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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지오노 지음,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쉽게 폄하되는 세상이다. 몇년 전에 유행했던 '나 하나쯤이야...'하는 공익 광고처럼 한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도 과소평가되고,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성과도 과소평가된다. 전자는 위험하지만, 후자는 우울하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화의 유무가 책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휴머니즘이나 자연사랑을 담은 책이라면 실화인 만큼 설득력이 많아진다. 완벽한 픽션이라면 동화로 받아들이고 말지 않을까. 나만 그런가? 하긴, 일어난 일이라야 감동받고 분발하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그 사람의 냉소주의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흑-.
이 책의 이야기는 이렇다. 한 남자가 시골 지방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사방은 누런 먼지가 부는 황무지 뿐이었고, 사람들은 거칠고 원시적이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한 양치기를 발견하고 그의 집에서 쉬어가게 된 남자는 양치기에게서 다른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수도자같기도 하고 강인한 농부같기도 한 어떤 힘. 그 지방 주변의 야만적인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면이었고, 그건 아마 남자가 온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자에게 먹을 것을 대접한 양치기는 도토리 자루에서 잘 생기고 흠 없는 도토리만 골라 한데 모아놓는 작업을 더없이 진지하게 했다.
남자가 그런 양치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잘생긴 것은 모아 팔고 나머지는 먹으려고 남겨두는 줄 알았다. 서양에서는 묵같은 도토리요리가 없는 걸로 알고 있어 좀 미심쩍기는 했지만. 그리고 난 처음 알았다. 도토리를 심으면 떡갈나무가 된다는 사실을. 흠, 말해놓고 보니 좀 부끄럽다.
양치기는 그런 식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를 황무지에 심고 있었다. 누런 황무지에 녹색의 점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 그리고 완벽한 고독속에서.
젊은이였던 남자는 곧 그 곳을 떠나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 때는 20세기 초였던 것이다. 남자는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그 시골을 찾았고, 다시 떠났고, 다시 찾아왔고, 또 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 동안 양치기는 본업을 양봉지기로 바꾸었지만 그의 삶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삶'이 뭐였는지 다 알 것이다. 그는 '나무를 심는 사람'이므로.
한 사람이 지팡이로 바다를 쳐 반으로 갈라놓는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그는 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이 수십년동안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드는 것도 기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한 일이다. 젊은이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와 전에는 황무지였던 땅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아무런 기술적인 도구도 지니지 못한 오직 한 사람의 손과 영혼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니,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보고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위대했다고 하는 것인가. 이 책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손바닥보다 약간 클 뿐인 소박한 분량이지만, 자연이 고사 직전에 처한 금세기에는 환경을 다룬 가장 위대한 책 중 하나로 꼽히니 말이다.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은 모르겠다. 그것이 절망의 이유이자 희망의 이유이기도 한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