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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홍은택 지음 / 창비 / 2005년 2월
평점 :
홍은택은 자전거로 미국을 여행하면서 한겨례신문에 여행기를 쓰고 있다. 이 책도 순전히 신문에서 본 그의 글이 좋아 택한 것이다. 여행기 곳곳에서 드러나다시피 홍은택은 미국에 대해서 잘 알며, 자신이 잘 아는 곳에 대한 애정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요즘은 미국에 대한 감정이 점점 양극화되지만 그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잘 알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의견은 가질 수 없는 것 같다. 또한 주류층과 정부에게 외면받는 이들, 열심히 일해도 겨우 겨우 먹고 사는 이들 역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일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미국은 국내건 국외건 약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성장한 나라이기 때문에 같은 약자의 입장에서 그 '국내인'들에게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달까. 과부가 홀아비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세계화의 타격을 가장 먼저 받은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이며, 세계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찾기는 미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도외시하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용감한' 관점이다. 홍은택은 그런 노동자와 농민들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오늘날의 미국에 대한 소개와 비판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반미파나 친미파가 아닌, '지미파'의 책이다. 그런 용어가 있다면 말이다.
블루 아메리카는 원래 민주당 후보가 이긴 지역의 색깔을 표현한 이름이었다. 서민층과 빈민층, 농촌과 공장지대의 고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의 블루 아메리카였던 곳이 공화당 지지인 레드 아메리카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기득권자도 아니면서 기득권을 지지하는 이율배반 현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일단 성공한 사람은 영웅으로 떠받들어주는 성공신화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의 성공은 개인이 알아서 하는 자유주의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들인 '거듭난 기독교인'들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율배반을 체화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실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홍은택이 텍사스를 여행하던 중 엔론사 앞에서 만난 데이비슨씨는 낮에는 장애인의 위한 봉사쎈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보수주의 단체의 싱크탱크에서 전화 여론조사원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부정기업 엔론사의 흥망성쇠와 내막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던 그였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동조하지 않는 단체에서도 일해야 했다. 아마 데이비슨씨는 기업문화를 비판하면서 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한 자기모순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부정기업의 스캔들이 심심찮게 터지는 미국이지만 기업과 상류층의 부는 여전히 적극적으로 정당화된다. 부는 개인의 노력의 결과이고 신의 축복이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이 말했다시피 부를 쌓지 못한 사람은 생활고에 덧붙여 자기비판까지 해야 하는 분위기다. 그들이 특히 좋아하는 레퍼토리는 무에서 시작해서 재능과 실력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인데, 빌 게이츠나 월마트의 창업자 쌤 월튼의 성공신화가 대표적이다.
신화는 과장이 따라야 한다지만 빌 게이츠가 변호사 아버지를 둔 상류층 출신이라거나 쌤 월튼의 부자 장인이 그의 사업을 도왔다는 과정은 싹 빠지고 대학 중퇴자와 가난한 사람이 성공했다는 결과만 집중적으로 부각된다. "그런 신화가 사람들에게 성공의 동기를 유발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성공과 실패의 이유도 모두 개인에게 환원해버리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오프라 쇼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고 자유로운 여성들이라고 말해 관객의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감도 이쯤되면 자아도취에 가깝다. 오프라 윈프리는 물론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공에 비례하는 인센티브를 계속 주는 미국이 좋은 나라였겠지만 그에 환호한 방청객들은 왜 그랬을까?
인종차별, 빈부격차, 무자비한 외교정책, 빈약한 사회보장 제도 등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가장 살기 좋다, 라는 인식을 자국의 국민들에게 심어주는데 미국만큼 성공한 나라도 없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자기 조국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불평분자라고 낙인찍힌다. 그런 이유들로 해서 과거 블루 아메리카였던 곳은 21세기인 지금 점점 레드 아메리카로 변해가고 있다. 가난이나 차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불행하지만, 가난하고 차별받음에도 주류를 지지하는 보수층이 되고, 강대국인 조국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것은 거의 비극적으로 보인다. 강하고 부유해 보이는, 그럴듯한 가면을 씌워줬다고 가난과 차별마저 잊은, 혹은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 오늘날의 미국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