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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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몇 년 전, TV 광고에서 세종로에 있던 이순신 동상이 호탕하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거북선과 임진왜란으로 잘 알려졌고 그 크기만도 어마어마했기에 세종로하면 당연히 이순신 동상이 연상되었다.
그 모습 역시 세상을 내려다보며 호령하는 듯한 모습이라 어떤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생각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용맹한 모습보다는 고개를 숙였다며 장군답지 못한 여러가지를 지적했다.

이처럼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에서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장소며 건물에
대해 재발견 함으로써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해주고, 막연하게나마 알았던 생각들을 바르게
잡아주고 있다.
지금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과거의 사진, 현재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최근의 사진은
책 속에서 또 하나의 기록이 되어 내가 경험했던 그 기억들이 사라진 역사임을 말해주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청계고가다. 지금의 청계천은 도심 속에서 시민들의 휴식을 제공하는 문화
생태적인 공간이겠지만 얼마전만해도 높은 도로가 있었고 다양한 물건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책 속의 삼일아파트 사진이 더욱 안쓰럽게 마음에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청계천이 만들어질 그 긴거리를 하루 날잡아 걸어 본 적이 있었다.
새로운 쉼터, 역사적인 복원이라는 밝은 기운보다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락커칠 글씨가 무겁게
다가왔었다. 너무 낡고 허물어질듯한 삼일아파트 안을 구경하고 싶어 조심스레 계단을 올랐더니
그 안은 정말 버리고 간 가구들과 쓰레기, 불이라도 났는지 심하게 그을린 벽이 으스스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역사를 소개함에 있어서 최근의 관련 사건이나 영화, 외국의 사례를 통해 호기심있게 시작하는
구성도 돋보인다. 근, 현대사적인 내용도 많이 담고 있어 친일파에 관련한 인물이라든가 사건, 장소도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래선인지 몰라도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는 기쁨보다도 잘못알고 있었던 자신의 무지함에
화가나고 창피하기까지 했다. 특히 일제 시대와 관련한 것들이 작가에 의해 미련하다 꼬집어질땐
마치 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킬트 얘기로 시작해 '만들어진 전통' 제야의 종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충격이기까지 했다.

- 그 행사라는 것이 킬트의 경우와는 달리 대동아공영을 꿈꾸는 일제의 '의도'가 투영된 행사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보신각 주변은 '홍아의 소리'를 들으러 나온 인파로 가득하다. 정작
복원되어야 할 '철근 콘크리트' 보신각은 그대로인데,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전통만이
재현되었을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와 망각 속에 '집단적 기억'은 그렇게 조작되고 있었다.

157~158페이지-

매 해 12월 31일 자정이 다 되어가기 전 종각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맛도 냄새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종소리를 통해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음을 느끼고 종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계획과 이루고픈 소망들을 떠올릴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그 기원을 알고 모이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한편으로는 그 기원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원을 모른다고 해도 꼭 과거식으로만 해석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그 시간 그곳에 모여서 종소리를 듣는 이유는 일제 강점기 시절 만들어 졌다는 전통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 주변 이웃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 희망과 소망을
가지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비록 만들어지고, 얼마 안된 행사이긴 하지만 그것이 좋은
뜻을 가진다면 앞으로 좋은 전통으로 이어지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당시의 의도 보다는 현재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 기원을 모든 사람이 안다고 해도 지금 시민들이 모이는 것은 의미 자체가 다른데
과연 과거와 현재를 똑같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유물, 유적으로 옛 고궁이나 절터도 중요하지만 근, 현대사 시대의 장소, 건물들도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 위해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을 통해 본 많은 장소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거나 다른 건물이 들어서서
기록으로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시내버스 차고지 정문으로 쓰이고 있는 환구단 대문, 병원 정문으로 쓰이고 있는 경교장 등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모른 채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늘 곁에 있었던 장소며 건물인데도 알지 못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크다.
현재 남아 있어서 찾아가 볼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 더 많아
이제서야 책을 통해 알게 되는 부분이 많아 안타까움이 더 클 뿐이다.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이 책은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역사 지도와 같다.
우리 주변을 좀 더 관심있게 지켜본다면 역사와 함께 숨쉴 수 있을 것이며
아스라이 사라진 후 그것을 알게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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