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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돌베개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시각적인 자극에 약한 편이다. 매일 입는 것이니 입는 옷의 색깔에는 신경쓰는 편이나 패션 자체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파리나 뉴욕의 무슨무슨 패션쇼에 나온 옷들을 보고 "예술이군!" 하는 것보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림도 마찬가지여서 회화를 보고 순수한 감동을 느낀 경험은, 안타깝지만 거의 없다. 예컨데 나는 이집트 파라오의 초상을 보고 '진정한 고통을 아는 투명한 권력' 같은 감상을 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화라는 장르에 끈질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갤리러 페이크' 같은 것을 보면 미술의 세계에 동참해서 나도 함께 그 정열을 느끼고픈 바램이 굴뚝같이 치솟지만 막상 회화를 보면 까막눈의 심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전문미술해설서보다 이 같은 아마추어의 냄새를 풍기는 안내서가 훨씬 좋았다. 미술사학인가 하는 것을 전공한 최영미를 아마추어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 책은 긍적적인 의미에서와 부정적인 의미에서 동시에 아마추어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한 시선'을 던지는 것은 화가보다는 오히려 감상자, 글쓴이를 포함한 독자에 가깝다. 화가라면 모든 기를 다 모아서 소재를 찾고 구도를 정하고 그림을 그리겠지만 감상자에게 그림은 우연히 눈을 강타하는 조우이다. 어떤 그림에 꽂혔다는 것, 그것은 감상자의 취향과, 경험과, 삶의 느낌과, 교양이 어우러진 만남이기 때문이다. 최영미는 거기에 충실하게 그림을 봤고, 해설했고, 독자인 나는 그녀의 소개를 받으며 나의 취향과, 경험과, 삶의 느낌과, 교양에 촉수를 뻗어 내 나름의 미술 감상을 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책은 글쓴이의 주관성 때문에 비판을 받기 쉽다. 예를 들어 서경식의 '서양미술순례'같은 것. 하지만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전문적인 감상은 할 능력도 안 되거니와 별 관심도 없다. 어떤 예술품이 어떤 사람의 삶과 파장을 일으켜서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 그 느낌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예술품 못지 않게 흥미롭고, 때로는 감동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서경식이 어떤 화가가 그린 '누이의 초상'을 보고 사상범인 형들로 인해 평지풍파가 된 집에서 어렵게 살아온 누이를 떠올릴 때 평범한 소녀의 초상화는 일본의 소녀와 오버랩되면서 생명을 얻는다.
회화 자체보다 그런 것에 더 감동을 받다니, 역시 난 시각적인 데에 약한 것이 사실인가 보다. 아, 이제 '화가의 우연한 시선'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의 문외한도 매혹될 수 있는 그림 이야기. 언젠가는 그림을 보면서 나의 삶에 오버랩해볼 수 있는 날이 올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