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몇 권인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을 때 넉다운됐던 기억이 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경탄. 날 것 그대로의 진정한 인간을 본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본 진짜였고, 살면서 몇 번이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사람이란 정도의 차이는 물론 있지만 기본적으로 각박한 삶에 내쳐진 존재다. 거기서 패배하지 않고 먹고사는 것, 그리고 비인간화되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은 각자가 해나가야 할 지난한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를 잃지 않게 힘을 주는 것은 가까운 사람의 사랑이기도 하고, 기타 자기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문학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힘을 주는 문학이란 것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 힘이 빠지고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표현되는 강도는 어떻든간에 이게 바로 인간이다, 이게 바로 세상이다, 라는 것을 보여준 문학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문학을 표현의 장으로 보지 않고 도구로 보는 작가는 엉터리 피카소같은 글들을 쓰고 그것이 현대소설의 경향인 양 잘난 척 했고, 자아도취에 빠져 독자와 함께 징징거리기를 바란 작가도 많았다. 판타치는 달콤한 위로를 줄지언정 힘을 주지는 않았음은 물론이다.

근래의 소설이란 것이 국적에 상관 없이 비슷비슷했던 걸 보면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거기에 반감을 느끼고 문단의 모든 염증나는 것들과 결별한 후 소설 하나에만 육박해 승부를 내고자 한 소설가가 하나쯤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강하게 살기 위해 소설가란 직업을 택한 마루야마 겐지같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영화를 좋아했다는 그가 영화관 하나 없는 시골로 이사간 것을 보면 도쿄의 문화혜택에도 별 가치를 못 느꼈던 것 같다. 하긴 소설가면서도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는 오히려 자기 정체를 숨기는 데 능란하고 서로에게 나긋나긋함만을 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도시보다 시골에서 소설가로서의 자극을 느꼈던 것 같다. 시골은 아직도 사계절 땅을 파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곳이었고 느물느물하게 자기를 숨기기엔 사람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본모습을 관찰하기엔 더욱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는 가장 단순한 생활을 했고, 전원생활의 대상으로서의 시골이 아니라 자연 자체가 꿈틀거리는 것에 두려움과 힘을 느끼면서 밑천과 재산 하나 없는 자신의 삶을 위해 매일 중노동에 가까운 글쓰기를 했다. 과연 대단하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독립적으로 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였던 것일까? 그도 자기와 같은 사람을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를 경멸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까? 그는 견딜 수 없는 게 많다고 하는데 나도 책을 읽으면서 그의 그런 점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여자와 게이, 어린이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을 멸시했다. 진짜 사나이의 세상에 대한 평가라기에는 너무 적극적이고 집요한 증오에 가까워서 그가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생각으로만 그치면 상관이 없지만 작품에 나타났을 때는 소설 전체의 균형을 깨뜨려버리기도 했다.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나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의 경우 그는 모든 인물을 공정하게 다뤘다. 그래서 가장 시원찮은 남자나 집안에만 틀어박혀 살만 쪄가는 엄마도 한심하지만 생생한 인물로서 소설에 힘을 더해줬다. 그러나 '천년 동안에'는 작가의 자의식이 너무 전면에 나와 경멸감과 자부심을 너무 돌출해서 결국 우스꽝스러운 소설이 되고 말았다. 주인공의 포효에 다른 것은 모두 웃기게 돼버렸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로서의 각오, 인간으로서의 신념. 그것은 사실 그가 상식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그 상식을 위해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불특정 다수를 그렇게까지 경멸해야 했을까. 일본에서 소설가로 먹고 사는 마루야마 겐지보다 더 살벌한 현실과 대면하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여자와 게이, 어린이가 무수히 많지 않은가. 그도 결국은 너무 좁은 세계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씁쓸해진다.

마루야마 겐지는 세상의 모든 의존적인 것을 거부하고 누구보다 강한 남자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문학 주위의 모든 아지랑이를 거부한 채 펜 하나로 진짜 소설을 써내고자 평생을 걸었다. 그렇다면, 독자인 나도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가 어떤 소설을 써내는지 기다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마루야마 겐지가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덮어놓고 경멸하고 보는, 그는 별로 자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나약하고 편벽한 소설가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단점에 불과한 그것을 버리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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