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보가의 사람들 1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정지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데미안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친해지기 전 하교길을 함께 걸으며 카인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다. 그때 데미안은 카인이야말로 선택받은 인간이며, 그가 받은 낙인은 저주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평범한 사람들과 구별해주는 '표시'라고 말해 싱클레어를 혼란에 빠트린다. 물론 데미안은 그 '표시'를 받은 인간이었고, 싱클레어 또한 그런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명의 카인이 여기 있다. 티보 가의 둘째 아들인 자크.

'티보가의 사람들'은 여러모로 '데미안'을 연상시킨다. 두 소년의 등장. 진지하다 못해 열기까지 띄는 그들의 특별한 우정까지도. 하지만 데미안은 요즘 말로 '쿨'한 작품이다. 데미안은 현실의 인간이기보다는 비너스에 가깝다. 하지만 '티보가의 사람들'은, 동시대와 거의 같은 지역을 다루고 있음에도 '데미안'의 물기와 후광까지 모조리 빼버린 현실의 소설이다. '티보가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에서 '데미안'의 추억에 젖게 만들긴 했지만 거기까지란 얘기.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하고, 조금 더 긴장되기도 했다.

자크와 다니엘 두 소년의 우정은 순수하고 강렬하지만 감추어진 균열이 그 배면에 항상 존재한다. 이들 사이의 균열은 가출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도중에도 감지된다. 강력한 가부장적 집안에서 숨막혀하는 반항적이고 고집 센 소년 자크와 자애로운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두고 나온 섬세한 소년인 다니엘은 행동은 같이 하지만 마음은 다른 불안으로 차 있다. 다니엘의 시선은 끊임없이 가족과 안락한 세계로 향해 있지만, 자크의 시선은 과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어떻게 독립된 미래로 나갈 것인가에만 맞춰져 있다. 그리고 자크와 다니엘의 이러한 성격은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된다.

10대 초기에 아프리카로의 가출을 감행했던 자크와 다니엘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춘기를 보낸다. 가정으로 돌아온 다니엘은 다시 어머니의 세계에 안착했으나 아버지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크는 감화원으로 보내진다. 감화원은 자크와 다니엘의 우정도 멀어지게 했을 뿐 아니라 예민하고 고집 센 소년이었던 자크를 백치에 가깝게 세뇌시킨다. 자크의 형인 앙트완느가 자크를 빼내지 않았다면 자크는 아버지가 바라는 우둔하고 성실한 성인이 됐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사회가 인간에게 끼치는 강력한 영향력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며, 사회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때 인간은 어떻게 순수한 독립심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절박한 호기심으로 추구되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후에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구체화된다.

자크의 인생은 어떻게 견고하고 억압적인 구세계에서 탈출해 비젼에 찬 신세계를 구축할 것인가에 몰입돼 있다. 그가 '가출'과 귀환을 반복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자크가 찾아낸 세계는 사회주의 인터네셔널이었고, 그 와중에 전쟁이 터진다. 그리고 자크는 목격한다. 자기의 이기심마저 극복하고 노동자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던 각국의 동지들이 전쟁이 터지자 얼마나 빨리 변절하는가를. 개인의 안락은 쉽게 포기했지만 조국의 권위와 부름 앞에서 약해지던 이율배반.

국가 위기시의 '국민 통합'이라는 기치는 국민 개개인의 공포를 먹고 자라나는 거인의 명령에 다름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전포고 삼일 전까지 국제 노동자의 사회주의 통합을 외치던 사람들도 국가에의 충성을 외치게 되고, 사람들은 기꺼이 적군에게 총을 들이댄다. 두려움은 힘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타인에 대한 잔인함을 낳는 것이다. 자크는 이러한 것을 목격하면서 어떠한 전쟁에도 반대하는 개인으로 남고자 결심한다.

그리고  이때 어릴 때부터 지속됐던 자크와 '티보 가'와의 갈등이 다시 불거진다. 티보 가의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죽었고, 형인 앙트완느는 아버지보다 한층 세련되고 무신론적이지만 보수적인 시민인 건 다름이 없었다. 앙트완느는 참전을 거부하려는 자크에게 사회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고, 국민은 전쟁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위기에 처한 이상 그 위기를 극복하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것은 동시에 국가에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받을 수 있는 처벌 내지 보복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크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지도자들의 야욕을 막지 못한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순종 때문이며, 그에 반대한다면 전쟁이라는 '국가의 위기' 앞에서도 개인으로써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위기 때 국민통합을 외치는 건 애초에 국민이 소외된 '국가의 이익'을 추구했던 지도부의 기만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시감이라고나 할까. 이들의 딜레마와 갈등은 오늘날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정작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그것으로 모든 문명의 악이 말소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전쟁을 끝내는 전쟁'으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은 딜레마 뿐 아니라 자기기만과 착각까지 포함해서였던가.

앙트완느의 설득과 동료들의 변절에도 불구하고 자크는 무모할 정도로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가며, 끝내는 공상적이라고 불릴 만한 작전을 계획한다. 작전명을 짓자면 '사막 위에 한 송이의 꽃을 피워라' 정도 될까. 본인은 '메마른 땅에 물주기'라고 불렀겠지만. 모두가 황당하다고 생각한 일을 자크는 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평화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기도 하다. 모두가 평화를 좋아하지만 평화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바보로 불리는 것처럼.

자크야말로 데미안이 말한 '표시'가 있는 인간이었다. 어떠한 것도 그를 변하게 하거나 꺾지 못했다. 그렇게 사는 게 옳아서라기보다는 그렇게밖에 살 수 밖에 없는 인간. 자크는 '자유'라는 낙인이 찍힌 또 하나의 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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