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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자서전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자서전이긴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주구장창 늘어놓은 책은 아니다. 시몬느 보부와르는 일찍이 시대상이 담기지 않은 자서전은 가치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시대상이 담겼어도 가족, 친척 얘기부터 개인사가 줄줄이 나오는 자서전은 대개 지루하고 무의미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서전 자체가 기본적으로 자아도취적인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고, 자아도취란 본인 외에 모든 타인에게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이란 것에 대한 불신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일반 철학자의 삶에서 벗어난 철학자인 에릭 호퍼가 하는 말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본질적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일텐데 철학자가 모두 대학교수라는 건 아이러니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엔지니어나 과학자같이 순수히 전문적인 영역이라면 철학자 말고 차라리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야 하지 않을까. 이 세계에서 철학자가 진짜 '철학자'라면 대학의 철학자, 노동자의 철학자, 기업의 철학자, 농부, 어부의 철학자, 청소년 철학자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에릭 호퍼는 강단 철학자만 입을 열 수 있는 이 세계에서 길 위의 철학자로서 자기 발언을 한 사람이었다. 길 위의 철학자로서 생각했고, 관찰했고, 기록했다. 나그네답게 빈곤하지만 자유로운 사고는 자서전 곳곳에도 스며 있었다.
그래서 에릭 호퍼의 자서전이 갖는 가장 큰 장점도 자아도취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에 대한 얘기는 이해를 도울 정도만 나올 뿐이고, 대부분은 자신이 목격한 사람에 대한 스케치이자, 그 순간 순간에 나온 사색에 대한 기록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깊이 천착한 성향답게 그가 관찰한 사람은 '인간성의 본질이 집약된 존재이며, 상식적인 궤도에서 멀리 벗어나 있고, 이국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가슴과 오성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관찰한 에릭 호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모든 것을 과학적인 문법에 따라 파악하는 실증주의가 판치는 미국 철학계에서 그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철학이 과학의 부스러기나 먹고 뒤쫓아가는 이 시대에 철학이 어떠해야 할 것이란 걸 소박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줬다고나 할까.
그는 또한 조직적인 운동이나 사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힘보다는 자신의 두 다리와 머리로 살아온 사람 특유의 논리랄까. "우리가 자유와 정의, 평등 등을 가졌을 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것들이 사회의 생명을 이루는 속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가 말하는 대중운동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는 대중운동에도 비판적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만이 대중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이 에릭 호퍼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만큼 개인의 책임에도 민감했다.
누구보다 개인주의적이었고 조직이나 대중운동을 거의 경멸하다시피 했지만 60년대의 일탈적인 히피 문화에는 한 순간도 공감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히피문화를 일종의 독으로 생각했고, 마약과 게으름에 맞서 근면과 기술의 가치를 중시했다. 에릭 호퍼에게 기술과 근면적인 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느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년까지 지속돼야 할 것이었다.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학생인 배우는 사회이다."
사실 에릭 호퍼의 철학을 얇은 자서전 하나만으로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하나의 퍼즐로 맞취지지 않는, 하지만 알 가치가 충분한 그의 철학을 파악하기 위해서 대표작들이 하루빨리 번역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