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일곱개의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황만근은 농부이며, 동네에서 바보로 통한다. 그러나 바보란 사실 어눌함이란 옷을 입은 현자들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구인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기 위해 외계에서 파견된 착한 스파이들이거나.

*천애윤락 : 늘 건넛사람한테 허락을 받고서야 기옥에게 전화를 거는 정환이란 놈은 정말 한심한 놈이다. 사는 방법도 한심하고, 말하는 방법도 한심하다. 그런데 그놈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단다. 나도 기옥처럼 외치고 싶다. "자유? 자유롭게? 잘해주고 싶었던 게 아니고?" 그 놈은 아무래도 넘치는 다정함이 병인 것 같다.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 자고로 계란 인간사회를 보여주는 축도다. 백남준의 말에 따르면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의 배짱 넘치는 모임이라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쾌활냇가에 모인 수십명의 계원들은 한바탕 질탕하게 인생이란 연극을 보여준다.

*책 : 검으로 흥한 자 검으로 망하고,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하듯이, 책으로 흥한 자는 책으로 망할 수도 있다. 단, 책벌레라는 이미지가 주는 동정심 때문인지 주위에서 간단히 망하게 놔두진 않고 끊임없이 사람이 되도록 종용한다. 그럼에도 책벌레는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진정한 괴벽의 승리다.

*천하제일 남가이 : 개인적으로 결말이 별로다. 시작으로 보면 더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처럼.

*욕탕의 여인들 : 남녀의 연애란 것의 철저한 무의미성을, 철저하게 웃기게 풀어낸다. 그렇다면 결말은 로맨스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도 코미디 없는 세상에서는 못 살아, 가 되나?

*꽃의 피, 피의 꽃 : 주인공이 몰두하는 것은 도박이지만, 적어도 그는 욕탕의 여인들의 젊은이보다는 순수하다. 그에게 도박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철저한 즐거움, 길가의 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 감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칫 "꽃의 90퍼센트는 냄새가 없거나 심지어 더럽다"는 것을 잊어버릴 경우 주인공의 친구들처럼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해설 : 보통 책에 딸린 해설은 작가에 대한 찬양 일색이라 유려하게 쓰여진 주례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좀 놀랐다. 객관적인 비판을 곁들인 해설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작가의 말 :  참 아름다운 한 페이지였습니다. 작가님, 더욱 더 위대한 이야기 낚는 어부가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