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엊그제까지 잔인한 더위가 계속됐었다. 땀은 온몸에서 흘러나왔고, 겨울 추위는 견뎌도 삼복더위는 못 견디겠다는 말만 되뇌이는 나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더위를 무릅쓰고 몇 권의 책을 빌려왔지만 10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임시 주인에게 버림받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E.M 포스터의 소설과 사회과학 책들이 평등하게 버림받았고, 아시모프만 겨우 살아남았다. 그래, 아시모프라면 이 더위에라도 읽을 수 있다. 결국 다시 도서관에 가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반쯤 속는 기분으로 시킨 이 책으로 말복더위를 넘겼으니 기특함을 넘어 고맙기까지 하다.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시대에 집현전을 배경으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한글 창제를 도왔던 집현전 학사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연쇄살인사건이라니, 생소했다. 역시 조선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편견 때문이었을까? 사화라면 몰라도 연쇄살인은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그것도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사건. 이들은 모두 야심한 밤을 틈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죽어가는데, 그 죽음에는 모두 각각의 살인에 따라 다른 상징성이 있었다. 일반 연쇄살인의 패턴과는 다르게 살인 자체에 상징을 섞는 방법. 역시 이것은 다빈치 코드의 영향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정명은 이것을 '토속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토속화'를 성공시킨 일등공신은 역시 한글이다. 연쇄살인 사건의 배경이며, 사건을 쫓는 젊은 겸사복 채윤에게는 비밀기호로, 세종대왕에게는 개혁을 위한 완성이자 이상으로, 보수파들에게는 시대의 질서를 뒤엎는 원흉으로 인상을 달리하면서 한글은 이 소설의 핵심키 역할을 한다. 비밀과 상징성, 개혁성을 동시에 지닌 한글은 역사추리소설의 주연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을 추리소설에서 보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 시대의 특징은 천재들이 넘쳐난다는 것인데, 흥미보다는 막연한 감탄과 존경심만 가져왔던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자 마치 아는 사람들이 고생을 겪는 걸 보는 것 같은 이상한 실재감이 들었다. 하긴 그것은 실존 인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쇄살인 사건을 쫓는 젊은 겸사복 채윤은 그대로 이미지가 되어 떠오를 정도로 리얼하다. 아마도 스물을 갓 넘긴 나이, 중키의 얌전한 외모와 정직한 표정의 소유자.  처음에 떠오른 이미지는 나중에 소설에서 묘사되는 바와 거의 일치했다. 상관의 바람막이 역할로 사건을 떠맡은 후 하늘같은 벼슬아치들의 꾸중과 방해에 낙담하면서도 끈질기게 사건을 쫓는 채윤은 추리소설을 게임이 아니라 인간이 얽힌 사건, 고통받고 죽은 인간의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신원의 과정으로 만들었다. 아마 냉정하고 재주많은 인간이 해결자로 나왔다면 이 소설은 얼마간의 가치를 잃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연쇄살인까지는 아니었어도 한글을 창제하기까지 음모와 방해가 있었을 거라고 한번도 생각지 못한 것이 이상하다. 기득권을 쥔 보수파와 강대국의 방해로 수많은 개혁가가 죽어나가고 왕들이 폐위되었던 것이 고려 이후의 한반도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그걸 생각하면 책을 읽고 감상을 쓰는 지금도 짜릿하다. 생각하고 소리내는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 28자의 자음과 모음으로 무한정하게 표현되는 문자, 누구나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 한글은 창제 이후에도 오백년 이상의 무시와 방해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이렇듯 그것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을 쓸 수 있게 하고, 그 책에 대한 감상도 끄적일 수 있게 건재함을 자랑한다. 왠지 대견하다, 한글. 그리고 오백년 전의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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