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과거는 여러 얼굴을 가진다. 애틋하고 소중한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칩들이 산재해 박혀있을지도 모른다. 균형추는 좌우로 미끄러지곤 한다. 지나온 모든 순간을 가장 적절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포옹한 후 떠나보내거나 결연히 마주 손잡는 선택지 앞에 선다면, 하고 소설은 묻는다. 박상영의 『1차원이 되고싶어 (문학동네),2021』 는 2019년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으로 젊은 작가상 대상을, 2021년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라는 제목은 간절함이 묻어난다. 화자는 외치고 있을까, 읊조리고 있을까. 무엇이 되었건 진심이 전해지고 덧붙히자면 자주 보던 “~하는 방법” 투의 제목이 아닌것도 마음에 든다. 의미를 생각하니 “단순하게 살자, 쫌!”, “나 좀 냅둬!”등 이미지가 이어지는데 그들이 사는 차원과 도달하고 싶은 차원을 탐색하는 여정에 지금 오른다.

소설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 “과거로부터 온 편지”와 그 앞에 직면하는 주인공을 그린다. 과거와 현재는 교차하는 두 개의 축으로 독자는 시공간을 넘나들게 된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때, 특목고 입시학원을 다니던 중학교 2학년 소년은 더 나은 삶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라는 가언 명령과 환영받지 못할 사적인 감정 사이에서 아슬하게 견디고 있다. 자신 안에 자라는 애정은 감정에서 감각으로 욕구를 넓혀간다. “당시 나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나를 속박하는 굴레에 불과했으며, 내가 가진 모든 욕망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했다. 지금의 이 삶을 벗어나고 싶다.”(p.41) 라는 문제 해소책으로도 사용된다. 가족은 마음을 열고 합심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조건들이 일생일대 중요한 시기인 십대 인물들을 촘촘히 애워싸고 있다. “막 서른이 된 아빠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방종하게 살아왔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며 철들······기는커녕 또다른 의존의 대상을 찾게 되었다. 바로, 엄마였다.”(p.177)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봐도 그곳에서 또다른 어른아이들을 만날 뿐이다. 또한 과잉인줄 알아채지 못하는 편중된 가치를 ‘기준’ 삼고 강요하기에 폭력은 어느 관계에나 내제한다. “아빠는 없고, 엄마가 다단계 해서 먹고살고, 그것도 모자라 전교에서 제일 유명한 호모 새끼였어. 우리 학교 애들은 다 알아.”(p.202)

소설은 현실을 애둘러 표현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나와 윤도, 태리의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돌아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하기에는 통증의 잔재가 많고 상처 받은 만큼, 때론 그 이상으로 상처주기도 한다. 죄의식은 그 시간을 벗어나 현재의 나에게 상처를 입힌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딛는 걸음은 회복의 첫 걸음이라 생각된다. 작가는 “그 시절을 뛰어넘기 위해, 현재형의 공포를 과거의 한 시절로 남겨놓기 위해,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p.408)고 쓴다. 음악, 영화, 만화, 미니홈피 등 시대적 장치들을 보는 즐거움과 곤혹스런 와중에도 위트있는 대사들은 가독성을 높인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쉽게 감정이입하고 작품과 독자의 간격을 좁혀준다.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 인터뷰에서 박상영은 작가로서의 퀴어 예술가, 이런 설정들이 모이는 지점이라서, 요즘은 그 이후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두번째 소설집에는 백 퍼센트 퀴어 소설만 들어갈 거 같고 그 이후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그 이후”라 언급한 작품이 “1차원이 되고 싶어”인 듯하다. 다양한 서사나 미스테리, 추리물에 대한 호감도 언급했는데 그런 요소도 조화롭게 녹아있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처럼 간추릴 수는 없는 소설로 살아냈으므로 다행이다에 가깝다. 섬세하게 들여다본 솔직한 성장기가 읽는 이들의 마음에 닿고 위로하는 점은 소설의 강점인 듯하다. 감정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사랑이나 우정의 정의로 모아두고 싶을만큼 아름답기도 했다. 그럼에도 작품에 보내진 수많은 찬사 곁에 모호하네, 라고 덧붙힌다. 이또한 독자의 솔직한 감상이므로. 누군가는 차원이동 진입장벽을 어떤 강도로건 느낄 수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자동문같은 환대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마치 미라처럼, 혹은 소금 기둥처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말라붙어가는 기분이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에 맞게 커가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자신의 속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p.200)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조리 쏟아내 죄책감을 떨쳐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언제나 침묵해버리는 사람이니까.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상처를 썩혀버리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그것이 내 삶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유일한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었다.(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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