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하나. 몇 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수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처음 접한 것은 TV에서였는데,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피멍이 들고 붕대를 감은 채 서툰 한국말로 '우리를 때리지 마세요'라고 하거나 피켓을 든 장면이 간간히 지나가고부터였다. 그때 나는 참혹함과 당혹스러움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번번히, 심지어는 몽둥이로 구타당한다는 것, 1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고도 임금을 떼인다는 것, 갖은 협박에 시달린다는 것, 그런 악몽과 같은 현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 작년에 서울 외가에 갔을 때였다. 동대문을 돌아다니던 나는 무척 신기한 체험을 했다. 내 주위를 지나쳐가는 사람의 3분의 1은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동남아시아인은 주로 삼삼오오 모여 다녔고 젊은층들은 염색에 헐렁한 원색 옷을 입고 있기도 했다. 러시아 쪽에서 온 사람들이 지나쳐갈 때 들리는 특유한 억양은 내 귀를 인상적으로 때렸다.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한국 깊숙히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셋. 인권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였다. 한 네팔 여성이 식당에서 무전취식한 후 경찰에 잡혀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6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사실은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믿기 싫은 정도로 황당하고 끔찍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사연들로 가득하다. 외국인 노동자를 가축을 대하는 무관심과 잔인함으로 일관하는 일반사람들과 그들에게서 한 푼의 고혈이라도 더 짜내려는 기업들, 가장 효과적인 착취구조를 연구하는 정부, 무책임과 지리멸렬함으로 일관하는 경찰과 공무원들이 이 사회를 채우고 있는 한 그런 일을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넷. 이 책을 쓴 이란주 씨는 '느낌표'라는 프로에 몇 번 나왔던 분이다. 마지막까지 몰릴 대로 몰린 외국인 노동자가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이란주씨의 매일 매일의 일인 것 같았다. 이 책은 절벽 끝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연과, 끝내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붙잡지 못했던 아픈 순간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부담스러워할까봐 그랬는지 원래 낙천적이고 따듯한 성격인건지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에 대해 말할 때도 이야기에는 온기가 돌았다.

다섯. 그렇게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고, 관심이 있더라도 부담스러워할 때 그들은 우리의 마음까지 생각해주고 있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버마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한창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추방하겠다는 정부 시책이 발표될 즈음이었는데, 그의 글은 정부의 정책이 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국 양쪽에 도움이 안되는지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놀랐던 건 공존을 말하는 그가, 외국인 노동자의 모든 고난을 예외없이 겪었을 그가 오히려 우리들을 관용으로 대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였다. 관용이란 강자의 여유라고 생각하던 내게 그건 충격이었다. 강한 것이 '파워'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 때 깨달았다. 관용의 진짜 의미 또한.

여섯.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일하는 이란주씨 같은 한국인이나,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다고 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물론 안다.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견디기 힘든 분노와 증오까지도 삼켜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타당하고, 쫓기고, 병원도 가지 못하고 지하실에서 앓고 죽으면서 같은 분노를 겪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하루에 열 두 시간을 일해도 좋으니 월급을 떼이지 않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 뿐이었는데 왜 우리는 그들의 돈을 뺏고 짐승처럼 취급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타락해야 했을까?

일곱. 어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보다 약한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일 수 없으며, 장애인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강한 사람들이다. 브로커에게 주기 위해 수천달러의 빚을 지거나 위태로운 보트에 몸을 실어 외국에 가서까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턱대고 착취하지 않고 그들의 강함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겨낸 많은 경험들을 들으며, 그들이 가져온 자국의 문화를 나누며 공존하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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