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마가 간다 1~10 세트 - 전10권 (반양장)
시바 료타로 지음, 이길진 옮김 / 창해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시바 료타료는 "조슈가 불쌍하지도 않소?"라는 료마의 말 한 마디를 쓰고 싶어 이 열권의 책을 집필했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사카모토 료마라는 청춘이 일본근대에서 어떻게 꽃피었는지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봉건제 하에서 외국열강을 맞이한 일본의 딜레마와 그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울였던 모든 몸부림까지도.

 

일본역사가 근대에서 잘나갈 수 있었던 것은 봉건제를 단시간내에 벗어나 통일국가를 이룩하고, 서양문물과 제도를 신속히 받아들여 '열강'의 범주에 합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곳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이를 쳐부수자' 혹은 '힘센 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있을 수 있다.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라가 잘 안풀릴때 이런 인물들은 항상 재야에 있고, 현실적인 힘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제도권을 바꿔놓지 못하고 결국 역사는 표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청사진을 갖춘 인물이 행동력을 획득한다면? 레닌을 배출한 러시아, 링컨을 배출한 미국이 그렇듯 위기는 기회가 된다. 일본 근대에는 사카모토 료마가 있었다. 그가 동시대의 일본인과 달랐던 점은 모두가 자신의 지역 중심으로 사고할 때'일본'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국가관을 받아들였고, 통일국가를 이루기 위해 각 지역들을 화합시켰으며, 통일된 국가가 외국과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력을 갖기 위해 주식회사를 창안하고 운영했으며, 바다에 둘러싸인 일본에서 해군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을 '현실화' 시켰다.

 

철저하게 현실적인 인물. 하지만 그것 뿐이라면(그것도 대단하지만) 사카모토 료마에게 '꿈'이나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레닌이나 링컨, 비스마르크와 달랐던 것은 조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해서 이루었으나, 항상 현실정치 너머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통일된 일본을 세웠을 때, 국가 요직을 거절한 료마가 원했던 '다음'은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영주조차도 배를 소유하지 않았던 시대에 배 한척을 갖기위해 동분서주한 청년기부터 바다로 나가 세계를 누비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꿈이었다. 바다에서 뭘 한다기보다는 바다 자체가 그의 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그 꿈도 이루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통일된 국가를 세운다는 '목적'을 달성하고 바다로 나간다는 '꿈'을 이루기 직전에 스러졌다. 암살이라는 음습한 방법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멋진 형태로. 인간은 생과 사에 연연해서는 안되고, 항상 어떤 일을 할 것인가만 생각해야 한다는 사람다운 죽음이었다. 깔끔하고 깨끗한 죽음. 나는 사카모토 료마의 삶 못지않게 그의 죽음에 감명받았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료마가 간 방향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