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르를 벗겨라
베흐야트 모알리 지음, 이승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이슬람은 서구에 의해 너무 많이 조작, 이용되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이슬람인이 말하는 이슬람"에 대해서만 신뢰를 가지기로 했었다. 서구인들이 제공하는 정보로만 판단하다가는 이슬람에 대한 나의 인식이 돌이킬 수 없는 편견에 빠져들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슬람은 폭력적이며 광신적이다"라고 할 때도 "아니야, 사실 그건..."이라고 말할 준비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슬람은 여성억압적이다"라고 할  때는 "아니야,  사실 그건..."이라고 선뜻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성을 집 안에 있게 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소중한 것일수록 깊이 감춰두고 보호하는 이슬람의 특성이다"라고 말하는 이슬람인의 말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개운치 못한 혼란속에서 나는 누구보다 이런 책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슬람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객관적이고 명철한 이슬람 여인의 말 말이다.

이란은 유명한 사실대로 1979년 호메이니의 '혁명'을 거쳐 과거로 회귀한 듯 보이는 나라였다. 그전에는 몇 십년간 팔레비 왕조의 서구화 정책을 거쳤다고 하는데, 이란 여성의 현재는 수천년간 계속된 전통사회와 몇 십년간의 급격한 서구화, 그리고 다시 전통으로 돌아간 '혁명'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그 기복을 상징하는 것이 베흐야트라면 견고한 전통사회 아래의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 타라의 삶이다.

두 여인의 어린시절은 극과 극의 세계를 보는 듯 했다. 베흐야트는 서로 사랑하는 부모님과 부유한 생활환경, 많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독똑하고 능력있는 아이로 자라났다. 특히 개방적이고 유쾌했던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할머니는 베흐야트에게 자주 순종적인 여인을 칭송하는 옛날 이야기를 비판적인 비평을 곁들여 해주곤 했다. 콩쥐팥쥐 이야기를 해주면서 어리석고 포악한 계모밑에서 저항할 줄 모르고 순종만 하는 콩쥐는 무능력한 바보라고 얘기해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란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베흐야트와는 달리 타라의 삶은 이란 벽촌에서의 '여인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타라의 어머니는 타라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이것은 비록 아들을 더 아끼긴 했지만 딸을 보호하고 딸의 행복을 생각하는 유일한 인물이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타라를 학교를 보내는 대신 밭에 내보냈다. 딸을 학교같은 곳에 보내 낯선 이들의 눈에 내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대신 밭에서 매일 남자들의 눈에 띄인 타라는 11세 때 늙은 홀아비에 시집을 가게 된다.  천만다행이도 타라의 남편은 선한 사람이어서 7년동안 아이를 못 낳던 타라를 보호하고 주위의 비방으로부터 감싸주었다고 한다. 소녀와 결혼하는 노인이 선하다는 이유만으로 소녀가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자체로 소녀의 처지를 대변하는 말이지만 타라는 남편이 살아있던 동안은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남편을 잃은 젊은 타라를 마을 여자들은 경계하고 질투했고, 남자들은 탐을 내고 추근덕거렸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타라, 누구보다 공부하고 싶어해서 선생님 놀이를 즐겼다는 타라, 넒은 세상을 꿈꾸고 남편이 죽자 재가하는 대신 일하기를 소망했던 타라.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 자살기도에서 깨어난 뒤 고용주의 두 아이를 죽인 살인죄로 기소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가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타라가, 혹은 타라를 질투했던 누군가가? 혹은 이란이? 베흐야트가 타라를 만난 것은 이때이다. 돈 한푼 없어서 재판조차 하고 있지 못하는 타라의 국선변호사로서였다. 그때는 극심한 독재를 일삼던 팔레비왕조가 국민들의 저항에 무너지고 여러 정당들이 혼란한 가운데 호메이니가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귀국하던 때였다. 그리고 호메이니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애초 약속을 깨고 '팔레비독재'에서 '이슬람독재'로 방향을 선회한 후 숙청을 일삼고 국가 체제를 과거로 되돌리던 때였다. 또한 검사와 판사, 변호사 제도와 이성적인 변론, 정신감정서가 통하던 재판에서 이슬람 성직자인 물라가 판사보다 위에서 재판을 주재하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다. 타라에게는 재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베흐야트에게도.

이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타라가 어떻게 됐는지 모두 알테니 숨기지 않겠다. 타라는 사형당했다. 그리고 목숨이 위험한 건 베흐야트도 마찬가지였다. 타라 뿐 아니라 많은 여성의 변호를 맡았던 베흐야트가 새 정권의 눈엣가시로 보인 것이다. 타라의 죽음과 베흐야트의 망명. 완전히 상반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두 여성의 고난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베흐야트가 망명지 독일에서 망명자 단체를 위해 활동을 하던 곳에서 만났던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칸영화제에도 몇 번 출품을 했던 이란의 젊은 여성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뒤짚어써야만 칭송받는 아프간의 여성이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발가벗어야만 칭송받는 서구의 여성이나 본질적인 처지는 다르지 않다고. 여성문제의 핵심을 짚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복지국가에 사는 여성이라도 밤 골목길에서 낯선 남자가 뒤에 걷고 있다면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그 남자가 집에 가서 라면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인지 나에게 위협을 가할 생각을 하고 있는 남자인지 여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이란은 확실히 특이한 곳이지만 낯선 곳은 아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여성을 억압했던 것은 전세계의 공통된 역사였다. 다만 현대에 민주주의가 종교를 극복하면서 여성해방의 길이 열린 것이다. 사회의 혼란을 종교의 이름으로 잠재우려 하는 이슬람 독재자들. 종교를 억압의 도구로 이용하여 종교 본래의 가치를 빼앗은 이들 사이에서 여전히 여인의 삶은 고되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받는다.

베흐야트는 여전히 타라의 꿈을 꾼다고 한다. 타라는 베흐야트가 혜택받은 환경과 재능으로도 벗지 못했던 '여인의 삶'을 뜻하는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구에는 많은 베흐야트들이 있지만, 이들은 얼마나 굴곡에서 벗어났는가? 타라의 삶에서 베흐야트의 삶으로 이동중인 한국의 여성들은? 우리는 여전히 베흐야트고, 타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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