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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고독 1 - 망나니의 집
알라이 지음, 지쿤 옮김 / 아라크네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티베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사람들은 티베트에 대해 많은 말을 했지만, 그것은 내 무식을 더 가중시켰을 뿐이다. 사람들이 티베트에 대해 쓰고 말하는 것은 옛날 아이들이 처녀 선생님에 대해 '우리 선생님은 너무 이뻐서 화장실도 안가요'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티베트인들은 하나같이 진정한 평화를 지니고 있고 지혜롭다고 묘사돼 나의 불신감을 샀다. 나 또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사람의 후예지만 그 때의 조선이 결코 조용한 아침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눈먼 칭찬은 때로 상대방에 대한 무지와 성의부족의 증거일 수 있다. 그래서 동서양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티베트에 대해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을 때 이 책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티베트의 진면목의 일부를 본 느낌이었다.
이 소설은 한 바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티벳 영주인 메치 투스의 둘째 아들이다.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가 만취한 상태로 어머니와 동침했기 때문에 그가 바보로 태어났다고 여긴다. 그 또한 자기가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며, 별로 유감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누구한테나 우습게 여겨지긴 하지만 그도 가끔 바보가 아닐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똑똑하다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를 무시할 때. 혹은 단순한 마음으로 세상을 판단할 때. 그럴 때 그는 예기치 않은 통찰력을 보여 사람들을 놀래킨다. 그가 커갈수록 사람들은 그가 바보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하지만 그는 그것조차 상관하지 않는다. 그게 뭐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그의 주위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나 투스 후계자인 형, 점을 치고 경을 읽어주는 라마와 활불 등등. 그러나 그가 몇 가지 일을 예견하고 그것이 들어맞자 사람들은 그를 점점 예지력 있는 존재로 본다.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는 했지만 이제 그가 바보라고 단정지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가 하는 예언에는 방문자를 미리 알아맞추는 진짜 예언도 있지만 한족 장군이 주고 간 양귀비꽃의 폐해를 예견하는 현실적인 통찰력도 있다.
사람들은 가끔 그에게 놀라지만, 그는 사람들이 놀라면 다시 그들이 바보라 불렀던 상태로 돌아간다. 무심하고, 느긋하고,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 그에게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망치는 야심과 질투, 소유욕, 집착이 없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를 너무 좋아하지만 그녀가 배신했다고 광분하지 않으며, 집안을 노리는 자객이 주위에 숨어있어도 불안해 하거나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시치미를 떼긴 하지만 주위의 늙은이들보다 그가 더 라마의 자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또한 티베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계와 고립되어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곳에는 그들만의 향과 채취, 그들만의 규칙, 그들만의 부패와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서로 싸우고 속이고 사랑도 하지만 외부의 영향은 희미하고 가는 그림자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들은 너무 고립되어 있어 양귀비가 들어와도 그것의 의미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옆나라 중국은 한창 대일전쟁과 국공내전이 한창이지만 공산당과 국민당도 그들에겐 빨간 한족과 하얀 한족으로 어렴풋이 구분될 뿐이다.
이들은 마술적 고립감에 싸여있다. 하지만 현실과는 도무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꿈속에 있는 듯한 고립감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진실을 엿본 것 같은 이상야릇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과 닮았다. 그 소설이 마지막에 준 전율을 기억하는가. 제목에 '고독'이 선택되어진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티베트 또한 고독 속에서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리고 '바보' 또한 티베트의 스러지는 먼지바람과 운명을 함깨해 간다. 끝까지 느긋하고, 무심하며, 조금은 외롭게. 그는 마지막에 아름다운 이 땅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고. 그는 진심으로 바보같기도 하고, 현자같기도 하고, 수줍은 소년이나 방자한 도련님같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부러웠던 건 번뇌없는 그의 마음이었다. 다소 멍청하고 따듯한 그의 마음이었다. 이것이 바보라면, 나도 바보로 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