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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로
나쓰메 소세키 지음, 최재철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05년 3월
평점 :
전에는 나츠메 소세키가 이렇게 괜찮은 작가인 줄 미처 몰랐다. 왜 일본인들이 그렇게 소세키를 사랑하는지 이해하게 된 것이 이 '산시로' 때문이다. '산시로'는 소년의 성장을 다룬 성장소설, 교양소설이다. 왠만한 독서가라면 빌헬름 마이스터 시리즈부터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까지 물리도록 읽었을 장르다. 그래도 훌륭한 소설답게 '산시로'는 색다른 재미가 있었고, 소세키다운 색채로 그다운 성장소설을 만들어냈다.
박경리가 간파하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널리 소개한 대로 일본인들 중에는 가끔 특이하게 순수한 타입이 있는 것 같다. 무심함과 순수함, 약간의 수동성이 섞인 소년같은 성인. 오가와 산시로도 그런 인물이다. 도쿄로 상경하는 기차안에서 만난 여인은 이런 산시로를 '배짱없다'라고 평하고, 산시로 자신도 이것을 인정한다. 대신 이 '배짱없음'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어서 단순한 소심함으로 표현될 때도 있고 여유로 표현될 때도 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지도 못하지만 왠만한 일로는 울컥하고 흥분하는 일도 없다. 천방지축같은 친구 요지로의 '행태'들도 재밌게 여기고 넘겨버린다. 아마 나같으면 한달 생활비를 빌려가고 입씻은 요지로를 그렇게 너그럽게 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 청소년이나 세상 경험 없는 청년은 자기 안에 완성된 세계를 놓고 산다. 산시로도 그런 청년답게 세계를 세 가지로 편리하게 구분지어 논다. 어머니와 시골마을이 대표하는 1세계, 도서관과 학문적 토론이 존재하는 2세계, 여인의 아름다움과 화사함이 존재하는 3세계. 나는 이 중 어디에 속하고 싶은 것일까, 라고 산시로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청년이라면 이런 세계구분은 하지 않는다. '산시로'는 20세기 초, 메이지 시대 일본 청년의 성장소설이며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철도와 인력거, 전기와 램프, 벽돌 도서관과 초가지붕의 하숙집이 공존하는 시대. 산시로는 그런 시대에서 키모노를 입고 찬송가를 부르는 미네코라는 여성을 사랑하지만 산시로의 머뭇거림은 불타오를 수 있는 둘의 사랑에 어떠한 바람도 불어넣지 못한다. 너무 풋풋해서 그랬을까.
1900년대초의 남녀라면 내 기준으로는 파파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규율과 전통, 보수적인 기운으로 똘똘뭉친 완고한 어른들이 생각난다. 산시로와 미네코도 아마 나이가 좀 더 들었을 때는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무살 무렵의 그들은 오늘의 스무살과 다를 바 없었다. 청년이란 어느 시대에나 같은 모습인가보다. 대신 청년의 아름다움은 그들이 방황하는 동안만 지속된다. 산시로가 세 가지 세계 중 어느 세계에 속할 것인지를 정하고, 미네코의 혼처가 결정나면 그들의 방황은 종지부를 찍고, 더불어 청년이라는 표지도 없어진다. '산시로'는 아름답고 값지지만 성장을 끝내면 없어지는 목덜미의 솜털같은 청년기에 대한 소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