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스 페르민 지음, 조광희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짧은 소설은 붓으로 점점이 찍은 하나의 산문시다.

글자 하나, 의미 하나, 시 하나가 모여 선남선녀의 사랑이야기로 엮여진 동화이다.

라는 것은 즉, 동화로 받아들일 때에만 이 소설의 빛깔에 젖을 수 있다는 말이다.

동화는 유치하지만 아름다운 것이어서, 동화를 볼 때에는 유치함은 손바닥으로 살짝 가리고 아름다움만 보아야 하니까.

왕자와의 사랑을 위해 긴 꼬리를 인간의 다리로 바꾸거나, 마지막에는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인어의 운명적인 사랑이 유치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도 재미없을지 모른다. 사실 이 소설의 인물들과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이란 좋게 봐줘도 '시적허용'이나 '동화의 알레고리'의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어서 정신차리고 봤다간 짜증만 날 것이기 때문이다.

단, 고전적인 것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약간의 위로를 받지 않을까. 동화같은 이 소설에 차분한 무게감을 한꺼풀 덮어주는 것은 1800년대의 일본 고전문화에 대한 묘사 때문이다. 하이쿠, 쌉쌀한 차의 향기, 비단종이, 시인의 내면세계......

한없이 예민하고, 한없이 나약하며, 한없이 정갈한 일본 고전문화와 동화와의 만남.

내 취향은 사실 두 가지 다 별로지만 그래도 이 책은 좋았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찰나와 같은 시간에 여러가지 빛깔을 보고 향기를 맡아 볼 수 있는, 오감을 민감하게 자극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허무한 것은 그 자극이 책을 덮은 후 금방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볼 때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특별한 존재로 느껴지지만 사라져 버리면 무로 돌아가 버리는 것. 역시 이 책은 눈을 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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