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영화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로맨스, 공포, 판타지, 액션 등등.
그 중에서도 난 액션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비슷하겠지만 일단 주인공은 무언가 특별하다.
그리고 시각적인 볼거리가 쉼 없이 제공되면서 긴박한 상황에서의 적절한 배경음은
관객으로 하여금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골든 슬럼버는 한편의 액션영화다.
그런데 찬찬히 소설을 뜯어보면 액션이라고 할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
굳이 찾아보자면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가 경찰을 만났을 때 밭다리 후리기를 써먹는 장면 정도가 액션이라면 액션이다. 그가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액션영화를 보고 난 후의 경쾌함, 통쾌함을 선물로 준다.
빠르고 화려한 영상이 없어도, 그에 맞게 템포가 빠른 음악이 깔리지 않아도 충분히 흥미 진진하고 긴박한 느낌을 담고 있다.

센다이 지역에 가네다 총리의 퍼레이드가 있는 날, 총리는 무선모형헬기 폭발로 인해 암살을 당한다. 그 범인으로는 택배 기사를 한 적이 있는 아오야기 마사하루가 지목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
범인으로 몰리도록 조작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중매체와 경찰청 발표에 의해 아오야기 마사하루를 총리살해범으로 여기게 된다. 시큐리티 포드가 정비된 센다이에서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잡히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도망친다.

21세기는 이미 감시 사회이다.
건물 어디를 가나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휴대폰 전파를 추적해 사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센다이시큐리티 포드를 통해 건물 바깥에 설치된 카메라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쓴 아오야기 마사하루였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 영화가 머리에 떠올랐지만 그 중 하나는 '짐 캐리'가 주연했던 <트루먼 쇼>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하나의 가상 도시에 살면서 그의 모든 모습이 TV로 방송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감시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점에서 아오야기 마사하루와 겹쳐져 보였다.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식당 아주머니의 증언, 그가 모형헬기를 사는 것처럼 보이는 CCTV의 화면 등은 조작된 증거인데도 사람들은 믿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건을 나중에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이 아니었더라면 나 역시 그대로 믿어버렸을 것이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실제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게 씁쓸하다.
언론은 자세한 과정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여진 것만 보도하기에 바쁘다. 어느 한쪽의 말만 주로 보도할 뿐 양쪽의 말을 공평하게 내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면 전문가와 패널을 모시고 얘기한다면서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을 멋대로 저울질하고 섣부른 판단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그런 대화에서는 6하원칙 중 "왜"가 빠져있다. 

삼인성시호 [三人成市虎]
세 명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곧이 믿게 된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하면 믿게 된다는 말이다.

언론의 힘은 그만큼 대단하다. 사람 세 명만 모여도 없는 사실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수십만명이 같은 방송을 본다면 몇 마디만 나눠도 이미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단순히 오보였다며 사과 방송 한번으로 끝내기엔 무게가 다른 것이다.
정확한 출처에서 진실만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언론매체를 탓하기엔 아무런 여과없이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결국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배후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 벌면서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시민이니 권력이 있을리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쉽게 잡혀주지도 않는다.
이 점이 통쾌하다.
몇번이나 잡힐듯 말듯 하다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 때에도 잡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비록 얼굴을 바꿔야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허무하게 잡혀주지는 않았다. 

내가 꼽은 소설의 가장 멋진 장면은 바로 히구치가 휴대폰으로 "달려, 아오야기 박사!"라고 외치는 순간 거리 이곳 저곳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지면서 그것을 신호삼아 아오야기 마사하루가 도망치는 장면이다.
보통 이야기 같으면 주인공과 몇몇 사람을 빼놓고는 인물의 중요도가 그렇게 크지 않지만
골든 슬럼버에서는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제 역할을 가지고 있다.
무심히 흘렸던 소재들도 나중에 다시 등장하며 치밀한 복선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화려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단어들이 없어도 충분히 긴장감과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때로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기억과 대화 속에서
이사카 코타로의 사건 전개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손에서 책을 놓기가 어렵다.
<<골든 슬럼버>>. 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추격에 관한 느낌을 살릴 수 있는지 알게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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