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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
돈 리 지음, 임주현 옮김 / 문학사상사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질문 자체가 편견을 포함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가장 간단한 말 가운데서도 말이다. 가령,
"어디 사람이에요?" 라고
미국의 백인이 동양인에게 물었다고 하자. 많은 동양인들은 이 질문에 "난 미국인이에요."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나름대로 재치 있는 대답이다. 하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그 말에 움찔할 정도면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감한 질문은 또 있다. 백인이 어떤 한국인에게 묻는다.
"중국인이죠?"
사실 이 말은 질문이 아니라 일종의 이름짓기이며 구획확인이다. 너 동양인이지?라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 대답에 "난 한국인이예요."라고 대답해봤자 듣는 미국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에겐 한국과 중국의 경계는 모호하며 오로지 서양과 동양이 있을 뿐이므로.
이 정도쯤 되면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잘 하고 명문대를 나왔다 하더라도 근원적인 딜레마에 시달리게 된다.
난 미국인인데, 왜 그들은 날 미국인으로 보지 않는가, 하는 것.
그 이민자는 미국인으로 살아왔고 미국인이 아니면 어느나라 사람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한국인, 혹은 중국인, 필리핀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은 보잘 것 없는 흔적으로도 찾기 어려운, 모래 속에 묻힌 반지와도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런데 막상 그가 속한 사회에서는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창래의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미국의 한인들은 더 이상 갓 이민 와서 사회 최하층을 차지하고 있는 '무지렁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 중산층에 속해 있고,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건 백인도 알고 흑인도 안다. 하지만 백인들의 머리 속에 맴도는 것은 아시아에 대해 굳어진 이미지, 혹은 편견, 그러니까 갓 이민 와서 사회 최하층을 차지하고 있던 '무지렁이'들에 대한 이미지 뿐이다. 이제는 고급 수트를 입고 와인잔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어쭈-' 정도의 반응밖에 못 이끌어낼 때의 허탈감은 어떤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까.
그것은 자주 백인과 동양인 커플들이 싸우고 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양인은 백인이 자기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백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불안을 잠재울 만한 제스쳐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싸우고, 헤어지고, 신경증에 시달린다. 때로는 바보같은 음모까지 꾸미거나, 누군가의 음모에 희생될 거라고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다른 것'이란 왜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일까? 사실 '다른 것' 자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으니까. 아주 옛날에는 '인종'이란 말도 그런 정도의 의미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와, 혹은 내 지방 사람과 다르게 생긴 사람. 그래서 눈에 띄는 사람, 정도.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지배자가 되고 다른 쪽들은 노예 혹은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다른 것'은 '못난 것' 혹은 나쁜 것'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방식은 500년 전엔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그 개념은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인간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은 평생 부평초의 딜레마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 그 대답은 '옐로'의 인물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편으로는 신경증이 시달리고 한편으로는 슬며시 달관해가기도 한다. 그들이 그런 문제들을 자기 내부로만 삭힐 뿐 어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진지한' 노력들조차 냉소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해가는 미국, 혹은 세계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최선을 다하라, 그 대신 싸우지 마라, 그러다 모욕을 당하면 겉으로라도 태연히 넘겨라, 그리고 관조하라, 정도일 수밖에 없다. 내 귀엔 '화내도 소용 없어'로 들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