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는지 후회했다. 그동안 내가 의문을 갖었던 이 사회의 근본적인 병폐의 원인을 파악했고, 왜 내가 대한민국에서 행복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를 알게되었다. 지금껏 읽은 책 중에 최고이다. 하지만 책을 덮자 아이들을 데리고 독일로 이민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 생각을 말로 남편에게 발설하면 본전도 못찾을게 뻔하다. 한국이 앞으로 언제쯤이나 인간의 존엄을 중시하는 나라가 될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사회와 독일사회를 같이 생활해보면서 비교하고 연구한 김누리 교수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비뚤어진 유교의식으로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성적위주의 승자독식 경쟁,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정치는 민주화를 외쳐도 문화,경제,사회 민주화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1장에서는 우리가 민주주의 1등이면서 다른건 얼마나 취약한지, 노사공동결정체의 독일과 비교해보고, 68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말한다.

2장에서는 대한민국에는 왜 전세계적으로 열풍이 불던 68혁명이 없었는지, 경쟁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구호로 자기착취 및 우리 내부의 노예감독관,

3장에서는 사람들이 자꾸만 자살하고 유례없는 불평등, 우울한 아이 , 왜 헬조선이 되었는지, 미국보다 더 미국같은 대한민국,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야수 자본주의,

4장에서는 독일통일에 대한 오해와 진실, 남과북이 평화롭게 다치지 않고 잘사는법,

내용은 다소 무거울수 있으나 쉽게 읽혀지고 너무도 공감이 가고 이 사회의 비밀을 알아버린 느낌이다.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왜 진즉 이런 책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내가 사회,문화,경제 이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했던것도 참 무지하다. 그냥 내가 이렇게 힘든것이 당연하고 당연히 힘들어야 쟁취를 하는것이고 무기력하게 사회경쟁구도에서 직장에서도 서열위주, 무슨 성과가 보이지 않는데도 그 성과서열도 어떤 순위인지도 모르고, 내가 일을 못했나보다 자학하고 남들보다 더 적은 성과금으로 만족해야 하고, 하루하루 밥먹고 사는데 만족하고, 아이들이 살인적 경쟁구도에서 밤을 새우고 공부해도 제대로 된 대학을 들어갈까 말까하는 상황에서, 다른 애들도 하니깐 너도 해야지, 왜 남들처럼 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불행속으로 밀어간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고1딸은 성적위주의 이 학교가 너무 싫다고 한다. 어쩌면 딸의 속에는 노예가 없나보다. 이제는 딸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게되었다.

17- 저는 독일 사회를 보면서 서서히 우리 사회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살인적인 경쟁과 승자독식의 정글속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보게 되었지요. 우리의 삶이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 우리 머릿속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다른 형태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해 온 많은 것들이 혹시 비정상이 아닌가 ‘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 것이지요.

내가 직장에서 느끼는 고통은 , 누군가 착각할수 있다. ‘정말 뭘 잘못해서 그렇게 당하는거 아냐‘ 하지만 아니다. 내가 잘못된게 아니다. 내가 고통스러운건 내가 당하는 억압이 잘못된 것이기에 그걸 바꿔야 하는데 바꿀수 없기에 분노는 당연한것이다. 직장생활 내내 업무도 업무거니와 상대의 무례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밥벌이의 끈을 놓치않기 위해 그 모든걸 감내하고 스트레스를 겪으며 살아왔다. 십년후면 퇴직이고 오십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누군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

그 대부분 가해자는 남자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위가 높다거나 하는 사람들이다. 더더욱 내가 근무하고 있는곳이 시골이고 이곳이 내 고향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과 한편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척을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고 덮어놓고 오해하고 분노하고 뒷담하고 그러는지 알수없었고 결국 이방법 저방법 다해봐도 그들이 변할리는 없고 해결책은 포기였다. 그냥 저 사람은 그런 성향이니 크게 반응하지 말고 대충 대하고 정말 경멸스런 사람은 눈빛으로 반응해주고 그런 방법을 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김누리 교수가 독일의 사회와 비교하여 우리가 정치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그 부분에는 어느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사회,문화,경제, 교육 부분에선 아직도 고질적인 병폐가 왜 고쳐지지 않은건지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이젠 우리사회가 변해야 함을 주장한다.

‘ 30-50 클럽‘이라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을 ‘30-50클럽‘국가라고 부르는데 지구상에서 일곱 국가만이 이 그룹에 속해있다고 한다. 바로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이라, 한국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다.

34-한국인들은 정치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는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정치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치에만 국한된다고 착각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정치제도의 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라고 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 -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조직내 갑질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이다. 조직에선 갑질하고 마치 우리나라 정치가 썩었다고 옳은 소리를 하는 척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자치인데 직장에서도 구성원의 자치보다는 위에서 무조건 지시하는거 이행하지 않으면 찍히는 분위기다.

42- 한국기업에서는 그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합니다.

1968년 5월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의 운동이 일어 났다고 한다. 이 운동의 핵심적인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고 한다. 참 그들은 빨리 깨달았다. 지금도 우리를 억죄고 있는 유교적 윤리에 의한 억압, 부모로부터,학교로부터,직장으로부터,여성에게 , 학생에게 가해진 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운동이다. 꼭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우리를 통제하는 사회적 시선도 억압이라고 한다. 이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격적인 것은 베트남전쟁이라고 한다. 베트남 전쟁을 전 세계적으로 보면서 이 전쟁은 부당하다고 다 느끼고 파병을 하지 않았지만 유독 우리나라만 박정희가 1964년부터 68년까지 5년동안 32만명의 지상군을 파견했다고 한다. 더더욱 그 이유가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가 당시 군부 내에서 남로당 활동을 했기에 그의 사상을 의심한 미국에게 좌익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미국에게 그렇게 우호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에 파병했다고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1968년부터 한반도가 게릴라전 상태로 접어들면서 박정희는 정권을 잡자 남한 사회를 ‘병영사회‘로 재편하기 시작했다. 예비군훈련, 국민교육헌장, 군사교육, 파시즘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고 전세계가 68운동으로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외칠때 박정희는 그런식으로 남한사회를 군부사회,집단주의와 권위주의로 우리를 불구화 시켰던 것이다. 우리는 그게 잘못된 것이 아닌것도 몰랐기에 정치적 민주주의를 몸을 바쳐 쟁취했지만 그외 사회,문화,경제 분야에서는 헬조선 소리가 나올정도로 경제적불평등, 성적위주의 서열주의 사회로 만들면서 우리를 그렇게 불행에 익숙해 지도록 만들었다. 지역감정도 박정희가 1970년초부터 조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95-한국인으로서 우리들이 받은 교육은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것이었습니다. 군사문화의 잔재가 깊게 배어있는 교육이었고, 인권을 경시하고 끊임없는 경쟁과 희생을 강요하는 교육이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교육이라기 보다는 ‘반교육‘에 가까웠지요. 이런 반교육, 파쇼 교육의 잔재가 지금도 우리 내면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대다수는 ‘내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억압의 문화, 부조리의 상황을 하나의 문제로서 인식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물의 질서‘, ‘세상의 이지‘, ‘자연 상태‘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에리히 프롬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정상성의 병리성‘이었던 것입니다.

난 이대목에서 우리사회의 갑질, 꼰대문화의 근원을 파악할수 있게 되었다. 조직에서 조금 자리가 올라가면 밑의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호통치고 마음대로 휘둘러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명령하는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괴롭히는데 그 명령하는 일들이 상당히 어처구니 없는 일도 많다. 그 상사를 그래서 나는 그 직원에게 뭐라고 하는것이다라는 합리화를 하면 주변사람들은 또 다들 동조한다. 조직내 꼰대들도 그렇게 자신들도 억압된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또 대물림한다.

100- 20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극작가라고 불리는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한 유명한 말로 시작해 보지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동독을 택한 그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

108-이제 68혁명의 부재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시대 착오적인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시대에 상당히 뒤떨어진 현상들이 참 많습니다. 그 첫번째는 인권 감수성의 부재입니다. . 한국 사회는 인권 감수성이 대단히 모자라는 사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부족합니다. 특히 난민이나 장애인,문화적.성적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메르켈 총리가 2015년 시리아 난민 115만명 수용한것과 2017년 예맨 난민 500명이 제주도 왔을때 이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이 며칠사이 70만명을 훌쩍 넘어선걸 비교한다.

113- 독일의 교육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고 했습니다. 이말이 옳다면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수 없다는 얘기지요. 민주주의를 하려면 구성원 하나하나가 강한 자아를 가진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우리 교육은 자아를 강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약하게 만드는 교육이었습니다. 늘 학생을 야단치고 벌주고, 결국 깊은 열등감을 갖게하는 방식이었지요.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심지어 학생들의 인격은 아랑곳없이 전교생의 석차를 게시판에 붙여놓기도 한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게시판에 전교생 석차를 게시하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고 체별 역시 너무도 당연시되었다.

114-다른 학생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창의적인 생각을 드러내면 비판을 받거나 조롱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나 역시 조직에서도 좀 특이하다는 소리를 내 앞에서 아무런 꺼리낌없이 대놓고 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 무례하다.

114- 이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입니다. 초.중등 교육기관에서부터 아이들의 인권을 훼손하고 유린한 것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이런 학교에 다니면서 모멸감과 자괴감, 열등감을 일상적으로 느끼고 내면화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과연 이런 학교에서 강한 자아를 가진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을까요? 한국인들의 자아가 약한 것은 자아를 유린하고 파괴하는 교육 때문입니다.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김누리교수가 지적한 것들이 내 정신을 흔들었다. 속고 살았고 억울하다고 느껴진다. 이런 구조적인 결함이 있는 사회속에서 내가 이상한게 아닌가 자괴감을 느끼고 무기력하게 살아왔다.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서구 사회에 대한 동경이 아무런 믿도끝도 없는데서 시작된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부터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억압된 현실을 벗어나고자 ‘상상노트‘를 써볼까 생각하고 있다. 이미 나이가 들어 선진국가에서 뭔가를 시도할수 없고 아이들 역시 원하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사회에서 아무런 억압없이 자신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결국 68혁명이 없는 한국의 상황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사회가 권위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에 박혀있는 이 권의주의 문제가 독일에서는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저자내 독일에서 유학했고 연구했기에 독일의 통일,베를린 장벽이야기,독일인의 의식, 교육 그 모든문제를 우리와 비교를 하면서 정말 너무도 보잘것없은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조직내 권위주의를 비롯해, 학교에서 벌어지는 살인적인 경쟁은 승자독식의 논리와 연결되어 독일인이 혐오하는 나치즘같은 야만을 야기한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생각이 이미 1970년대 독일 교육개혁의 기본원리이고 그들은 68운동부터 시작해서 점차 국립이 대부분인 대학의 학비를 없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사립 중.고교. 사립대학의 엄청난 학비를 감당해야 한다.

121-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anti-education)에가깝습니다.

131- 저는 이런 이유로 자기착취를 조장하고 장려하고 미화하는 일체의 담론에 분노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식의 말들을 들으면 화부터 나지요. 한국에서 사는 이 고단한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끊임없이 ‘좀 더 ‘착취하라고 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6-한참 독일에 있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 사람들의 표정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강한 긴장감이 표정에 배어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다시 독일에 가면 서독 사람들의 얼굴에서 평온함을 느꼈지요.

왜 우리가 노예인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저자는 우리가 그 상태를 인지하는것이 자유인이 되는 첫번째 조건이라고 한다. 우리도 독일의 청소년들처럼, 독일의 직장인처럼 , 독일의 대학생들처럼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애써 우리를 혹사하지 않아도 괜챦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미국보다 더 좋은 의료시스템에 그런데로 살만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더이상 청소년자살이나 이탈, 공부못해도 인간대접을 받고, 직장에서 뭔 자리하나 꿰찬다고 부하직원들한테 갑질 안하는 사회가 될것이다.

내가 그동안 갖었던 직장내 갑질, 꼰대 등장 이 모든것에 대한 의문을 풀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고 드디어 나는 그동안 내가 느낀 고통이 내가 못해서가 아니고 내가 뒤떨어져서가 아니라는걸 알았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그렇게 성적위주의 서열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너만 왜 그리 힘들냐는 것들을 모두가 당연히 여기고, 노예이면서 노예가 아닌척 살아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 부분 봉건주의 사회인 북한과 우리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조화롭게 잘 살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해법을 제시한다. 흔히 통일이라고 하면 좀더 잘사는 우리의 자본주의가 못사는 북한을 흡수하고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는 거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북한과 우리는 분단이래 너무도 다른 길을 걸어왔그 그 갭을 극복하면 얼마가 걸릴지 모른다. 북한주민이 탈북해서 남한에 와보니 그렇게 잘살지 몰랐고 그렇게 불평등한 소외가 있을줄 몰라서 다시 견디기 힘들어 다시 탈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흡수통일은 말이 안된다. 서로의 정권을 인정하고 소통하고 왕래하면서 북한의 봉건적,권위주의적 사회를 어떻게 인간화할건지,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어떻게 인간화 할건지를 해결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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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았다. 그 자를 대적할수 있는 대책이 오늘 고민하지 않아도 갑자기 내 속에서 솟아져 나왔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꼰대처럼 트집잡고 , 자기 비위 꼴리니깐 별별 짓을 다 하고 역정내는 인간에 대한 방어책은 바로 다음의 것이다.

 

1) 내 감정이 그 거지같은 태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최대한 평정을 취하고

2) 그자가 그 어떤말을 하더라도 그자가 원하는 것 중 내가 해야 할것만 하기.

3) 그자는 그 어떤 교육을 받아도 강의를 받아도 책을 전혀 읽지 않은 자이기에 자기 입장에서만

오판하고 그걸 분노라는 감정으로 끌어올려 결국 상대에게 폭발시키는 자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을 전혀 인식하지 않은 군사문화의 잔존만을 가지고 알량한 권위 세우려고 하기에...그자가 뭐라고 하면..속으로 비웃으며...'네네..알았어,,어쩌라구,,그래,,그러면 될거아냐 '라는 태도로 가야지 , 같이 맞서다간 같이 진흙탕에 뒹구는 꼴이 만다.

 

어찌되었던간 , 오늘아침에 그자의 짖음에 내가 최대한 평정하고 , 순간 한판 또 붙을까 하다가

참았다. 앞으로 이런식으로 하면 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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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3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Grace 2020-09-23 11:21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합니다. 그런 자들에 대해 대처하는 법을 익히고 사회생활 해야하는지 ,,,

2020-09-23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역시 누구딸인가,

내가 중학교때 한문책같은걸 놓고와서 미취학 남동생을 삼촌이 오토바이에 태우고 학교에 갖다주던 적 있었다.

오늘 뭐 처음이긴 하지만 중3 둘째딸이 국어책을 놓고 왔다며 모처럼 연차내고 쉬고 있는 남편이 있었기 망정이지. 누가 학교에 책을 갖다줄건인가.

˝ 나 오늘 국어책을 놓고왔는데 쉬는 시간에 가지러 갈테니깐...학교 정문앞 풀숲에 놔줘˝ 하고 가족 단톡방에 이런 문자가 뜬다. 풀숲이라니....남편은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러자 딸이 괜챦다고 무조건 풀숲에 놓으란다.

마치 첩보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단톡방 대화,
결국 남편은 학교 정문 쪽 나무 밑에 이렇게 숨겨두고 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정문 들어가서 첫번째 건물 첫번째 나무 밑 안쪽
위 사진 참조‘

‘나무를 잘 보시요‘

나중에 딸이 ‘오케이‘하고 카톡을 보내왔다, 사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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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좋아 2020-09-2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 저희 딸 같았으면 엄마 안아보고 갈라 그랬겠죠 `` 그래도 사춘기가 오면 선을 그을테죠~~ 그냥 반가운 글이었어요

Grace 2020-09-22 15:4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근데 지금 중3딸이 이런것만 봐서 엄청 다정다감하거나 그런걸로 오해할수 있는데....현실은 정말 사춘기 극입니다. 희로가 완전 극명하고,,뭐 간섭하는것도 싫어하고 ,,일단 사춘기가 되면 자신의 엄마를 엄청난 속물로 본다는겁니다.ㅋㅋㅋ 이 사춘기가 정말 무섭더라구요.ㅋㅋ

Grace 2020-09-22 15:48   좋아요 0 | URL
그러면서 뭐 사달라거나 요구하는것도 엄청 많습니다.ㅋ
 
여자는 인질이다 열다 페미니즘 총서 3
디 그레이엄.에드나 롤링스.로버타 릭스비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남성들이 읽게하면 안될거 같다.

두꺼운 책을 두고두고 며칠에 걸쳐 읽을수 있는 차분한 성미가 아니다. 이 책은 아침부터 시작한다면 하루안에 끝낼수도 있겠지만 외면하고 싶은 상당히 불편한 진실이 많이 나와있다.

오전에 운동갔다가 오후에 겨우 들기 시작했다. 물론 사 놓은건 한 2주가 넘었으나 읽을려면 어느정도의 시간을 마련해야 했지만 요즘 소득없이 시간만 보내는 일이 잦아 이 책도 계속 미루고 있었다. ‘여행의 이유‘같은 책이라면 얼른 들어 후다닥 읽어 해치울수 있지만, 이책은 어느정도 두께가 있고 생각을 하고 읽어야 할거 같은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회사 독서포인트로 구입한거라 얼른 후기도 작성해야하고 한번 밀리면 그 후 구입한 책들도 계속 밀린지라 숙제를 쌓아두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라, 어쩌면 남성들이 읽기엔 무지 불편할 지도 모르지만 여성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본다. 저자는 미국인지만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로 바꿨는지 모르지만 미국사회도 별반 다를게 없는거 같다. 솔직히 정독하지 못했다. 아주 빠르게 훑어지나갔고 필사를 하는 부분을 찾아서 만년필을 이용해 노트에 적는 부분만 집중을 했다.

모두가 아는 스웨덴 은행강도 사건, ‘스톡홀름 증후군‘ 에서 시작된 인질이 강도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와 폭력적인 남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과의 관계를 관련성 있게 나루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충격적인건 우리가 알고있는 남성이 문을 열어주는 단순한 신사도라 여기는 부분에도 뿌리깊은 차별이 존재한다고 한다. 189페이지 :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려 든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악의를 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207-여남을 일대일로 짝짓는 문화는 여자끼리 남자의 관심을 두고 경쟁하게 만들어 여자들이 힘을 합치기 어렵게 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솔직히 여적여라는 말이 우리사회에서 여자들 세계에서조차 통용되는 말이 아니던가.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들이 여성 스스로를 비하하고 차별하는 말들이었다는 걸 자각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자들은 서로 연대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때 같이 행동해야 하는거지 적은 아니다. 279-페미니즘은 여자의 권리를 찾고 여자를 해방하기 위해, 여자가 주도하는, 여자에 관한 이론이자 운동이다. 365-나는 여기서 ‘우리가 흔히 공감이라고 부르는 능력‘에 따옴표를 치고 싶다. 우리문화는 공감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인류라면 갖고 태어나는 이 능력을 여자에게 할당하고 남자에게는 금기한다.

401-가부장제가 실시간을 전개되는 방식에 빠삭해지려면 우리는 먼저 언어적 폭력을 짚어내고 방어하는 방법을 배워야하며 이런 지식을 다른 여자들과도 공유해야 한다. 387-˝여자가 시야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저항행위가 될수있다˝ 331- 여자가 다시는 폭력을 겪지 않도록 개인적, 사회적인 변화를 끌어내려면 타인의 행동을 기록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사회에서 남자의 폭력을 마냥 두려워하고 살진 않는다. 90년대 초 내가 직장에 들어올때만 해도 가부장제의 우월감에 젖어 비뚤어진 우월의식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 언어적 폭력이 만년하던 시기였다. 혹시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안좋은 소리를 듣으면 어떻게하나 하는 두려움이 여성들에게 자리하고 있었다. 완전히 그런 악습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현재까지도 뉴스를 통해서도 볼수 있다. 나보다 몇살 어린 남성인데도 회식자리에서 ‘여자가 따라줘야 한다는둥‘하는 말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하는데다, 거의 50대후반 60,70대들같은 아주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 남자들이 없진 않다. 여성의 권리 주장하면 ‘페미니스트‘라는 틀에 가두고 다른 여자들로부터 분리하려 한다. 하나의 예로 조직내에 특수직렬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여자로 이루어져있고 남성은 소수다. 여성으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남성의 설 자리가 부족해 두려운건지 또 그 속에서 남성의 사조직을 만들었다. 그들은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가기도 한다. 원래 남성중심의 조직이어야 하는데 여성이 월등히 많으니 남성으로서 불안감을 느꼈던 탓일까. 그 남성 소모임에서 알수 있듯, 남성이 주축이 된 조직이 아니라 그들은 두려움을 느꼈을수도 있다.
보통 남녀 성비중 여성보다 남성이 많을때 여성이 그곳에서도 소 그룹을 만든 사례도 있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갈길은 멀다. 이 책을 읽고 고민이 더 깊어졌다. 나 역시 여성비하하고 무시하는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가부장제에 쩔은 남성들과 근무를 하고 있고 그들의 못된 사례를 옆에서 생생히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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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하루하루 근무하는것이 지뢰밭을 거니는것 같다. 한번 당하고 나면 , 다시는 내 의도를 보이지 말아야지 입을 꾹 다물고 지켜만 봐야지 하다가 , 상대의 느슨한 태도에 홀딱 넘어가서 내 견해를 밝히고 만다. 결국 나에게 돌아온건 상대의 냉소적인 기분 나쁘고 매너없는 말이다. 난 또 퇴근 무렵에 그 자의 말에 엄청 신경쓰고 스트레스를 받을수 밖에 없었다.

일단 그자는 나와 같은 팀장이고 나보다 두살정도 어리지만 사고방식은 엄청 고루하다. 요즘도 술먹고 노래방가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갖지만 그는 술을 먹으면 2차,3차 기억상실에 담날까지 혀가 꼬인채 출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형은 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수년전 가발을 맞췄다는 소문이 있긴해서 조직도를 보면 살짝 과거가 보이지만 본인은 전혀 함구한다. 그와 술은 결코 빠질수가 없는 것인데 술을 안먹은 평소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다 내가 먼저 농담을 걸때도 있지만 돌아오는 건 이건아닌데 한적이 많다.

문제의 발단은 언젠가부터 이자가 날 마치 수전노 대하듯 하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며칠전 전직원에게 밥을 사다시피 해서 거금이 나가 속이 쓰린 상태인데, 오늘 우리 팀원들하고 내가 밥을 먹고 들어왔는데 우리 팀원에게 점심때 술 먹었냐고 물어보는거다(그건 왜 물어보는지 이해할수 없다. )

퇴근후 직원들이 누구 경조사 일로 거기 간다고 하는데, 솔직히 난 이곳이 고향이 아니고 이곳 사람들이 싫다.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남기고 싶지 않는 심정이긴 하다. 막 대놓고 난 당신들이 너무 싫어요 라고 말을 하고 싶을때가 많다. 우리나라는 지역색이 있어서 그 편견이나 그런걸 탈피하기가 어렵다. 한때 난 그런 생각이 없는데 내가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배척당한 안좋은 기억이 있기에 될수 있으면 이곳에선 추억거리는 남기지 말자 하다가도 어떻게 친분이라는게 의도에 따라 만들어지는게 아니기에 친분을 유지하다가 뒷통수 맞는 경우도 많기에 이제 오십이 넘으니 내가 하고싶은데로 하고 살다 퇴직하고 퇴직하자마자 이곳을 떠나주마 하고 있었다.

다른데 근무하는 직원 경조사로 몇몇 아는 사람은 가니마니 하길래 나한테 가냐고 그자가 물어보길래 내가 한마디 했다.
˝이것도 품앗이니 서로 안받고 안주고 하면 되지 않나요?˝
옆에 우리 팀원은 ˝그것도 좋은 방법이죠, 깔끔하죠.˝
그러나 그 자의 말
˝ 아니 축,부의금도 그런단 말요? 그러면 세상을 왜 사요 왜 살아?˝

아니 나보고 죽으란 말인가, 도대체 그렇다면 그자는 스치기만 해도 축.부의하고 상대가 하지 않아도 본인은 하고,,,완전 무슨 꼰대도 아니고 마인드가 유교마인드인지 모르겠지만 황당한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 다 자기 특성에 따라 사는거니 뭐라 할 필요도 없죠˝ 하고 바로 퇴근해 버렸다.

문제는 내가 한 말이 너무 약하게 던진말이고 , 내가 받은 기분나쁨은 분노와 스트레스로 변했다. 그자의 말에 내가 또 반응하고 당한것이다. 그자는 한마디로 날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오는 무슨 수전노로 본것이다.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아흐 ,,머리를 쥐어 뜯으며 그자가 보는것만큼의 그런 사람이 아닌데,,,내 관리를 잘못해서 실제의 나보다 더 안좋은 모습으로 이미지 관리를 못해 그자에게 잘 못 보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속으로 계속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 나도 바보같지, 그자를 경계하자고 맘 먹었으면 끝까지 빗장을 열지않고 나가야지 , 그자의 살짝 누그러진 말 한마디에 속을 보이고 또 그런 공격을 바로 당하다니 말이다...그냥 아무말없이 냉소적인 조소를 보내고,,속으로 ‘니가 그걸 알아서 뭐해 ‘ 했어야 하는데...그렇게 당해놓고 스트레스 받다니 말이다. 어리석도다. 이 앞주 금요일 막 술을 시키고 또 그걸 받아주고 밥값 계산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자가 지속적인 불만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녁마다 같이 어울려주고 술을 마셔주고 , 때로 술값도 계산하고 그리 살아야 하나, 내가 저녁에 전화영어를 하고 요가를 다니고 영어공부를 한다고 해도 , 그말을 듣고는 반응은 이렇다. 뭣하러 그런 필요없는 것을 하냐고,,,마치 정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같다. 이렇게 마인드 자체가 사는 방식이 틀린 사람들끼리 한 직장에서 마주하고 일한다는게 고통이고 고역이다. 누군가 그러겠지. 직장에서 일만 하면 되지 . 웬 그런 사소한 감정이냐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일하는 중간중간에 그런게 파고 든다. 직장에서 진짜 일만 하면 되는데 , 왜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야하고, 주기적으로 누군가에게 밥을 사지 않으면 수전노 취급을 받아야하고, 퇴근후 자기계발한다고 하면 못들은 척하고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들처럼 흥청망청 술마시고 술집에 모여 다른 사람 흉이나 보고, 인사불성 된 스토리를 마치 무용담처럼 담날 지들끼리 하는것들이 너무도 볼썽 사납다.


오늘의 나의 결심 : 낼 그자가 어떤 말을 해도 그냥 묻는말에 대답하고 절대 휘말려 들어가지 말것, 내 개인적인 기호를 알려주지 말것, 어떤 상황에 대해 내 개인적인 의견을 절대 말하지 말것,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내 생각을 저들이 알아낼수 없도록 할것,

어쨌거나 오늘도 맥주 한캔을 들이킬수 밖에 없다.
술이라는게 이렇게 누군가를 증오하는 고통을 느끼면 술이 들어가야 한다. 알콜로 분노가 가득찬 마음을 다스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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