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 쓴 수기 창비세계문학 10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근식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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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도스또옙스끼의 『지하에서 쓴 수기,1864(김근식 옮김/창비/2012)』는 민감한 영혼의 내적 독백이자 항변을 기록한 소설로 이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발표될 작품들의 서곡에 견줄 수 있다.(“지하로부터의 수기” 이후 그의모든 작품은 합리주의에 대한 공박에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p.197 로쟈의 러시아문학강의) 내면의 분열과 자유의지, 자기부인, 광기어린 추적, 조건없는 사랑과 용서, 구원의 가능성 등 여러 주제가 호흡을 고른다. 책을 쓸 당시 도스또옙스끼의 첫 번째 아내는 결핵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때문에 “고통과 열정은 모순적이면서도 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는 현실과 창작이라는 이중 영역에서 고통의 한 가운데를 통과해 “서양문학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광인들의 형상들 중에서도 가장 관념적이면서 의미심장한 주인공”(이병훈, 광기 전복된 영혼의 세계 2016)인 지하생활자를 탄생시킨다. 이후 지하생활자는 극단을 달리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물들의 전조가 된다. 이 짧은 소설이 “도스또옙스끼적인 것의 결집체”라는 나보코프의 평가는 작가의 후기작으로 갈수록 재현, 변형, 확대 발전하며 풍성해지는 흔적을 만날 때마다 기억나게 될 것이다.

소설은 총 2부로 1부 <지하>에서는 화자인 지하생활자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기 견해를 밝힌다. 타자에게 보여지는 부분과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면을 교차하면서 옷감을 짜듯 자기 정체성을 풀어낸다. 선언적인 단문과 부연을 덧잇는 만연체를 왕래할 때 어떤 지점에서는 일정분량의 재독을 반복하게 된다. 자신은 “못된 인물”이라고 첫 문장을 떼었지만 이어 “나는 못된 인물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고 힘을 뺀다. “사납거나 착해지거나, 비열하거나 고상해지지도 못했고, 영웅이나 벌레가 되지도 못했다.”(p.12)며 범위를 넓힌다. 화자는 신경이 둔한 사람이 부딪히는 “불가능의 벽”, 다른 말로 “돌벽”이면서 “자연법칙, 자연법칙의 결론, 수학”(p.23)을 철옹성이라고 부른다. “돌벽이란, 2×2=4다! 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평화의 담론처럼 들릴 것”(p.24)이라고 재차 부연한다. 자연법칙은 “수정궁”이자 “이상향”(p.45)에 닿고 19세기에 과학이 해낸 인간해부는 “욕구와 변덕의 공식들”(p.47)을 차단하는 가림막이라 진단한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욕구가 공식에 의해 조정되는 거라면 누가 그런 욕구를 충족하려 하겠는가?”, “자신의 소망과 의지와 욕구가 없는 인간이 피아노 건반이지, 진정 인간이란 말인가?”(p.48) 결국 “나의 개인적 견해지만, 오직 행복 하나만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좋든 나쁘든 간혹 무언가를 박살 낸다는 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통의 편에 서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의 편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편을 드는 것은······나의 변덕스러움이다. 필요하다면 나는 마음 놓고 변덕을 부리고 싶다.”(p.60) 의식은 자신에게 채찍질할 때가 가끔 있고 그것이 삶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무념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낫다는 지하생활자는 2×2=4의 세계를 "죽음의 시작“(p.58)이라 명명하며 그 자리를 2×2=5라는 ”그에 못지않게 멋진 것“(p.59)으로 치환코자 한다. 화자는 자유의지 논쟁 끝에 1부 마지막을 수기의 효용에 할애한다.

소설의 2부는 <젖은 눈에 얽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년 전 겪었던 두 사건을 회상한다. 동창들과의 모욕적이었던 일화와 우연히 만나게 된 리자 이야기다. 2부의 제사 네끄라소프의 장시 인용은 리자 일화를 요약한 것과 흡사하다. “이 얼굴에는 무언가 아량이 넓고 선해 보이는 것이 있으면서도, 기이하리만치 진지해 보이는 것이 있었다. 분명히 그런 점 때문에 이 아가씨는 손님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p.143) 리자는 2년 후 나올 “죄와 벌”의 소냐를 예표하는 것 같다. 센나야 광장과 병으로 스러져 가는 여인들 삶을 들어 지하생활자는 리자를 각성케 한다. 후에 리자는 지하생활자에게 수모를 당했음을 알아채지만 그를 포옹하고 눈물을 흘림으로 화자도 참회의 울음과 용서를 빌고 싶다는 변화를 감지케된다. 종잡을 수 없이 이어지던 자문자답은 종말에 이르러 결국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바깥으로 나온 셈이다.”(p.212)라고 고함으로 목소리를 쫓던 독자에게 이 일이 인간 보편의 문제임을 알린다. 나아가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스스로에게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지상인지 지하인지, 태양 아래인지 비밀의 숲속인지 명칭은 여러 가지로 붙일 수 있겠다. 독자는 내가 이상해 보여? 당신도 만만치 않아, 결코 덜하지 않지, 라는 지하생활자의 음성을 듣게 될 텐데 이미 ‘나’에서 1인칭 복수 ‘우리’로 호칭은 달라져있다.

캐릭터의 성격특징이 과해 보였지만 후반에 이르러 그의 논리를 온전히 수용하고 동의하게 하는 역량은 역시 작가의 천재성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구조적으로 2부 구성이 주장과 근거 또는 변론과 사례 제시처럼 안정감 있다는 점도 몰입을 높인다. 마지막 두 페이지는 압권! 도스또옙스끼는 겨울이 시작될 때 계절병처럼 꺼내는 작가다. 올해도 죄와 벌 한 번 읽어야 할 텐데(“형제들”은 엄두불가) 하는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떠오르면 겨울이 왔다는 신호다. “지하에서 쓴 수기”는 첫 번째 독서였다. 만개한 개나리와 벚꽃 틈바구니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는 듯한 수기를 읽는 경험은 절구 공이(그렇다, 그 절구 공이가 맞다) 두 개가 부딪히는 듯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읽는 그 때가 바로 최적기”라는 새로운 좌우명을 쓰며 (그럴 일이 거의 없겠으나 상상으로라도)손가락 어는 추운 겨울 젖은 눈에 얽힌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리라 기약한다. 읽어보시라, 왜 이제야 읽었나 하는 묘한 쾌감이 있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느냐 하면, 여러분이 감히 천착해볼 엄두도 못 냈던 것을, 또는 반쯤 천착해보았던 것을, 그리고 비겁함을 분별력이라 하며 여러분이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위해왔던 것을, 끝까지 파헤쳐서 그 속을 뒤집어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바깥으로 나온 셈이다. 자,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사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어디에 살아 있는지, 그것이 무엇이며 또 뭐라고 불리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책 없이 우리만 따로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즉시 혼동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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