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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워낙 합리적인 것을 상식으로 삼는 시대라 상징이나 은유, 숨겨져 있는 의미같은 것을 너무 좋아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싶상이다. 나부터도 점이나 타로카드를 충고나 장난 이상으로 듣고 매달리는 사람은 정상으로 보질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더 재밌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신세계의 신선함을 주었으니까. '다빈치 코드'라는 몸떨리게 재미있는 이 책은, 첫장면부터 '상징'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첫장면은 고전적이다. 폐관 후 박물관이라는 어둡고 폐쇄된 공간에서 괴한에게 ?기는 남자. 반항을 해보지만 소용없다. 그는 곧 살해당하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좀 특이하다. 소니에르라는 루브르 박물관장이 살해당하면서 남긴 것은 살인자에 대한 단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이가 소원했던 손녀에게 전하지 못했던 메세지였다. 손녀 소피가 가장 좋아했던 그림인 다 빈치의 나체 인체도 자세를 취하고, 자신의 주위에 갖가지 교묘한 메세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죽어가는 피해자가 우선적으로 남기는 것은 살인자에 대한 단서라는 경찰과 사람들의 믿음을 완전히 벗어나면서, '다빈치 코드'는 현실에 항상 있었지만 대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스테리한 세계로 들어간다. 소니에르가 제시한 수수께끼를 풀려면 상식 너머에 있는 상징, 현실 너머에 있는 은유, 세상에 숨겨져 있는 비밀에 눈을 맞춰야 한다.
이 책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유는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완벽한 조합 때문이었을 것이다. 젠틀하고 날렵한 남자 주인공, 아름답고 영민한 여자주인공, 다소 음침한 종교단체의 숨겨진 음모, 이들과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또다른 숨겨진 악역들. 아니, 요즘 유행답게 선악이 모호한 악역들. 굉장히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보면 무척이나 즐겁다. 롤로코스터 광이라면, 롤로코스터를 매일 타도 즐겁지 않을까. 거기다 보너스가 있다.
식스센스 뺨치는 탄탄한 스토리. 그리고 그 스토리는 예수탄생 전후라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는 미스테리가 풍부한 시대와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성당 기사단, 성배의 향방, 교황과 기사들의 대결, 다 빈치의 회화 등등 유럽 역사의 흥미 만점인 소재들이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이 제시한 상징의 세계는 무척 매력적이어서 적어도 나에게는 킬링 타임용 책은 아니었다 .
내가 집에 있어도 건드리지 않았던 이 책을 꺼내 읽은 것은, 가톨릭계인 우리 학교의 교수신부님이 이 책을 엄청 씹었었기 때문이다. 그 며칠 전에는 바티칸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을 금했다는 말도 들었고. 하지만 알고 보니 간접 PR까지 감수하고 구태여 금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마지막에는 오히려 가톨릭을 옹호까지 해주는 온건한 책인데 말이다. 예수의 존재조차 성경 기록의 앞뒤가 안 맞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에는 오히려 예수와 성모마리아, 성경의 존재가치를 반어적으로 강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가톨릭측에서 그렇게 힘빼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것이 다 진짜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바티칸과 가톨릭 역사는 숨겨야 할 게 무척 많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