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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ㅣ 범우문고 195
신석정 지음 / 범우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신석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나 살아온 방법으로 봤을 때 수난의 연속까진 아니었어도 결코 쉬운 삶은 아니었을 것 같다. 신석정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생존'과 동의어에 가까운 때였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그것이 시대의 지표마저 된 듯하다. 자신의 '경쟁력', '상품가치'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셀 코리아'와 같이 사람이든 나라든 비싸게 팔리는 게 능사가 됐다. 심지어 밥이나 술이 고플 때에도 '몸에 기름칠 좀 해야겠어'라고 하니 우리는 갈수록 인간이기를 기꺼이 포기해가는 것일까. 예전에는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고유함을 실현하는 것이 화두였다면 이제는 기계와 구분되는 인간의 가치를 모색할 때가 된 것 같다.
비교할 게 동물이든 기계든 신석정이 인간만의 가치로 꼽는 것은 멋을 추구할 수 있는 정신과 여유이다.
"<멋>이 있는 곳에 생활이 있고, <멋>이 없는 곳엔 생존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 때의 멋은 금력으로 외모와 주변을 꾸밀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당연지사다. 그가 말하는 멋이란 '정신과 여유'가 드러날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 뼘의 정원에서도 멋을 찾아낸다. 애초에 넒은 정원이 그가 추구하는 바도 아니었다. 한 평이라도 상관 없다.
"한 평은 한 평으로서의 스페이스가 있다. ...그 나무에 한 마리의 새가 찾아와 울고 갈 수 있고, 한 마리의 벌나비가 다녀갈 수 있다면 족할 것이다"
멋이 풍류일 수도 있지만 더 높은 경지를 향하는 인간의 욕망이 될 수도 있다. 얼마 전에 TV에서 러시아 발레를 본 적이 있었다. 완벽한 몸을 만들고, 무의미할 수도 있을 동작으로 관객의 감정을 흔들 수 있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거처야 했을까. 발레리나는 하루 연습을 안 하면 자기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선생이 알며, 삼 일을 안 하면 관객이 안다고 한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과 끝없이 흘리는 땀으로 오히려 멋이 증발될 만도 한데 그들은 하루하루 벌어 살아가기에 급급한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발레리나와 같이, 인간은 현재에만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현재에만 만족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인간인 것이다. 그것은 비극의 근원인 동시에 행복의 근원이기도 하다. 통곡하는 돼지란 없기 때문이다.
"빵으로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빵 이전에, 그리고 빵 이후에 인생은 시작되는 것이다. 본능의 행동화로 능히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어찌 우리에게 비극이 있을 것인가?"
모든 인간 안에는 학처럼 비상하고 싶은 꿈이 있지만, 대부분은 뉴햄프셔처럼 계란만 낳는 삶을 사는 것이 사실이다. 그 계란이라도 매일 낳을 수 있다면 다행이고 그마저 안 될 때는 훌륭한 뉴햄프셔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다. 계란을 못 낳는 닭의 신세도 불쌍하지만, 인간이라고 그에 못지는 않은 것이다. 역사상 다수의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때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점점 그에 대한 반감과 부끄러움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시장에서 값이 매겨지는 나 자신에 대한 슬픔보다 아예 값이 매겨지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 더 공포스러운 상황이 됐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 '경쟁력'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세상에선 참으로 해괴한 사태인 것이다.
"한 국가가 한 국가를 짓밟는가 하면, 개인이 개인을 짓밟고 있지 않은가? 국가나 개인을 막론하고 짓밟는다는 것은 비극임에 틀림없다. 아무래도 민주주의의 참다운 모습은 밟히지도 않고 밟지도 않는 데서 제1과 제1장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의 평등이니 기회의 평등이기를 따지기 전에 '밟히지도 않고 밟지도 않는' 것을 민주주의로 정의했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처럼 뻔뻔해질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화두는 다시 '멋'으로 돌아간다. '멋'은 '부'와 같이 다른 사람의 것을 뺏어야만 가질 수 있는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평의 정원에서도 찾을 수 있고, 시나 춤을 갈고 닦거나 스포츠를 하면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끝에는 '인생의 의미'가 있으리라. 그리고 인생의 의미란 무한경쟁화시대인 요즘에나 천년 후에도 유효한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