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과 풍경 펭귄클래식 40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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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은 글로 이루어진 그림이자 음악이다.

책을 막 펼쳤을 때는 현재 남아있는 성당의 모습이라든가 자연의 사진이 중간 중간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멋진 일러스트라도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조금 더 읽었을 때는 오히려 사진이나 그림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보여지는 것이 로르카의 글이 주는 느낌을 뛰어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자료가 먼저 눈에 보여지게 된다면 글이 주는 묘사를 대충 넘기게 될 것이고
그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반감시키게 될 것이다.
로르카의 글은 글만으로도 충분하다.
많은 감각어로 잠자고 있던 감정과 감성을 깨우게 한다.

그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뿐 아니라 우리가 못보는 것도 놓치지 않고
글로 멋지게 표현하는 예술가다.
그가 여행을 하며 적은 인상들은 자신의 눈을 통해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책을 읽다보니 그동안 자신의 표현력이 얼마나 메말라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최근 읽은 책이라고는 주로 자기 계발서나 소설 위주였고 가끔 역사에 관련한 책들 뿐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물이 나오고 어떤 행동들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
더불어 거리나 날씨를 묘사하는 글은 기껏해야 서너줄이라는 점이다.
수식하는 말은 매우 짧아서 어찌 보면 단순 사실 열거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로르카의 글은 색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 들어본 단어들도 아닌데 형용사가 명사를 수식하는 것은 물론 다시 그 명사가 다른 명사들을
수식함으로써 모든 것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인상과 풍경>>에서는 사람보다도 그 주변의 것들이 표현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면 독특하다.
햇빛, 바람, 공기, 성당, 언덕, 정원 등 어찌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우리나라의 색을 표현하는 느낌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노란색을 영단어는 yellow 하나인 반면 우리말은 노랗다, 샛노랗다, 연노랗다 등
다양한 색채어들이 존재한다.
로르카의 표현 역시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수만가지 색채어와 감각어들이 존재한다.
밤과 낮의 구분이 되어주는 태양, 햇빛도 그의 눈을 통하면
주변의 공기나 건물에 따라 수만갈래로 나누어지며 전혀 다른 색을 가지고 있고 소리를 가지게 된다.

- 우리가 성당을 나왔을 때는 오후 햇살이 온 세상을 황금빛과 잿빛, 그리고 장밋빛으로 물들이며
격정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중이었다. 41p -

- 서산에 해가 뉘엿거리자 온 세상이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중략) 보석처럼 화사하게 빛나던 세상은 장밋빛 열정으로 불타오르다가, 결국 토파즈처럼 노란빛을 띠며 희미하게 사위어간다. 208p -

로르카의 글은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들을 매력있게 되짚어 보는 안목도 가졌기에 더욱 특별하다.
묘지, 폐허로 변해버린 교회의 정원, 죽은 정원, 버려진 교회 등 거기에선 쓸쓸함과 외로움,
두려움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신비함과 더이상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자유로움도 담담하게
글로 풀어낸다.

<<인상과 풍경>>은 시각적인 표현이 어느새 청각을 일깨우고,
청각적인 표현은 이내 후각과 촉감으로 이어지는 공감각적인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 책을 읽을 땐 하얀 캔버스같은 마음만 준비하면 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저절로 그림이 그려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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