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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치인 개
기욤 게로 지음, 김지혜 옮김 / 자인 / 2000년 11월
평점 :
품절
그런 의미로 한 작업은 아니겠지만 홍세화씨의 책들은 결과적으로 프랑스를 이상사회로 여기게 하는 데 일조했다. 그들은 파업을 사회에 대한 정당한 발언권으로 보며, 사회이익보다는 사회정의를 중요시하고, 사람들간의 톨레랑스가 통하는 곳이다 등등. 물론 비율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보다 그런 미덕을 좀 더 갖추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인인 작가의 어조를 빌린다면 그것도 "웃기고 있네!"다.
15살 소년 알렉스가 직업 체험 과목을 위해 신문사에서 실습을 할 때 목격하는 프랑스는 그야말로 평범한 인간세계다. 언론은 정의나 진실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흥미를 끌 만한 기사거리나 지역 지도층 인사들의 비위 맞추기를 더 좋아한다. 언론인다운 의견제시는 회의에서 무시당하기 싶상이다. (작가 자신이 너무 솔직한 글을 쓴다는 이유로 신문사에서 짤린 후 작가가 됐다는데, 그 경험이 반영됐을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의 일방적인 외침으로 그치기 일쑤고 사회운동가의 양심은 무력 앞에 나뭇잎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어디나 그렇듯이 이것은 평범한 시민이나 부유층 보다는 약자에게 명백히 드러나는 부조리들이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하는 알렉스는 노조 활동 경력 때문에 다른 공장에 취직하기에 말못할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아버지를 두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소년은 그와 같은 부조리를 한층 민감하게 느꼈을 것이다. 알렉스가 한 눈에 반한 동양계 소녀는 파티에 금발의 어머니하고만 온다. 백인들의 파티에 베트남인인 아버지는 오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직업 체험 활동을 의논하는 상담원에게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한 이 성깔 있는 소년은 이런 현상에 반항하기로 결심한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재단에서 거액이 횡령되어 운영자의 손으로 들어가는 사건이 제보되었는데도 신문사가 가만 있자 겁없는 소년은 동서남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소년의 친구와 신문사 사진기자인 넥타이 씨,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힘을 합치게 된다. 짜잔. 물론 이것은 무척이나 짧고 웃기는 이야기다. 일종의 풍자극이다. 그러나 직업 체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의 부조리를 모두 맛보며 성장해버려야 했던 소년의 모습은 결코 웃기지 않다. 저자인 기욤 게로는 특히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작가라는데 아마 그들도 이 책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별 두 개를 깎아먹은 것은 작가 때문이라기보다는 출판사의 과대 포장과 광고 때문이다. 괜찮은 소설이었지만 이 작품이 걸작은 아니다. 그런데 천재작가 운운하며 독자를 바보 취급한 게 첫째고, 분량도 작은 책을 양장본으로 둘둘 말아 출판한 것이 둘째 이유다. 출판사 직원들이 나중에 하늘나라에 간다면 분명 평생 나무만 심어야 하는 벌을 받을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바라봐야 했던 소년의 아픔을 다룬 책을 내면서 하기엔 너무 양심없는 짓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