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1
사와키 고타로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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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읽는 것은 나의 취미생활 중의 하나이다. 현실로 말하자면 내가 가장 멀리 여행을 떠난 곳은 지리산이다. 혹은 설악산이거나. 그에 대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함이었는지 여행기에 대한 나의 기갈은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읽은 여행기의 수만큼이나 이젠 여행기를 그만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여러번이었다. 나의 경험이 아닌 그들의 경험, 그리고 비슷비슷한 그들의 견문과 느낌은 여행기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다시 여행기를 펼쳐든다. 재미있다는 여행기가 있으면 꼭 읽어보고, 그런 여행기가 없으면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라도 뒤적거린다. 나는 여행기 사이를 여행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진짜 여행을 떠나려면 이 책의 저자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알량한 자신의 돈과 친구들이 모금해 준 얼마 안 되는 돈을 들고 떠날 수 있는 용기, 궤도에 오르고 있는 직업을 버릴 수 있는 배짱, 한참 경력을 쌓아야 할 27살의 사회초년생으로 사회를 등져버리는 방만함. 덧붙여 다른 여행기를 읽으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거지만 유혹에 과감히 몸을 던져버릴 수 있는 무대책이야말로 훌륭한 여행가에게 필요한 필수조건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홍콩에 도착한 저자가 가장 먼저 빠져드는 것은 불야성의 밤거리, 그리고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도박같은 삶을 꿈꾸어왔으나 도박 자체에는 흥미가 없어 간단한 카드도 안했다는 저자가, '대소'라는 중국도박에 여행경비를 걸어가는 과정은 내 솜털마저 곤두서게 할 정도로 흥분되는 광경이었다. 여행가가 자신의 책에 이국의 거리나 야외 레스토랑이 아닌 도박장에 빠졌던 '타짜 스토리'부터 써놓다니, 이 책의 원제대로 '심야특급'이 따로 없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마디 하자면, 저자는 악덕 현지인이나 선하고 순수한 현지인을 만난 에피소드나 이국의 풍물에 관한 서술에도 발군이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여행기와 구분되는 가장 뛰어난 점은 가이드 북 하나 들지 않은 무대책의 젊은이가 홍콩에서는 도박에 빠지고, 인도에는 여관 삐끼노릇을 하며 버스로만 아시아에서 런던으로 갔던 과정의 손에 잡힐 듯한 생생함이다. 뒷골목에서 깡패에게 얻어마신 맥주상표에 써있는 지명이름이 멋있어서 무작정 그곳으로 찾아가다 어두운 벌판을 헤매는 도박같은 여정의 생생함 때문이다.

보통은 몇 달, 몇 년 동안 여행하는 여행가는 대단한 사람으로 비춰지게 마련이고, 여행가 스스로는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젊은 여행가들의 황폐함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불과 25살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 길거리 까페에서 만난 동갑내기 남자가 이미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돌아다니기만 하는 자신에 대해 자책을 한다. 현실로 돌아가기 싫어서 여행을 계속하는 사람도 많고, 여행이 거듭될수록 감동과 신선함은 엷어지고 오로지 다음 목표점을 향해서만 나아가는 여행가들의 모습은 여느 중독자들의 퇴폐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이 책에는 그의 여행의 1부밖에 나와 있지 않으며, 책을 쓴 후에도 그의 여행은 계속됐다. 여행을 하면서 르포 작가로도 성공했으니 그의 우려대로 영 쓸모없는 사람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유머감각에도 불구하고 홍콩에서 만난 여자는 그에게 고한孤寒, 즉 외롭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여행자의 별을 타고난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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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1-0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어본 적이 있는 책이에요. 리뷰를 읽고 나니 정말 사고 싶은 책이 되는군요.

hoyahan1 2005-11-0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문으로만 듣다가 읽어봤는데 특히 1권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예요. 아마 저자가 가장 사랑한 곳이어서 독자에게도 그 흥분이 전달됐겠죠. 그곳은 홍콩이랍니다^^
 
서준식의 생각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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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나 정의, 양심... 뭐라고 말해도 좋다. 그런 가치들을 위해 침식을 잊고, 그런 가치들을 외면하는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성자열전 외에서는 본 적이 없다. 오로지 서준식, 이 사람을 빼놓고는.

'옥중서한'이 국가권력의 억압에 대항해 옥중에서 투쟁한 18년간의 기록이라면 '생각'은 옥에서 나와 세상을 향해 인권의 실현을 외친 14년 간의 기록이다. 한 사람의 모든 인생을 담보로 한 기나긴 여정. 서준식은 '옥중서한'에서 '생각'까지 20대의 청년에서 초로의 중년이 되었지만, 국가권력의 억압은 여전하고 약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세상도 여전히 견고하다.

"'인권'에 대해 치열한 관심을 간직하는 사람은 번번히 완강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수없이 깨지면서 분노 속에서 인권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터득할 것입니다. '인권'을 통해 이 세계의 진실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라는 말을 가슴이 찢어지게 사랑하면서도 슬픔 없이는 그 말을 올리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이런게 바로 현장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넥타이와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것과 쑤시는 몸과 무시된 자존심을 소유하면서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잴 수 없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서준식은 철저히 후자에 속하며, 그래서 그가 말하는 인권이나 평등이란 개념은 비린내 나는 현장의 내음과 함께 읽는 사람의 마음에 박혀버린다.

그는 '인권'이란 말이 휴지조각이 되는 현장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절대 체념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체념이나 포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18년 간 비전향 장기수로 옥에서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포기이며,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라는 말만큼 서준식에게 어울리는 문구는 달리 없다. '생각'은 그 과정에서 '인권하루소식'같은 인기 없는 지면에 소개된 깨알같은 의지들의 모음이다. 그 속에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서부터 장기수 , 재소자 고문, 인권영화제, 국가 보안법, 어린이 인권, 간첩, 여성문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옥중서한' 의 어딘가에 결혼하고 자식을 두는 자신을 그려봤다던 편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에서 서준식은 정말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보통 어떤 인물을 형상화할 때 '그는 가정에서는 두 아이의 따듯하고 자상한 아버지였다'라는 등등의 표현을 쓰는데, 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야말로 따듯하고, 따듯하고도, 따듯한 아버지라는 걸 알 수 있다. 인간이 얼마나 따듯해야 다른 사람에게 온기를 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따듯함은 눈물이 날 정도다. 하지만 역시 딸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서준식 특유의 모습은 어디 가지 않는다. 딸들에 대한 그의 바램은 더없이 소박하지만, 또 하나의 순수하고 강한 인간을 길러내고자 하는 의지만은 더없이 크다. 그는 딸들이 안락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으며, 슬픔을 이해하는 인간이 되고, 옳은 가치들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강한 '언니'들이 되기를 바란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린이 인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아마 그가 두 딸의 아버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린이까지 포함한 모든 인간의 인권이 향하는 마지막 꿈은 '평등'이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지배 의지나 어두운 욕망을 '인권' '도덕' '사랑' '예술' 따위의 말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이런 눈속임을 가려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평등'이다. 인권의 기본 축은 자유와 평등이며 인권운동은 항상 '평등'의 땅을 굳건히 딛고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는 변하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서준식에게 사랑이란 인생 자체로 보여주는 이타심이다. 정의에 대한 요구란 세상을 향한 애정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이 부끄럽다.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그것뿐이 아니니 한 마디만 더하자. 나는 서준식같은 인간과 동시대에 산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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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0-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벅차올라서 쓰신 글인 걸 느낄 수 있습니다.

hoyahan1 2005-10-1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준식 선생의 글을 읽으면 누구나 진심이 되지 않을까요. 그게 그의 힘이기도 하지요^^
 
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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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주인공 남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촌이자 같은 상류층 여성이었던 그녀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헤어진 후 그들은 나이를 먹는다. 노년이 되어 아내와도 사별한 남자는 아들의 안내로 그 여인을 만나러 가지만, 열려져 있는 여인의 방 창문만을 바라보고 뒤돌아선다. 어쩌면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몰랐는데...... 그분에게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라고 묻는 아들에게 노인은 말한다. '그저 내가 보수적인 남자라고만 전해다오'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바람도 품위 있게 피울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랑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이 사라진 후에도 절제하고 돌아서야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보수계급'의 쓸쓸함과 슬픔을 봤다. '보수'라는 말이 얕은 구호나 비방, 자기자랑이 아닌 '생활양식'으로 쓰일 때는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게 자부심과 동시에 고독한 짐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페터는 그런 고전적인 세계에 속하는 남자다. 부유한 중간계급에서 세심하게 길러진 신사. 그에겐 그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하지만 페터의 아내인 일롱카가 요조숙녀의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일롱카는 점잖은 남편의 품위있는 아내가 아니라 남편의 영원한 애인이고자 했다. 일롱카는 머리카락을 흩트리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배신당한 아픔을 드러냈고, 그를 잃지 않기 위해 전부를 건 게임을 했다. 그녀는 전부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 라고 혼잣말을 할 법한 여인이다. 그래서 일롱카의 말로 시작되는 1부의 제목은 '열정적 사랑'이다

열정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태양의 열정을 사람의 눈은 이기지 못한다. 눈은 다만 태양을 외면함으로써 살 수 있을 뿐이다. 왜 페터는 열정적인 여인들만 사랑한 것일까? 견디지도 못할 거면서...... 페터의 말로 시작되는 2부는 '용기 없는 사랑'이다. 그는 열정적인 여인들을 사랑하면서 그 열정을 이기지 못했지만, 그 여인들이 자신을 사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점잖은 만큼 미숙하다. 태앙은 스스로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빛날 뿐이나 그는 태양이 자기를 따사롭게 해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위안으로 맺어져 평생을 가고자 했던 결혼은 그렇게 서로의 착각 속에서 변해갔다. 제3의 여인 유디트는 이미 존재하는 변화에 가속도를 붙여준 것에 불과했다. 일롱카는 유디트를 가리켜 우리에 갖힌 퓨마같다고 했고, 페터는 '불만과 불신을 모르는'  얼굴을 가졌다고 평했다. 하지만 유디트는 아무도 그녀의 본모습을 모를 정도로 신중하고도 예측 불가능한 여인이었다. 가난하고 순수한 소녀, 우직한 하녀, 영리하고 자부심 높은 여인의 모습으로 일롱카와 페터에게 묘사됐으나 3부에서 젊은 애인의 품안에서 웃어재끼는 거침없고 경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유디트.

아름답고 열정적이었던 일롱카, 진정한 신사의 모습을 구현한 페터를 모두  굴복시킨 유디트는 품위와 절제가 존중받는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파괴적인 '모던 걸'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뒤로 하고 로마에서 젊은 드러머와 살고 있는 유디트의 입에서 지나가듯 언급된 일롱카와 페터의 운명은 '결혼의 변화'와 함께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이 소설의 몇몇은 중얼거렸을 것이나 그 중얼거림마저도 뒤로 남겨져 스러져버렸을 것이다. 왠지 그 중얼거림이 스러진 쪽에서 유디트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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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5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oyahan1 2005-10-0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자마자 반응을 보여주셔서 너무 놀랐어요. 요즘은 소설에 좀 물렸었는데 '결혼의 변화'는 오랜만에 강렬한 자극을 준 책이었죠. 왜 책을 읽어야해? 라는 물음에 이 책을 읽어보면 알아, 라고 대답해줄 수 있는 수작이에요.

2005-10-05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05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워렌부인의 직업 현대영미드라마학회 영한대역 18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정경숙 옮김 / 동인(이성모)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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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집안에는 네 명의 딸들이 있었다. 둘은 가난하고 선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었고, 둘은 미모를 이용해 영악하게 살아서 성공했다. 딸 둘은 노동자이자 노동자의 아내였고, 다른 딸 둘은 고급창녀였다. 빅토리아조의 가난한 여성에게 카드는 두 개. 노동자 아니면 창녀. 원래 인생에는 선택권이 많지 않은 법이니까. 더구나 19세기 여성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대학에 여성을 위한 문이 열리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전문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성공한 워렌 부인의 딸 비비 워렌은 그런 신여성 중의 한 명이다. 그녀는 대학교육으로 지식과 당당함을 얻었고, 천성적으로 자존심이 강하며 야망이 크다.

비비의 어머니 워렌 부인은 웃음과 애교를 팔아 돈을 벌고 딸을 공부시켰지만 자신에 대한 털끝만큼의 자책이나 부끄러움도 없다. 그녀는 밑바닥에서 노동만 하다 병으로 죽은 두 자매를 비판하며 그렇게 비참하고 가난한 삶을 산 것은 요령 없고 부끄러운 짓이라고 말한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성공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베푸는 은총이다. 세상은 남자의 비위를 맞추고 몸을 팔면서 돈을 버는 것을 천대하지만 매춘부는 보통 여성이 남편 한 사람에게 한 것을 여러 남자에게 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자립하지 못한 여성의 결혼은 사랑이란 눈속임으로 가려진 또 하나의 매춘일 뿐이라는 버나드 쇼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듯 영리하고 영악한 워렌 부인이지만 차마 딸에게만은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하나뿐인 혈육에게까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영악한 한편으로 눈물 많은 워렌 부인에게는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워렌 부인의 딸 비비에게는 그런 망설임조차 없다. 그녀는 어머니의 당당함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충분한 돈을 벌었는데도 그런 직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어머니를 경멸한다. 비비는 지적인 만큼이나 차가워서 한심한 어머니와 철없는 애인, 추근대는 갑부, 신사적인 예술가를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거부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결혼도 가족도 필요 없고, 열중할 수 있는 일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 비비는 너무 그럴듯하게 도식적이고, 편하게 창조된 소설 속의 인물이다. 자로 그린 듯한 이집트 미술품같다. 기성의 모든 유혹을 거부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비비. '어떠어떠한 인물'이 아닌 '어떠어떠해야 하는' 당위적이고 계몽적인 인물로 설정된 비비. 훌륭하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인물은 문학 속에서는 별 감동과 설득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초기 작품에서 약간은 서툰 인물을 창조해낸 쇼지만 다행히 그의 인정사정없는 유머만은 서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비비보다 약하고 이중적인 워렌 부인과 나머지 인물들에 의해 표현된다. 사실 이집트 미술을 볼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과장되게 표현된 주인공 주변의 작지만 풍부한 엑스트라들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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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홍은택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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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은 자전거로 미국을 여행하면서 한겨례신문에 여행기를 쓰고 있다. 이 책도 순전히 신문에서 본 그의 글이 좋아 택한 것이다. 여행기 곳곳에서 드러나다시피 홍은택은 미국에 대해서 잘 알며, 자신이 잘 아는 곳에 대한 애정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요즘은 미국에 대한 감정이 점점 양극화되지만 그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잘 알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의견은 가질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주류층과 정부에게 외면받는 이들, 열심히 일해도 겨우 겨우 먹고 사는 이들 역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일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미국은 국내건 국외건 약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같은 약자의 입장에서 그 '국내인'들에게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달까. 과부가 홀아비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세계화의 타격을 가장 먼저 받은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이며, 세계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찾기는 미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도외시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용감한' 관점이다. 홍은택은 그런 노동자와 농민들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오늘날의 미국에 대한 소개와 비판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반미파나 친미파가 아닌, '지미파'의 책이다. 그런 용어가 있다면 말이다.

블루 아메리카는 원래 민주당 후보가 이긴 지역의 색깔을 표현한 이름이었다. 서민층과 빈민층, 농촌과 공장지대의 고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의 블루 아메리카였던 곳이 공화당 지지인 레드 아메리카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기득권자도 아니면서 기득권을 지지하는 이율배반 현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일단 성공한 사람은 영웅으로 떠받들어주는 성공신화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의 성공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자유주의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들인 '거듭난 기독교인'들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율배반을 체화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실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홍은택이 텍사스를 여행하던 중 엔론사 앞에서 만난 데이비슨씨는 낮에는 장애인의 위한 봉사쎈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보수주의 단체의 싱크탱크에서 전화 여론조사원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부정기업 엔론사의 흥망성쇠와 내막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던 그였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동조하지 않는 단체에서도 일해야 했다. 아마 데이비슨씨는 기업문화를 비판하면서 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한 자기모순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부정기업의 스캔들이 심심찮게 터지는 미국이지만 기업과 상류층의 부는 여전히 적극적으로 정당화된다. 부는 개인의 노력의 결과이고 신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이 말했다시피 부를 쌓지 못한 사람은 생활고에 덧붙여 자기비판까지 해야 하는 분위기다. 그들이 특히 좋아하는 레퍼토리는 무에서 시작해서 재능과 실력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인데, 빌 게이츠나 월마트의 창업자 쌤 월튼의 성공신화가 대표적이다.

신화는 과장이 따라야 한다지만 빌 게이츠가 변호사 아버지를 둔 상류층 출신이라거나 쌤 월튼의 부자 장인이 그의 사업을 도왔다는 과정은 싹 빠지고 대학 중퇴자와 가난한 사람이 성공했다는 결과만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그런 신화가 사람들에게 성공의 동기를 유발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성공과 실패의 이유도 모두 개인에게 환원해버리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오프라 쇼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고 자유로운 여성들이라고 말해 관객의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감도 이쯤되면 자아도취에 가깝다. 오프라 윈프리는 물론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공에 비례하는 인센티브를 계속 주는 미국이 좋은 나라였겠지만 그에 환호한 방청객들은 왜 그랬을까?

인종차별, 빈부격차, 무자비한 외교정책, 빈약한 사회보장 제도 등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좋다, 라는 인식을 자국의 국민들에게 심어주는데 미국만큼 성공한 나라도 없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자기 조국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불평분자라고 낙인찍힌다. 그런 이유들로 해서 과거 블루 아메리카였던 곳은 21세기인 지금 점점 레드 아메리카로 변해가고 있다. 가난이나 차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불행하지만, 가난하고 차별받음에도 주류를 지지하는 보수층이 되고, 강대국인 조국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은 거의 비극적으로 보인다. 강하고 부유해 보이는, 그럴듯한 가면을 씌워줬다고 가난과 차별마저 잊은, 혹은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 오늘날의 미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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