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늑대와 관련된 프로를 본 적이 있었다. 어두운 황야에서 울려퍼지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완전한 야생의 소리,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답고도 섬뜩한, 내 안의 야성마저도 흔들어 깨울 것 같은 소리였다. 어떤 악기도 그런 소리를 내지는 못하리라. 그때부터 늑대는 나에게 일종의 이상형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아름다운 동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늑대를 동경하던 나도 늑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같았다. 위험하고, 사나운 동물. 늑대 사냥꾼들이 그것을 혐오했다면 나는 동경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늑대에 대한 오해의 정도는 같았다. 팔리 모왓이 본 늑대는 그보다 훨씬 순진하고, 정도를 지키며, 가족애가 넘치는 동물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늑대와 팔리 모왓이 묘사한 늑대는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야성의 결정체였던 늑대가 알고보니 사회적인 신사 숙녀들이라는 걸 알게됐어도 실망은 없다. 그들은 여전히 아름다우니까.

팔리 모왓은 풍자가이다. 특히 인간이라는 동물종에 관한 신랄한 풍자에는 관용이 없다. 하지만 풍자가 없었으면 이 책은 읽기가 너무 마음 아팠을지도 모른다. 관료제의 어리석음이야 그렇다고 쳐도, 야생의 동물들, 특히 늑대에 대한 인간들의 잔인함은 그 인간들을 바보로 만들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직접 늑대들과 동거동락하며 지내온 팔리 모왓으로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다. 유머가 없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견디랴.

내가 알기로 모든 동물은 정도를 지키며 살아간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심심풀이로, 혹은 '그냥' 살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늑대는 여기에다 덧붙여 자기가 낳지 않은 새끼들도 기꺼이 기르며, 부부애가 돈독해 평생 한명의 짝하고만 살아간다. 이 책에 나오는 늑대 부부의 생활을 보면 인류가 칭송해 마지 않은 일부일처제의 모든 묘사는 늑대 부부를 모델로 쓴 것만 같다. 덧붙여 그들은 낯선 이방인인 인간에게 관대하기까지 하다. 팔리 모왓이 늑대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늑대 가족의 영역 안으로 잠입했을 때 보여주는 늑대 가족의 반응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이방인에게 '기꺼이'라고 말하는 신사숙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팔리 모왓은 낯선 환경에 던져진 관계로 좀 어리버리한 이방인의 모습이지만.

이런 신사숙녀들이 무례하고 잔인한 인간들의 손에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할 정도이다. 이런 일이 도처에서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새삼스런 나의 분노조차도 진부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인간들의 손에 추가로 죽어갈 것인가. 그 수가 급감한 늑대들은 이제 '사냥대상'이 아니라 '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인디언 보호구역과도 같은 그 알량함이 얼마나 늑대들을, 그리고 다른 야생동물들을 지켜주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들이 인간들을 의식하지 않고 살던 땅은 이제 어디에도 없는데. 팔리 모왓이 관찰하던 늑대 가족의 앞에 던져졌다는, 캐나다 야생생물보호국의 독이 든 미끼를 마치 내가 먹은 것처럼 입 안이 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