곱 시>와 <엔드 마크까지 함께>를 통해 유쾌한 즐거움을 선물 받았다. 반짝이는 물방울, 빛의 도시처럼 신비함이 가득한 단편 <달팽이 주의보>. 온다 리쿠는 <계속 달려라, 한 줄기 연기가 될 때까지>를 통해 직육면체로 로 된 상자의 왕국을 세우는가 하면 <주사위 놀이>로 규칙을 만들기도 한다. 읽는 것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생명의 퍼레이드>는 그야말로 엄청난 장관이었다. 마지막으로 환상 여행의 끝에는 정리 되어지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야상곡>이 자리 잡고 있다.
온다 리쿠의 단편들은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품 속 문장들은 군더더기 없다.
흡입력이 강한 작가 온다 리쿠. 그녀의 다른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자연스레 찾아보는 자신을 발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