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5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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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창작물을 놓고 외설이냐 예술이냐를 시비하는 것만큼 독기 품은 논쟁은 없는 것 같다. 그 독기는 창작물을 대하는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창작물 자체도 타락시킨다. 외설 논쟁에 휩싸이는 순간 창작물이 가진 다양한 의미와 가치는 절단나 버리고 오직 스캔들만 남을 뿐이다. 마치 채털리 부인과 맬러즈의 사랑이 탄로나는 순간 그들을 관계는 더럽혀지고 추문만이 남을 것처럼.

그러나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채털리 부인은 공허한 정신만이 남은 불구 남편과 석탄가스로 가득 찬 영지에서 서서히 압살당해 가고 있었고, 맬러즈 또한 사랑의 모든 환희를 상실하고 숲 속에서 사냥터지기로 틀어박혀 있었으니. 나중에 사랑을 통해 그리 열정적으로 생의 환희를 가득 채웠던 그들이었는데 말이다. 그 둘은 서로를 진작에 알아차렸음에도 한동한 서로의 존재를 외면했다. 하지만 맬러즈가 고립된 채 살고 있던 오두막집 마당에서 하얗고 늘씬한 등을 드러내놓고 족제비같은 부드러운 날렵함으로 머리를 감는 것을 채털리 부인이 목격한 순간, 채털리 부인이 생명에 목말라하며 새끼 꿩을 손에 올려놓고 흘리는 눈물을 맬러즈가 느낀 순간, 그들은 서로가 살아있는 숨결과 관능과 따듯함으로 가득찬 인간임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갔고,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연인이 되긴 했지만, 첫경험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맬러즈와 달리 채털리 부인은 뭔가 미진함을 느꼈다. 그러나 맬러즈는 다른 어떤 남자보다 완벽한 남자였다. 그는 남편같이 공허한 지성으로 가득 찬 남자도 아니었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취하는 마이콜리스같은 남자도 아니었으며, 채털리 부인이 자리에 있어야만 음담을 포함한 모든 대화를 끌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채털리 부인이 대화에 대해 아는 척 하면 불쾌해하는 그런 남자들은 더욱 아니었다. 맬러즈는 온전한  남자였으며, 그래서 채털리 부인을 온전한 여자로 대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마침내 둘 사이에 놓인 간극을 없앤 채 상대방의 존재와 자신과의 합일을 전적으로 긍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흐르고, 만남이 지속되어야 했지만 그들이 출발은 어떤 만남보다 서로에게 가까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이 작품은 일종의 교양소설이기도 하다. 비록 다른 고전 교양소설에서는 소년이 베아트리체같은 영원한 여성을 통해 성장하는 반면 여기서는 농밀한 섹스와 진지한, 혹은 유머러스한 대화를 통해 성장하지만 말이다. 또한 소년만 성장하고 여인은 구름 뒤에서 천사처럼 미소만 짓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같이 성장하며, 둘 다 완전한 성인임에도 새롭게 껍질을 깨뜨리고 날아오른다. 이에 비하면 괴테의 교양소설은 정체가 애매모호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세상과 고립된 채 서로의 몸을 나누고 눈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채털리 부인인 코니는 그러기를 바랬고, 맬러즈 또한 그러기를 바랬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맬러즈는 코니보다 열 배는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런 성격이었고, 코니보다 거의 10살은 위였으며, 온갖 세상경험을 한 사람이었다. 귀족부인과의 관계가 허무한 연기처럼 흩어지거나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 사랑의 도피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코니로 말하자면 맬러즈보다 사태의 심각성을 10분의 1밖에 실감하지 못했지만, 결국 코니의 두려움 없는 용기가 끝내 위태로운 이 둘의 관계에 가능성을 실어주게 된다. 이것이 책 제목이 '맬러즈씨의 연인'이 아닌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된 까닭이 아닐까.

이들은 당대의 계급모순과 물질문명에 대항해 사회 혁명을 주장하는 대신 일종의 인간성의 혁명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노동착취와 거드름을 통해 인간이하의 무엇이 되어버린, 그리고 기계들에 의해 점차 기계적이 되어가는 육체의 온전한 복원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섹스는 육체의 교류중에서 가장 긴밀한 교류이며, 그러므로 육체의 교류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과 상대를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인간'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정신만을 강조하는 건 겁쟁이의 기만술에 지나지 않았다. 연인에게 충만함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과 어떠한 교류도 불가능할지니. 사실 이것은 예언으로 꽉 차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유명한 사실대로 출간전부터 외설논쟁에 휩쓸려 오늘날까지 왜곡되어 왔다. 이렇게 낙인찍힌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제인 오스틴을 뛰어넘은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이 아직 나오지 않았듯이, 현대인과 얽힌 사랑과 성을 다룬 작품중에 이것을 뛰어넘는 것은 없다고 본다. 기계시대에 걸맞게 '기계적인 행위'만이 반복되는 현대의 성문화를 노골적으로 팔아대는 포르노와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같은 작품을 비교하고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이제 그만두는 게 어떨까. 차라리 코니와 맬러즈에게 한 수 배워보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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